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2005년부터 2021년까지를 메르켈 시대로 이야기할 것이다." 독일 녹색당 출신 바덴뷔르켕베르크 주지사 빈프리트 크레치만이 주간지 '디 차이트'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독일에서 메르켈은 시대를 아우르는 말로 대체됐다.
지난주 '철의 연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박수를 받으며 퇴임했다. 재임 기간이 무려 16년(5860일). 역대 최장 기록을 지닌 헬무트 콜 전 총리보다 불과 10일 짧다.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고 했던가. 메르켈은 든자리도 난자리도 확연히 표가 났다. 2010년을 제외하고 2006년부터 2020년까지 14년 동안 포브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위에 올랐다. 퇴임하면 좋은 책을 읽으며 휴식을 취하고 싶다고 했지만 그의 대중적 인기는 여전히 식을 줄을 모른다.
메르켈의 수식어에는 '최초'라는 단어가 여러 번 등장한다. 독일 최초의 동독 출신 총리, 최초의 과학자 출신, 최초의 여성 총리. 그리고 역대 최연소로 총리 자리에 등극한 인물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번 선거에 스스로 출마하지 않음으로써 '독일 역사상 자발적으로 퇴장한 첫 총리'라는 새 기록도 남겼다.
그가 떠난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외신은 여전히 '메르켈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로 뜨겁다. 특히 메르켈은 위기에 강한 리더십으로 귀결된다. 2008년 국제 금융위기 때는 소속정당의 자유주의 정책 대신 사회안전망과 정부 지원을 확대하는 정책으로 혼란에 빠진 독일을 잠재웠다. 메르켈 내각은 보수 정당이었지만 정책에 진보와 보수를 구분 짓지 않았다. 정당 성향에 국한되지 않고 정책을 선택했다.
메르켈의 리더십의 특징은 독일 정치판을 '정치'보다는 '정책'에 대한 토론장으로 바꿔 놓았다는데 있다. '앙겔라 메르켈: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의 저자 매트 포트러프 영국 코벤트리 대학교 교수의 발언은 꽤나 곱씹어볼만 하다. 그는 "과거 독일 정치계는 테스토스테론으로 가득찬 남자들의 모임에 가까웠다. 그러나 메르켈 총리 아래에선 한층 정책 중심으로 흘러갔다"고 진단했다.
양자 화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물리학자 메르켈은 그의 이력답게 정치에 대한 접근법을 '사실'에 기반을 뒀다. 정치가 양극단으로 대립할 때도 제기되는 이슈에서 정치적 요소를 배제하고 정책에 초점을 맞추며 상황을 풀어나갔다.
독일은 16년 전에만 해도 '유럽의 병자'라는 별명이 불릴 정도였다. 경제는 바닥이 어딘지도 모를 정도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당시 실업률은 11%에 달했다. 기업은 성장을 잊어버렸다. 계속되는 악순환은 내내 독일 경제를 짓눌렀다. 이 때 메르켈이 강조한 전략 한 가지, 그것은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정책을 수정하지 않고 꾸준히 확실하게 나라를 이끌고 가는 것이었다.
'철인' 메르켈의 면모는 2011년 이탈리아가 재정위기에 처했을 때도 단연 돋보였다. 재정위기가 다른 나라들로 불붙어 가고 있었다. 유럽에서 좌장격인 독일이 위기에 취약한 나라들을 유로존에서 축출할지 다른 나라들은 촉각을 기울였다. 메르켈의 선택은 단호했다. 그는 "유로존이 실패하면 유럽도 실패한다.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메르켈은 재정지원 대가로 사회 보장 축소 등 혹독한 긴축을 요구했다.
메르켈은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유럽 통합의 상징이 됐다. 지난해 EU 27개국 회원국 정상들은 코로나19가 불러온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7500억유로(약 1048조원) 규모의 경제회복기금을 만들기로 했다. 여기서 메르켈은 일대일 설득을 하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시선을 국내로 돌려보면 양강 두 대선 후보들의 어법은 극초현실적이다. 이재명은 기본금융 개념을 설명하면서 "경제는 정치"라는 해괴한 말을 했다. 윤석열은 소상공인 손실보상에 50조원을 쓰겠다고 했다. 그야말로 '아무말 잔치'다. 구체적인 정책은 없고 정치만 난무한다.
메르켈은 나약하기 짝이 없는 독일을 강하게 바꿨다. 한국의 새 리더십은 내일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걸까. 독일의 정치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정치는 정열과 균형감을 지니고 두꺼운 널빤지를 힘있게 천천히 뚫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에겐 너무 수준 높은 주문 같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