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에 들어갔다.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이 산업재해 예방에 주안점을 두었다면,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자 처벌'에 방점이 찍혀있다. 도급, 용역, 위탁 등을 행한 경우에도 원사업자에게 책임을 지우고, 개별 사업장에서 발생한 재해에 본사 대표이사까지 처벌하겠다는 의지도 보인다.
'사망자 1명 이상'은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또는 직업성 질병자 1년 이내 3명 이상'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물론, 법인도 양벌규정이 있다. 다만, 위반행위 방지를 위해 상당한 주의, 감독을 게을리하지 아니한 경우엔 면책할 수 있다.
그런데, 사업주·경영책임자는 이런 조항조차 없다. 애당초 책임을 벗어나기 힘들게 만든 것이다. 또한, 고의 또는 중과실을 전제로 손해액의 5배까지 배상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했다. 실손해 배상을 원칙으로 하는 현행법 체계에 비추어 이것도 상당히 이례적이다. 여기도 법인만 면책규정을 두었을 뿐, 개인은 면책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런 처벌과 배상을 면하기 위해 준수해야 할 의무는 무엇인가. 이게 또 문제다. 중대재해처벌법이 금지하는 내용이 과도하게 광범위하고 포괄적이기 때문이다. 사업주·경영책임자는 재해예방에 필요한 안전보건관리 체계의 구축·이행, 재해 발생 시 재발방지 대책의 수립·이행, 중앙행정기관·지방자치단체의 개선 시정 등 명령이행, 안전·보건 관계 법령상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 등 4가지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
문제는 범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관리체계의 구축', '관리상의 조치' 등이 무엇을, 어떻게 이행하라는 건지 구체적으로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국가는 명확한 형벌법규에 근거해 형벌권을 행사하고, 국민은 무엇이 처벌받는 행위인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법의 핵심은 기업 스스로 관리체계를 구축·이행해 현장관리를 철저히 하라는 것이다. 산업재해 발생으로 무조건 처벌하는 게 아니라,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를 이행하면 처벌받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고 설명한다. 귀로만 듣기 좋을 뿐, 공허하고 무의미한 말이다. 추상적 의무만 나열해 놓고, 이걸 이행해 처벌받지 말란 게 무슨 설명이 되겠는가. 그리고, 국가형벌권은 공동체 유지를 위한 최후수단이지, 기업을 계도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인간 존엄성의 코어인 생명권이 산업현장에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은 수만 번 강조해도 마땅하다. 기업은 무엇보다 안전관리 역량을 최우선 순위로 강화하고, 산업재해 방지를 최고의 가치로 여겨야 한다. 정부도 재해에 취약한 산업구조를 꼼꼼히 살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모호한 금지', '강력한 처벌'로 모든 책임을 개인과 기업에 전가하려는 건 옳지 않다.
가뜩이나 요즘 정치인들은 법치국가적 인권보장책을 축소하고, 죄형법정주의의 원칙마저 신축성 있게 적용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새로 등장하는 법률마다 '정확히 짜인 조건' 대신 '느슨히 풀린 목적'만 선전하고 있지 않은가. 중대재해처벌법도 대표적인 케이스다.
우리 헌법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천명하고 있다. 결국은 개인과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창의적 아이디어를 발휘해 부를 늘려 놓아야 나눠 가질 게 생긴다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 이 정부 들어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옥죄는 법이 속속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아예 경영을 기피하려는 분위기도 팽배하고, "이 나라에서 기업을 한다는 건 언제든지 처벌받을 각오 없인 불가능하다"는 볼멘소리까지 들린다.
이러다가 과연 누가 '사업주·경영책임자'로 총대를 메줄 건지 슬며시 걱정도 앞선다. 혹여 국가가 경영도 하면 된다고 할 건가. 그러나, 경제의 주역을 국가로 보는 건 민주주의와 양립하지 못하는 일이다.
요즘 '경영'을 '범죄'로 낙인찍는 법이 한 둘이 아니다. 과도한 처벌 수준과 규정의 불명확성이 개인과 기업을 처벌의 공포로 몰아넣는다는 탄식도 나온다. 헌법 관점에서 모든 법을 재조명해 움츠러든 '자유와 창의의 숨통'을 조금이라도 틔워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