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범식 고등과학원 교수   고등과학원 제공
고 김범식 고등과학원 교수 고등과학원 제공
"교수님은 아버지만큼 진실로 존경하는 최고의 수학자이자 스승이고, 인생의 롤모델이셨습니다. 세계적인 업적을 이룬 석학이면서도 누구보다 따뜻하고 순수한 마음 때문에 인간적으로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영국 임페리얼칼리지에서 수학을 연구 중인 오정석 박사는 최근 유명을 달리한 고 김범식 고등과학원 교수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오 박사와 노현호 충남대 교수(수학과)를 포함한 김 교수의 제자들은 7일 서울 동대문구 고등과학원에서 추도행사를 갖고 그의 연구업적과 삶을 기렸다. 온·오프라인으로 진행된 추도식에는 고등과학원 동료와 국내 수학자들은 물론 해외 연구자들도 참여했다.

김 교수는 '거울대칭 이론'의 권위자로서, 2007년 최연소 국가석학으로 선정된 데 이어 2014년 포스코 청암상, 2020년 한국과학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대가다. 그는 지난 2일 55세의 나이에, 부인과 대학생 두 아들을 남겨두고 유명을 달리했다. 한창 연구에 몰두할 석학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국내 수학계도 애도와 안타까움에 빠져 있다.

김 교수와 마지막을 함께 한 사람은 팬데믹 때문에 오랜 만에 고국으로 들어와 스승을 찾은 오 박사다. 김 교수는 20년 가까이 몸담은 고등과학원 인근의 한 식당에서, 오랜만에 만난 제자에게 고기를 구워주며 미뤄놓은 대화를 풀어내다 심장마비를 맞았다. 가까운 병원으로 급히 옮겨졌지만 손을 쓰지 못 했다.

오 박사는 "김 교수님은 지도학생에게 너무나 따뜻한 분이셨다. 오랜만에 귀국해 찾아온 제자에게 식당 안쪽 자리를 내어주고는 물과 수저를 챙겨주고 고기를 구워주셨다"면서 "마지막까지 아버지같이 따뜻하셨다"고 말했다. 9일 출국을 앞둔 그는 "교수님이 얼마나 훌륭한 분인지 더 많은 이들이 기억해 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1990년대 말부터 거울대칭 이론을 개척해 왔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 UC버클리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포스텍에서 부교수를 지내다 2003년부터 수학·순수과학 연구의 본산 고등과학원 교수로 재직했다. 2014년 8월 서울에서 열린 '2014 세계수학자대회'에서는 초청연사로 발표하기도 했다. 이 행사는 국제수학연맹이 4년마다 개최해 '수학계의 올림픽'으로 불린다.

거울대칭 이론에 따르면,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면 실제 모습을 보지 않아도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는 것처럼, 우주에서도 서로 관계 없다고 여겨지는 현상들이 거울에 비친 것처럼 서로 관련이 있다. 물리학 연구 과정에서 A라는 현상이 B 현상과 같다는 사실이 이곳저곳에서 발견되는데, 이를 거울대칭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특히 우주를 설명하는 초끈이론이 여러 갈래로 제기되는데, 이 이론을 접목하면 각각의 갈래가 실제로는 같은 것을 가리킴을 알 수 있다. 김 교수는 거울대칭 현상에 대해 독창적인 기하학 이론인 '쿼지맵 방법론'을 창안해 수학과 물리학을 아우르는 통합적인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김 교수의 첫 제자인 노현호 교수는 "김 교수님은 작고하기 직전까지도 GLSM 방법론을 통해 수학과 물리학을 통합해 설명할 수 있는, 현재까지 가장 일반화된 형태의 이론을 정립했다. 이는 수학뿐 아니라 물리학의 역사에도 획을 긋는 위대한 업적이며, 앞으로 이를 토대로 수많은 중요한 연구들이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김 교수님은 지금까지 만난 어떤 이보다도 순수하고 열정적인 수학자이시기에 갑작스러운 별세가 더욱 큰 아픔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금종해 대한수학회장(고등과학원 교수)은 "김 교수는 문제에 몰입하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며칠이고 집요하게 파고드는 연구자였다"면서 "그의 별세는 한국뿐 아니라 국제 수학계의 큰 손실"이라고 밝혔다.

수학자는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거울'인 두 아들과 제자들, 중학교 수학교사 출신의 부인이 그가 미처 세상에 덜 전한 온기를 나누며 살아 갈 것으로 보인다.



안경애기자 naturea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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