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가계와 기업의 빚(신용)이 전체 경제 규모의 2.2배로 사상 최대 수준에 달해 실물 경제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는 한국은행의 분석이 나왔다. 한은은 코로나 19 장기화와 빚투(빚을 내 투자), 영끌 대출(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로 부동산 가격도 경제 여건과 비교해 역대 최고 수준이라며 이런 금융 불균형 상태가 이어지면 경제 성장률이 최악의 경우 -3.0%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은이 23일 발표한 하반기 금융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말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 신용(자금순환표상 가계·기업 부채 합) 비율은 219.9%로 집계됐다. 관련 통계가 시작된 197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부문별로는 1년 전보다 GDP 대비 가계신용 비율(106.5%)이 5.8% 포인트, 기업신용 비율(113.4%)이 3.6% 포인트 상승했다. 가계부채(1844조9000억원)는 1년 새 9.7% 늘었는데,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2010년 말 843조원과 비교해 두 배 이상 급증했다.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소득보다 빨라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3분기 말 174.1%까지 높아졌다. 지난해 같은 시점보다 8.1%포인트나 높다.
이처럼 민간 부채가 늘고 부동산 등 자산 가격까지 뛰면서, 신용축적 정도와 자산(부동산·주식·채건) 가격, 금융기관의 복원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측정한 금융취약성지수(FVI)도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3분기 기준 FIV는 56.4로 올해 2분기(59.2)보다는 낮지만 코로나19 사태 직전 2019년 4분기(42.6)를 웃돌았다.
특히 부동산 부문의 지수(100)는 1996년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고치다. 경제 규모나 여건에 비해 최근 부동산 가격이 어느 때보다 높다는 뜻이다. 커진 금융불균형 위험은 가계 소비 제약, 기업 투자 위축 등을 통해 실물경제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게 한은의 진단이다.
실물경제 충격 실증 분석 결과, 현재의 금융 불균형 수준에서 대내외 충격이 더해지면 극단적 경우(10%의 확률) GDP 성장률이 2023년께 연 -1.4%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주요국 금융불균형 상황까지 반영하면 성장률은 같은 확률(10%)로 연 -3.0%까지 내려간다.
한은은 가계부채가 소비를 제약하기 시작하는 임계치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기준 45.9%로 분석했다. 올해 3월 말 평균 DSR(36.1%)보다 높아 아직 가계의 전반적 채무상환 부담이 소비를 줄일 정도의 수준은 아니지만, DSR이 8% 포인트 뛸 경우 저소득층, 청년층 대출자 가운데 27.7%, 19.7%는 소비 임계치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됐다.
한은은 급격한 디레버리징(차입 상환·축소)과 주택가격 조정 가능성도 언급했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가계의 높은 실물자산 보유 비중, 고위험 가구 증가 등을 고려할 때 가계의 실질소득이 많이 감소할 경우 가계가 실물자산 매각을 통해 유동성 확보에 나서면서 주택가격 조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은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계의 총자산 대비 실물자산 비중은 64%로 미국(29%), 일본(38%) 등 주요국보다 높다. DSR이 40%를 넘고 부채가 자산보다 많은 '고위험 가구' 수도 2018년 말 30만 가구에서 2020년 말 40만 가구로 급증한 상태다.
한은은 "가계부채가 아직은 소비를 제약할 수준까지 이르지 않은 것으로 보이고 주택가격 급락 등 금융 불균형 조정이 발생하더라도 금융기관들은 대체로 양호한 복원력을 유지할 것"이라면서도 "가계부채가 누증될수록 대내외 충격에 금융·실물경제의 변동성이 더 커지고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이 저하될 수 있는 만큼 가계부채 억제는 일관되게 추진돼야 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