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종성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연구위원
데이터 시대는 정보화 시대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정치의 쟁점과 양태가 사뭇 다를 것으로 전망된다. 정보의 흐름을 촉진하는데 목적을 두었던 정보화 시대의 정치는 디지털 세계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특히 인터넷에서 자유와 질서의 균형을 어떻게 찾을지가 최대 쟁점이었다. 이에 비해 데이터 시대는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때문에 데이터가 정치의 중심에 위치한다. 희소자원인 데이터를 어떻게 관리하고 활용할 것인가가 정치적 경쟁의 근간을 이룬다. 특히 데이터의 보호와 활용은 데이터 시대의 정치를 관통하는 두 축이 된다.

데이터 정치의 핵심쟁점은 크게 '데이터 민주주의'(data democracy)와 '데이터기반 정치'(data-driven politics)로 나눌 수 있다. '데이터 민주주의'는 원래 권력으로부터 데이터를 지키려는 방어적 관점에서 출발했다. 그러다 데이터 시대가 도래하면서 데이터에 대한 공평한 접근과 활용을 요구하는 적극적 관점이 등장하자 보호와 활용의 가치가 충돌하기 시작했다. '데이터기반 정치'는 데이터를 활용하여 정치과정을 혁신하는 것이다. 선거과정에 첨단 데이터 분석기법을 적용하는 것이 전형적인 사례이다. 최근에는 데이터 분석을 정책결정과정에 접목하려는 시도가 늘면서 민주주의 가치 혹은 기존 정치시스템과 충돌이 발생하기도 한다. 데이터 시대의 미래는 기술과 산업의 발전 못지 않게 데이터를 둘러싼 이런 정치 쟁점의 해결 방향에 따라 그 모습이 결정될 것이다.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위원회는 한국의 데이터정책 발전과정을 세 단계로 구분한다. 제1단계는 기본데이터 구축기로 1987년 국가운영의 핵심데이터를 전산화했던 국가기간전산망사업(National Basic Information Systems)에서 시작한다. 제2단계는 데이터산업 태동기로 2010년 공공데이터 개방을 시작점으로 본다. 그리고 제3단계는 데이터산업 발전기로 2017년 발표된 AI·데이터 정책 이후로 정의한다. 산업정책 관점에서 만들어진 시기구분이지만 실제 데이터의 발전과정을 잘 반영하고 있다. 물론 한국의 데이터 정책은 이 보다 역사가 훨씬 길다. 하지만 특정 데이터에 국한하지 않고 국가데이터 전반을 체계적으로 정비한 것은 1987년 국가기간전산망 사업이 처음이었다.

당시 데이터는 국가관리의 도구로 주로 인식되었다. 그 정치적 의미는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개인정보 침해에 대한 우려 보다는 국가기간전산망사업을 통해 정부의 각종 증명서를 어디서나 쉽게 뗄 수 있는 편의성이 더 크게 부각되었다. 하지만 거대 행정정보시스템은 곧바로 정부와 국민 사이에 심각한 정보 비대칭성을 초래했다. 국민들은 알지 못하는 세세한 개인정보와 행정 데이터를 정부는 버튼만 누르면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공무원에 의한 개인정보유출 등 각종 문제가 이어지자 김영삼 정부는 1994년 '공공기관의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였다. 그러나 이 법은 데이터 정치의 산물은 아니었다. 그 보다는 당시 데이터 정책의 일환이었다. 국가 기간 전산망사업에 따른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1988년부터 입법이 준비되어 왔었던 것이다.

한국에서 데이터 민주주의가 본격화된 계기는 1995년부터 추진된 전자주민카드 사업이었다. 한국 정부는 정보화 시대의 새로운 인프라로 전자주민카드를 도입하기로 하고 여기에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등 7개 분야 20여종의 개인정보를 담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는 정부의 데이터 독점을 우려한 야당과 시민사회의 강력한 반대를 불러왔다. 이전과 달리 각종 시민단체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더 나아가 개인정보보호가 독자적인 정치 생태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 사업은 야당으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면서 1999년 백지화되었다.

전자주민카드는 한국에서 데이터 민주주의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효율성과 효과성 관점에서 바라보던 데이터 정책을 민주주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급기야 2000년대에 들어서는 데이터 민주주의가 정치민주화에서 분리되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예컨대 2001년부터 시작된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National Education Information System)은 민주화의 결실로 등장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 걸쳐 완성될 예정이었지만, 개인정보 진영의 강력한 반대에 직면하여 상당기간 지연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7월 국무회의에서 "정보화시대에 개인의 정보 일부를 국가적으로 검증된 시스템에 저장하는 사실에 거부감을 가지는 것은 아날로그시대의 사고방식"이라고 설득에 나섰지만 실패하고 만다.

이후 한국에서 개인정보보호를 앞세운 데이터 민주주의가 많은 중요한 정책과 여론형성과정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특히 데이터 민주주의가 민주화 여부와 상관없이 국가권력을 견제하기 시작한 것은 특기할 만한 일이었다. 개인정보보호가 정치적 민주주의를 넘어 개인 고유의 가치인 프라이버시와 연결되기 시작한 결과였다.

한국의 데이터 민주주의는 정보화 시대에서 데이터 시대로 넘어가기 직전 등장했다. 빅데이터 시대가 2006년 분산형 데이터 분석SW인 하둡(Hadoop)의 등장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면, 한국의 데이터 민주주의는 탄생과 동시에 새로운 데이터 시대에 적응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 셈이다. 데이터 시대는 데이터 분석을 통해 가치를 창출하는 시대이다. 이를 위해 데이터의 재활용이 제일 중요하다. 더 많은 데이터, 더 다양한 데이터를 모아서 분석할수록, 더 정확하고 가치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는 주어진 목적에 한해, 주어진 방식대로 데이터를 활용하는 정보화 시대와 근본적으로 다른 환경을 요구한다. 보호라는 전통적 가치와 공유와 활용이라는 새로운 요구를 함께 충족시켜야 하는 것이다.

데이터 시대가 도래하자, 한국이 먼저 추진한 일은 데이터 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강화하는 것이었다. 데이터의 생산과 활용이 급증함에 따라 개인정보 유출과 오남용 등 각종 문제가 빠르게 늘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다. 한국 정부는 2011년 기존의 '공공기관의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을 폐기하고 '개인정보보호법'을 새로 제정했다. 공공과 민간으로 나누어 규제하던 것을 일원화하는 동시에 개인정보 침해에 따른 처벌을 대폭 강화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제정과정에서도 정부의 데이터 정책과 개인정보 진영의 프라이버시 가치가 첨예하게 충돌하였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자신의 정책을 관철했지만, 개인정보 보호를 대폭 강화한 것은 기존 데이터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바와 일치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데이터 시대의 '데이터 민주주의'는 정보화 시대의 그것과 달라져야 한다는 점이었다. 국민들이 데이터 시대의 주권자로 살아 가려면 자신의 데이터를 보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장 귀중한 자원인 데이터에 차별없이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데이터 경제는 데이터가 많은 기업에게 더 많은 데이터가 몰리는 '네트워크 외부효과'가 작용한다. 글로벌 기업과 국내기업의 격차가 벌어지고, 국내에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평등이 심화된다. 개인은 더 불리하다. 기업들에게 자신의 데이터를 수없이 제공하면서도 그 혜택을 공유하지 못한다. 더욱이 자신의 데이터를 누가 어떤 목적으로 활용하는지 알 수 없고 데이터 주체로서 통제력도 갖지 못한다. 이런 '기울어진 운동장'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데이터 민주주의는 허상에 불과한 시대가 되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이미 새로운 데이터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태동하고 있었다. 2009년 12월 한 고등학생이 서울시와 경기도의 교통정보를 활용하여 버스도착시간을 알려주는 스마트폰 앱을 만들었을 때 관련 지자체는 데이터 활용을 허락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를 중단시키려고 했다. 이에 대해 국민과 언론은 강한 비판의 목소리를 냈고,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정책방향을 수정하고 행정데이터를 적극적으로 공유하기 시작했다. 정부로부터 데이터를 보호하는데 국한되었던 데이터 민주주의가 정부에 데이터를 요구하는 적극적인 형태로 발전한 것이다.

이 시기 데이터 정치의 양상도 바뀌기 시작했다. 정부와 시민단체의 양자대결 양상이 사회내 분화를 통해 다자대결 양상으로 변한 것이다. 개인정보보호를 주창하는 방어적 입장과 데이터에 대한 공평한 접근과 활용을 요구하는 적극적 입장의 충돌이 계기가 되었다. 2010년 이후 한국 정부의 데이터 정책은 '데이터 자원화'로 집약된다. 생산자가 독점하던 데이터를 사회적으로 공유하여 국가의 자원으로 만드는 것이다. 최근 코로나 사태에 따른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선택한 것도 디지털 뉴딜이라는 이름 하에 추진된 대규모 데이터 댐 구축사업이다. 하지만 데이터 자원화는 불가피하게 데이터 정책의 핵심가치인 보호와 활용의 충돌을 야기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정부는 2020년 소위 데이터3법과 데이터기본법을 제정했지만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에는 이르지 못했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해법을 찾아야 할 한국 데이터 민주주의의 과제로 남아 있다.

한국의 데이터 민주주의가 풀어야 할 또 다른 숙제는 '데이터 주권'을 확립하는 일이다. 데이터 주권은 국가든 개인이든 자신의 데이터에 대한 권한과 통제권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에 대한 데이터를 정부와 기업이 가져가 어떻게 활용하는지 모른다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주체적 삶을 살아가기 어려운 일이다. 특히 '데이터 주권'은 '데이터 자원화'와 갈등관계와 보완관계를 모두 형성한다. 데이터 자원화를 추진하면 주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 갈등관계라면, 데이터 주권을 보장해 줄 때 데이터 공유가 활성화되는 것이 보완관계다. 유럽연합은 데이터 자원화와 주권이 동전의 양면처럼 작용한다고 보고 이 둘을 조화시키기 위해 '보편적 데이터 보호규정'(GDPR: 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등 새로운 데이터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한국이 데이터 민주화를 내실화하려면 보호와 활용의 조화 뿐 아니라 공유와 주권의 조화도 이뤄야 한다.

2013년 서울특별시가 심야버스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노선 설계에 빅데이터 분석을 접목한 것은 국내외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왔다. 알려진 것과 달리 당시 버스노선은 전통적 방법으로 설계되었고 빅데이터 분석은 이를 검증하거나 보완하는 수준에서 활용되었지만 그 효과는 매우 컸다. 무엇보다 정부 정책결정과정의 투명성을 높였고 시민들에게 데이터를 객관적 증거로 제시함으로써 설득의 효과를 높일 수 있었다. 데이터에 기반한 정책결정이 가능하고 이를 통해 민주주의 수준을 한단계 높일 수 있다는 점을 한국 국민과 정부가 깨닫게 된 중요한 사례였다.

외국과 달리 한국에서 데이터를 활용한 선거운동은 별로 활성화되지 못했다. 유권자 관련 데이터를 선거운동에 활용하는데 국민들의 거부감이 매우 크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비해 데이터기반 정책결정은 서울시의 심야버스 사례를 계기로 많은 노력을 이끌어 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정부3.0'(Gov 3.0)이 대표적이다. 전자정부처럼 업무프로세스를 개선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활용하여 정책결정의 질을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예컨대, 국민이 받아야 할 혜택이라면 신청 여부와 관계없이 데이터 분석을 통해 선제적으로 제공하는 새로운 민원서비스를 국세청의 연말정산서비스 등에 도입했고, 예비타당성 조사를 비롯한 중요 정책결정은 증거기반 의사결정을 도입하도록 하는 혁신방안 등을 포함했다. 비록 정부3.0은 대통령 탄핵으로 중단되었지만, 당시의 데이터 정책이 2020년 '데이터기반 행정활성화에 관한 법률'로 이어지는 등 의미 있는 결과를 낳고 있다.

하지만 '데이터기반 정치'는 '데이터 민주주의'와 달리 아직 한국 정치의 핵심 아젠다로 발전하지 못했다. 데이터기반 정치는 정치적 합리성 보다 데이터 합리성 혹은 기술적 합리성을 우선시하려는 의도와 의지를 전제로 한다. 국민의 정치적 요구와 다르더라도 객관적인 데이터 분석의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데이터기반 정치'가 뿌리 내릴 수 있다. 물론 정치적 고려는 매우 중요하다. 다만 객관적 분석을 우선시 하고 정치적 고려를 보완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그 반대의 경우라면 데이터 시대의 정치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은 정부3.0 등 여러 노력이 있었지만 아직 데이터기반 정치를 위한 기반이 취약하다. 정부 정책결정과정의 투명성도 낮고 데이터 활용에 대한 인식과 경험도 부족하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일은 정치적 기반의 확대를 가장 중요시 하는 정치인들의 인식 변화일 것이다.

데이터 시대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한국이 지금까지 경험한 데이터 정책과 그에 따른 민주주의 쟁점들은 데이터 정치의 극히 일부분만 보여준 것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데이터 정치가 기존 산업시대의 정치, 정보화 시대의 정치와 본질적으로 다른 작동 메커니즘을 따를 것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데이터라는 새로운 희소자원을 두고 한편으로 보호와 활용, 다른 한편으로 공유와 주권을 조화시키는 어려운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동시에 정책결정과 정치적 경쟁에 데이터의 기회와 장점을 최대한 수용할 수 있도록 정치 시스템과 정치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데이터 사회의 모습은 이런 데이터 정치의 역동적 과정과 결과에 의해 진로가 정해질 것이다.

본 기고의 원문 출처는 '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 175호'임을 밝히며, 원문의 저작권은 동아시아재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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