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즈마 활용 유해가스 처리 연구 첫발 반도체 공정에 도입하며 첫 실용화 성공 군·공항 특수차량에 선박까지 적용 앞둬 수차례 시행착오 끝에 '최고연구실' 도약
기계연 제공
이준기의 D사이언스
송영훈 한국기계연구원 박사
'개척자'란 단어가 어울렸다. 지금껏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하는 낯섦과 두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새로움과 생소함이 주는 호기심에 끌려 27년 가까이 고집스럽게 지켜 왔다. "과연, 그게 되겠어"라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과 냉혹한 평가가 더해질수록 한 눈 팔지 않고 묵묵히 연구실의 불을 밝혔다.
노력의 대가는 허투루 나오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처음 시작한 연구는 기초, 응용, 상용화 단계를 지나 산업 현장에 하나 둘씩 적용되기 시작했다.
송영훈 한국기계연구원 박사의 연구에는 기승전결이 또렷하게 담겨 있었다. 미국 유학 생활을 마치고 1994년 기계연에 들어와 당시 생소했던 '플라즈마'와 인연을 맺어 지금까지 한 우물만 파고 있다.
송 박사는 "처음 맡은 게 플라즈마를 활용해 유해가스를 처리하는 연구과제였다"며 "막상 시작하려고 보니 플라즈마 연구인력과 조직도 갖춰져 있지 않아 어려움의 연속였다"고 과거를 떠올렸다. 이후 10년 가량 플라즈마 연구에 파고들다 보니 어느덧 자리를 잡아 갔다.
그는 "우리가 개발한 플라즈마 기술이 반도체 공정과 특수 차량 등에 적용되면서 연구에 자신감이 붙었고, 연구 역량도 높아진 덕분에 27년 넘게 플라즈마 연구를 지속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송 박사는 "기초 연구를 지나 응용 연구, 상용 연구를 거쳐 실용화까지 가려면 각 단계별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면서 협업과 개방성을 확대해야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담=이준기 ICT과학부 차장
◇'잘 살아보세' 기여하고자 과학자 삶 선택=송 박사는 중·고교 시절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면 신문 기사에 실리는 것을 보고 "나도 저런 훌륭한 사람이 되자"고 마음 먹었다. 마침 집 근처에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가 위치하고 있어 "나중에 저기서 일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과학자의 꿈을 키웠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산업을 빨리 일으켜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는 시대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공과대학에 입학했고, KAIST 석사과정에 들어와선 어릴 적 로망였던 KIST에서 실험과 공부하는 기회도 가졌다.
그는 "공대 관련 공부가 무척 재미 있었고, 잘 모르는 현상을 실험을 통해 원리를 밝혀내고, 이를 통해 세상에 없었던 새로운 기계를 만들어 내는 재미에 푹 빠져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영화 '스타워즈' 광선검이 맺어준 '플라즈마' 연구=그는 어릴 적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가 '스타워즈' 였다고 했다. 특히 영화에서 나오는 '광선검'을 보고 너무나 신기해 대학에 들어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궁금함에 각종 자료를 찾아봤다.
레이저와 플라즈마 기술을 결합하면 광선검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석·박사 시절 레이저를 활용한 실험에 푹 빠지기도 했다. 플라즈마는 초고온에서 전자를 얻거나 잃은 이온화된 기체로, 고체, 액체, 기체도 아닌 '제4의 물질'로 불린다. 우주의 99%가 플라즈마로 이뤄져 있으며, 번개와 오로라, 형광등, 네온사인 등이 플라즈마 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이 때문이었을까. 연구소에 처음 들어와 플라즈마를 활용해 당시 가장 큰 사회적 이슈였던 대기오염을 줄이는 연구를 맡게 됐다.
송 박사는 "연소공학을 전공한 저에게 플라즈마는 생소한 분야였고, 연구조직과 인력도 없어 거의 혼자서 연구를 해야 했다"며 "당시 우리나라는 플라즈마 불모지나 다름 없었기에 플라즈마 전원장치 개발 등 모든 걸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연구를 하면서 점점 플라즈마의 잠재력을 깨닫게 됐고, 기업들과 협업해 수 차례의 실패와 시행착오 끝에 플라즈마 전원장치를 국산화할 수 있었다.
◇멈춰서던 반도체 공정, '플라즈마'로 해결=20년 넘게 송 박사가 이끌어 온 플라즈마연구실에서 탄생한 플라즈마 기술들은 속속 산업 현장에 적용되면서 가치를 높여갔다. 가장 먼저 반도체 공정에서 배출되는 유해가스 처리에 '플라즈마 반응기 기술'이 적용되면서 실용화의 첫 단추를 뀄다. 반도체 공정에서 나오는 여러 가스 중 일부는 화학반응을 통해 진공펌프나 관(管)을 막아 생산 공정을 멈추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송 박사가 개발한 플라즈마 반응기를 진공펌프 앞단에 설치하면 유해가스를 태워 관이 막히는 것을 해결할 수 있다.
이 같은 기술적 우수성을 바탕으로 제품으로 실용화에 성공한 덕분에 국내 굴지의 반도체 기업의 생산 공정에 600∼700대를 공급할 수 있었다. 송 박사는 "플라즈마 반응기를 설치하기 전까지 2주에 한 번씩은 진공펌프가 막혀 공정이 멈추는 일이 있었지만, 우리의 기술을 적용한 이후에는 2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멈춰서는 일이 발생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계기로 우리의 기술이 산업 현장에서 가치 있게 쓰일 수 있다는 데 자신감을 얻게 됐다고 그는 말했다.
◇군·공항·선박 등 미세먼지 다배출 특수차량에도 '장착'=최근에는 배기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건설기계, 군, 공항 등에서 쓰이는 특수 차량뿐 아니라 선박 등에 플라즈마 버너 기술을 적용하기 위한 실증을 마치고, 실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 기술은 디젤차를 비롯한 특수 차량에 나오는 매연가스를 고온의 플라즈마로 태워 미세먼지와 같은 유해가스를 제거한다.
기존 매연저감장치는 일정 온도 이상에 도달해야 장치가 작동하는데, 건설기계나 군, 공항, 선박 등은 워낙 저속으로 운행되기 때문에 촉매 장치들이 전혀 작동하지 않아 걸러지지 않은 배기가스를 그대로 배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송 박사는 "이들 차량에는 저감장치를 달아야 하는 규제도 마련돼 있지 않아 배출된 배기가스가 대기 중 화합물과 결합해 엄청난 미세먼지를 발생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어 사실상 '미세먼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개발한 플라즈마 버너는 엔진과 매연저감장치 사이에 위치해 배기 온도를 높여 장치 작동을 도와 배기가스 배출을 줄여준다. 부피가 음료수 캔 크기로 작아 차량에 부착하기도 쉽다.그는 "플라즈마 버너를 자동차 배기관에 넣어 온도를 높여 작동시킨다는 발상에 많은 사람들이 우려해 실증하기 조차 쉽지 않았지만, 10년 넘는 긴 시간의 연구개발을 통해 가시적인 성과물로 보여주자 우리 기술을 인정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군의 도움이 가장 컸다고 송 박사는 군 관계자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국방부와 공군, 환경부 등의 협조를 받아 지난 3년 동안 군부대 특수차량 160대에 플라즈마 버너를 장착해 성능과 내구성을 검증했다. 지금까지 실증 과정에 큰 문제가 없어 공군, 육군에 이어 공항에도 시범 적용하고 있어 실용화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R&D도 축구처럼'…"기초-응용-상용연구 연계돼야"= 송 박사는 '축구 마니아'다. 연구원 내 '축구 동호회'를 오래 전부터 이끌어 왔고, 틈틈이 경기에도 뛰는 열정을 보이고 있다.그는 연구개발(R&D) 과정이 마치 축구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송 박사는 "축구에서 공이 수비수와 미드필더를 거쳐 공격수에 넘겨져 골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연구도 기초-응용-상용연구 등 각 단계가 원활하게 이어지고, 플레이어 간 협업이 제대로 이뤄져야 '실용화'라는 골을 넣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송 박사의 플라즈마연구실은 기초, 응용 연구에 주력해 왔다. 기초 연구는 연구실의 젊은 연구자가, 응용 연구는 중견 연구자가 각각 맡았다. 제품 개발은 기술을 이전한 기업들이 담당토록 해 각 단계별 역할 분담을 명확히 했다. 여기에 각 단계에서 얻어진 성과가 원활하게 이어지도록 내·외부 협업과 개방성을 확대하는 데 역량을 쏟았다. 그는 "기초나 응용연구는 저나 연구팀이 열심히 하면 어느 정도 성과가 나와 크게 어렵지 않았다"며 "하지만, 기업에 기술이전하고, 제품 개발 단계는 사실상 연구자의 손을 떠나 오로지 기업의 몫이기에 부모가 자식을 결혼시키고 행복하게 잘 살기 바라는 것처럼 가장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송 박사는 기업의 제품 연구가 성공할 수 있도록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는 데 가장 많은 신경을 쓰면서 기업체 개발자들과 소통 및 협업을 확대해 갔다.
◇연구비 중단 극복 '최고 연구실' 도약…"세대 이어 연구 지속해야"=송 박사는 출연연이 주로 수행하는 응용연구의 경우 제품개발로 이어져 산업·경제적 가치를 지녀야 '진정한 연구성과'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그래서 플라즈마를 활용해 유해가스, 미세먼지를 저감하는 제품 개발과 산업 적용을 최종 목표로 20년 넘게 연구를 지속해 왔다. 이 과정에서 연구비 지원이 중단되는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연구를 이어가기 위해 부족한 연구비를 메우기 위해 다른 연구과제에도 참여했다. 심지어 낮은 평가를 감수하면서까지 꿋꿋하게 플라즈마 연구를 접지 않았다. 언젠가 플라즈마가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면서 산업·경제적으로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과 이를 기술로 실현할 수 있는 자신감을 송 박사는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플라즈마연구실은 지난해 연구원 45주년 창립을 맞아 관련 연구성과를 국제학술지에 80편 넘게 게재하고, 국내외 특허등록 100건, 기술이전 등을 인정받아 '최우수 연구성과' 상을 받았다. 그는 "처음 연구를 시작할 때와 비교하면 연구실 규모나 인력, 성과 등 모든 면에서 엄청난 발전을 이뤄왔다"며 "지난 27년 동안 축적한 기술적 역량을 토대로 세대를 이어 탄소중립, 기후변화 등 인류의 당면 과제를 해결하고, 이를 실용화할 수 있도록 후배 연구자들과 함께 연구실을 지키겠다"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