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한승헌 전 감사원장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1세대 인권변호사'로 불렸던 고(故) 한승헌 전 감사원장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께 빈소가 차려진 강남성모병원을 찾아 5분간 머무르며 고인을 추모했다. 한 전 원장은 인권 변호사 출신인 문 대통령과의 인연도 각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전 원장은 지난 2019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975년 반공법 위반으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됐을 당시 시위를 하다 잡혀 들어온 한 학생에게 자신의 메리야스를 줬다면서 그 학생이 문 대통령이었다고 회상한 바 있다. 문 대통령과 한 전 원장은 지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당시 함께 노 전 대통령의 대리인단으로 인연을 맺기도 했다.
이후 한 전 원장은 2012년 대선에서 문 대통령 지지를 선언했고, 2017년 대선 때는 대선 캠프의 통합정부자문위원단 단장으로 활동하며 선거 승리를 도왔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8년 9월 '대한민국 사법부 70주년 기념행사'에서 한 전 원장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각계에서 고인에 대한 추모도 이어졌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이날 "고(故) 한승헌 변호사의 별세 소식에 비통함과 위로의 마음을 담아 유가족분들께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추모했다. NCCK는 이날 낸 애도 메시지에서 이같이 밝히고 "고인은 1세대 인권변호사로서 엄혹하던 군사정권 시절 민청학련, 동백림 간첩단 사건,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 등 대표적인 시국사건을 변론하며 억울한 이들을 대변하고 진실을 밝히는 일에 헌신했다"고 평가했다.
또 "1974년 NCCK 인권위원회 창립 당시 법조 전문위원으로서 초기 부위원장을 역임하며 한국교회 인권운동의 기틀을 마련했다"며 "1989년에는 분단의 장벽을 넘어 남북 화해의 물꼬를 튼 문익환 목사의 변호인단을 맡아 국가보안법을 무기 삼아 한반도의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세력에 맞서 화해와 통일을 외쳤다"고 기억했다. NCCK는 "한 변호사의 업적과 헌신을 기억하며 고인께서 하나님의 품 안에서 영원히 안식하시기를 기도한다. 큰 슬픔 가운데 있는 유가족들께도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빈다"고 바랐다.
20일 별세한 고 한 전 원장은 1957년 고등고시 사법과(8회)에 합격한 뒤 법무관을 거쳐 1960년 법무부·서울지검 검사로 법조계에 입문했다. 군사정권 시절 인권변호사로서 여러 시국사건의 변호를 맡아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헌신했다. '민청학련', '동백림 간첩단' 사건과 김지하 시인의 '오적' 필화사건을 변론하는 등 '시국사건 1호 변호사'로 꼽힌다.
1975년 '유럽 간첩단 사건'으로 사형당한 김규남 의원(1929∼1972)의 죽음을 애도하는 '어떤 조사(弔辭)'를 기고했다는 이유로 구속됐다가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지만, 재심 끝에 2017년 무죄 판결을 선고받았다.
'어떤 조사' 필화 사건으로 구속됐을 당시 그의 변론을 맡았던 1차 변호인단만 104명이었고, 최종 변호인단에는 129명이 이름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고인은 또 198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내란음모 사건 당시 공범으로 몰려 투옥되기도 했으며 1986년 홍성우·조영래 변호사 등과 '정의실현 법조인회'(정법회)를 결성했다. 정법회는 1988년 설립된 민변의 전신이다. 이후 김대중 정부 때인 1998∼1999년 감사원장을 지낸 뒤 노무현 정부 때는 사법제도 개혁추진위원장을 맡았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대리인단에 소속됐다.
고인은 여러 차례 시집을 펴내는 등 문학과도 인연이 깊었다. 전북대 학보사 기자 시절부터 지면에 시를 수록한 고인은 검사로 일하던 1961년 첫 시집 '인간귀향'을 냈고 공직에서 물러나 변호사 활동을 하던 1967년 두 번째 시집 '노숙'을 냈다. 이어 2016년에는 세 번째 시집 '하얀 목소리'를 발표하기도 했다.
김광태기자 ktkim@dt.co.kr
군사정권 시절 수많은 양심수와 시국 사범을 변호하며 '1세대 인권변호사'로 불렸던 한승헌 변호사가 20일 별세했다. 향년 88세. [연합뉴스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