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MBC 미디어센터 공개홀에서 열린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토론회를 준비하고 있다. 공동취재=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쏘아올린 '원화의 기축통화 편입' 논란이 정치권을 넘어 경제계까지 뜨겁게 달구고 있다.
22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후보와 민주당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이 제시한 IMF(국제통화기금)의 SDR(Special Drawing Right·특별인출권) 통화바스켓 편입 근거를 토대로 '기축통화국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 등 야권에서는 "고등학생도 아는 기축통화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며 이 후보에게 집중포화를 퍼붓고 있다.
SDR은 IMF 회원국들이 외환위기 등에 처할 때 담보 없이 인출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통화바스켓은 달러화, 엔화, 유로화, 파운드화, 위안화 등 5개 통화로 구성돼 있다. 통화바스켓에 속한 5개 통화를 보통 '준기축통화'로 본다.
결론적으로 보면 이 후보가 기축통화와 준기축통화를 정확히 구분하지 않아 생긴 '해프닝' 성격의 공방이다. 하지만 과연 '원화가 SDR 통화바스켓에 편입될 수 있느냐'로 관심사가 확산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 전문가들은 대체로 원화의 SDR 통화바스켓 편입 가능성에 대해 '현재로서는 현실성 없는 얘기'라고 평가했다.
이 후보는 전날인 21일 열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관 TV 토론회에서 국가부채비율 등을 놓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토론을 벌이던 중 "우리나라도 기축통화국에 포함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정도로 경제가 튼튼하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곧바로 국민의힘에서는 우리나라가 기축통화국에 편입하는 것은 당장 실현 불가능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국가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기축통화국으로 만들겠다는 얘기를 들으니 정말 가슴이 웅장해진다"고 비꼬았다.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는 이 후보의 발언을 두고 논란이 커지자 "이 후보가 언급한 기축통화국 편입 가능성은 '전경련'이 지난 13일 배포한 보도자료에 나오는 내용을 인용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후보 개인의 의견이 아닌 공신력 있는 경제단체의 입장이라고 근거를 밝힌 것이다.
전경련은 당시 보도자료에서 "원화는 IMF SDR 통화바스켓에 포함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한국경제위상(GDP 10위, 시가총액 9위) △IMF 목적(무역·빈곤탈피)에 부합(자유무역 바탕 최빈국서 경제대국 우뚝) △수출규모 조건 부합(글로벌 수출 5위, SDR 편입국 제외시 1위) △자유로운 통화사용 조건 부합(외환시장 원화거래 비중 지속 증가) △정부의 원화 국제화를 위한 노력(통화스와프 확대, 역외 외환시장 등 검토) 등 5가지 근거를 제시했다. 전경련은 SDR 통화바스켓까지 폭넓게 기축통화로 해석했다.
정치권 안팎에서 기축통화국 공방이 커지자 전경련은 22일 다시 한 번 입장문을 내고 "SDR 통화바스켓 편입을 제안한 배경은 최근 재정건전성이 빠르게 악화하고 있고, 국제원자재 가격 고공행진으로 무역수지마저 적자가 지속될 수 있어, 신용등급 하락 등에 따른 경제위기를 사전에 방지하자는 차원에서 원화의 SDR 편입을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뿐"이라고 밝혔다.
전경련은 "원화가 SDR에 편입돼도, 국가재정건전성 문제는 거시경제안정성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며 "편입됐다고 해서, 원화베이스 국채수요가 곧바로 증가하지는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경련은 "국제적으로 안전자산으로 인식돼야만, 국제 지급·결제 기능을 갖춘 명실상부한 기축통화가 될 수 있으므로 경제 펀더멘털 유지는 매우 중요한 사안임을 밝힌다"고 말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원화가 SDR 통화바스켓에 편입되는 것은 시기상조이자 실이익도 불분명하다고 진단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통화바스켓에 들어갈 경우 외환위기시 완충작용을 할 수 있고, 환율 강세 등의 측면에서는 이점이 있지만, 경상수지 부분에서는 상당부분 적자 우려가 커진다"며 "우리나라 경제 규모는 통화바스켓에 들어갈 만큼 크지 않고, 수출 의존도가 높은 경제상황에서 이런 논쟁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SDR 통화바스켓이나 기축통화에 포함된 국가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신뢰를 잃지 않도록 상당한 자기 통제를 하고, 통화 정책의 안정성 등도 필요하다"며 "하지만 우리나라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보면, 차기 대통령 임기 내 기축통화국 편입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홍우형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SDR 통화바스켓에 들어가는 것은 우리나라가 원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라며 "세계 시장에서 원화가 자산의 기준이 되는 통화로 역할을 할수 있느냐를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2019년 한국은행이 발표한 '국제결제은행(BIS) 주관 전 세계 외환 및 장외파생상품 시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원화의 거래 비중은 2.0%로, 미국 달러화 88.3%, 유로화 32.3%, 엔화 16.8% 등과 비교해 매우 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