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금융민원 5건 중 3건 ‘보험’ 금감원 인력 제한에 민원처리 지연 "단순 사안 이관해 소비자만족 제고" 보험업법 개정안, 금융위도 긍정적 # A씨는 올해 초 상대방 차량의 무리한 끼어들기로 접촉사고가 발생했고, 보험사는 A씨의 과실비율을 20%로 산정했다. A씨는 경미한 사고에 비해 수리비가 생각보다 많이 나왔고, 보험사가 합리적인 이유없이 본인의 과실비율을 높게 산정한 것은 부당하다며 금감원에 민원을 넣었다. 하지만 금감원은 밀린 민원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반년이 넘게 답을 주지 않고 있다.
보험 가입자들이 보험사와 분쟁이 있을 때 마지막 보루 중 하나로 찾는 곳이 금감원이다. 하지만 많은 민원이 몰리다 보니 보험민원의 처리 기간이 늘고 소비자들이 불편함을 겪고 있다. 이에 질의와 같은 단순 민원은 보험협회가 맡자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으나 한편에선 보험사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협회가 소비자 권리를 제대로 지킬 수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금감원에 접수된 금융 민원 9만334건으로 이중 보험 관련 민원이 5만3294건(59%, 생명보험 23.4%·손해보험 35.6%)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금감원에 보험 관련 민원이 집중되고 있지만 금감원 인력은 한계가 있어 부담이 가중돼 왔다.
금융 민원 건수는 지난 2017년 7만6357건에서 2018년 8만3097건, 2019년 8만2209건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금융 민원의 평균 처리 기간도 2019년 기준 24.8일로, 전년 대비 6.6일 증가했다. 민원 처리가 한 달 가까이 소요되면서 민원인의 불만도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보험의 경우 다른 금융상품에 비해 소비자 민원이 많다. 자동차보험이나 실손보험, 생명보험 등 보험 종류가 많은 데다 약관 해석이나 사건 이해 등에 따라 다양한 판단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보험업법에 따라 보험 관련 민원은 금감원만 처리할 수 있도록 돼 있어 소비자가 답변을 받으려면 상당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감독당국과 업계는 보험민원을 생명·손해보험협회에 일부 이관해 처리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삼성생명 암보험 지급 문제와 같이 분쟁성 보험 관련 민원은 금감원에서 처리하되 보험회사의 단순 업무처리 실수, 질의, 보험료 할인ㆍ할증 질의 및 교통사고 과실문의 등은 보험협회에서도 처리할 수 있도록 경로를 하나 더 열어두자는 것이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보험 민원 가운데 약 16.2%(8620건)는 협회가 처리할 수 있는 단순 사안이다. 업계 관계자는 "금감원에 접수되면 금융민원으로 분류돼 모두 같은 절차대로 처리가 되는데, 보험의 경우 모든 민원이 금감원을 거치는 만큼 단순 불만, 질의까지 보험 민원으로 집계되고 있다"며 "단순 민원의 경우 협회에서 처리하게 되면 민원처리는 지금보다 더 신속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도 복잡하고 논란 가능성이 있는 분쟁민원에 집중해 심층적인 분석·조정 역할 수행할 수 있게 된다.
실제 증권·펀드 등을 다루는 금융투자협회에서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그리고 저축은행, 카드 등의 협회인 여신전문협회에서는 '여신전문금융업법'에 근거해 분쟁조정이나 민원 상담 업무 등을 협회에서 맡고 있다.
관련 법안도 발의돼 국회에 계류 중이다. 지난해 4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생명·손해보험협회가 보험업권의 민원을 처리하고 분쟁 자율조정, 상담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보험업법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보험사들도 개정안을 통해 단순 민원이 협회로 이관되면 단순 민원을 반복적으로 제기하거나 금감원 민원을 악용하는 일부 블랙컨슈머 문제 해결이 훨씬 수월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비급여 이용이 많거나 경미한 질환이나 사고에도 진단비, 수술비 등을 받기 위해 반복적으로 보험금을 청구하는 경우가 잦은 손해보험사의 경우 손해율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도 지난해 10월 금융위 국정감사에서 보험민원 중 단순 민원을 협회가 처리하는 방안에 대해 "괜찮은 것 같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내놨다. 보험협회가 보험사를 대변하는 단체인 점을 들어 반대하는 의견에 대해서는 "보험협회가 민원처리에 있어 공정성과 객관성을 갖춰 소비자들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도록 금융위에서 고민을 해 볼 것"이라고 했다.
해당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금감원과 보험협회, 보험사 모두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제도개편이 될 수 있다. 다음달 대선이 끝나면 실제 개정까지 이어질 확률도 높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 단체는 보험 민원 처리 권한을 보험협회에 맡기자는 것에 대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보험협회는 회원사인 보험사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로, 사실상 보험사 편을 들어줄 확률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금융소비자연맹(금소연)은 "보험소비자들이 정부기관인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하는 이유는 보험사에 민원을 제기 했으나 들어주지 않고 거부하거나 보험사를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금감원의 민원 처리 업무를 개선하기는커녕 보험협회로 민원 처리를 넘긴다는 것은 보험소비자를 보호하는 게 아니라 포기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금감원 민원은 보험회사와 갈등이 있을 때 보험 전문지식이 없는 소비자들이 피해를 호소하거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창구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민원 처리 속도보다는 민원을 제대로 처리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김수현기자 ksh@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