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유산, 그 기억과 향유
이광표 지음/현암사 펴냄
충남 예산 덕숭산 수덕사 초입의 수덕여관은 '근대'의 자취가 배인 근대 문화재다. 고암 이응노 화백이 여관을 구입해 말년을 보낸 곳이다. 절에 무슨 여관이냐 의아할 테지만 원래 비구니 거처로 쓰였다고 한다. 길다란 장방형 초가집으로 지붕 선이 주변 산들과 맞춘 듯 어우러진다. 폐허가 됐던 것을 2007년 복원했다.
수덕여관을 찾아가 설명문을 보면 이응노 화백이 지냈던 이야기를 중심으로 쓰여있다. 그런데 조금만 더 들어가면 수덕여관은 다른 두 근대 인물과도 밀접히 관계돼 있다. 사실 수덕여관은 최초의 여류화가이자 문인이었던 나혜석이 머물렀던 곳이다. 나혜석이 출가를 위해 수덕여관에 기거할 때 이응노를 만났고 이응노가 나혜석으로부터 그림을 배웠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나혜석은 승려가 되지 못 했지만 승려처럼 전국을 떠돌다 행려병자로 생을 마감했다. 또 다른 인물은 김일엽이다. 그는 비구니로서 출가에 성공했다. 여성 문인으로 활동하다 수덕사에서 입적했다.
수덕여관에 숨겨진 이러한 근대의 스토리를 모르고선 근대 문화재로서 수덕여관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한다 할 것이다. 책은 최근 일상에서 '근대'를 기억하고 경험하고, 나아가 소비하는 것이 주요 트렌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과연 근대를 올곧이 알고 향유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우리 주변의 많은 근대 문화재들이 훼손되는 사정도 걱정한다. 앞으로 50년이나 100년이 흐르면 어엿한 문화유산으로 대접받을 텐데, 마구잡이로 허물고 훼손하는 것을 보며 가슴아파한다. 특히 저자가 제기하는 문제점 중 시선이 가는 점은 건축 문화재의 천편일률적 활용이다. 대부분의 경우 전시관이나 공연장, 카페 등으로 유지되고 있는데, 원래의 맥락에 맞게 활용하는 것을 좀더 고민해봐야 하지 않나 강조한다.
전국에 산재한 근대 문화재를 직접 찾아 찍은 사진들이 많다. 추억과 향수를 자아내는 도판들이다. 저자는 일간지 문화부에서 문화재 담당 기자로 오랫동안 근무했고 대학에서 교양으로서 문화재를 바라보는 시각을 틔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을 맡고 있기도 하다.
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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