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을 공식 발표하자 한국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은 외교적 보이콧 이유로 중국의 인권탄압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러면서 공개적으로는 동맹국의 동참을 요구하지 않는 모양새이지만 동맹국들도 미중의 '가치 갈등' 구도 속에 선택의 기로에 섰다는 분석이다. 미국 이외 다른 서방 국가가 동참할 가능성이 거론되는 가운데 중국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6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바이든 정부는 신장에서 중국의 지속적인 종족 학살과 반인도적 범죄, 기타 인권 유린을 감안해 어떤 외교적, 공식적 대표단도 베이징 올림픽과 패럴림픽에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키 대변인은 "우리는 인권 증진에 대한 근본적인 약속을 하고 있다"며 "우리는 중국과 그 너머에서 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를 계속 취할 것"이라고 했다. 네드 프라이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도 "올림픽에 대표단을 보내는 문제는 각국이 주권적으로 내려야 할 결정"이라며 "다른 나라들도 향후 며칠, 몇 주 사이 자신들의 결정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방 세계의 리더격인 미국의 입장은 동맹국들과 우방국들에도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특히 사키 대변인은 "미국이 외교적·공식적 대표단을 보낸다면 중국의 지독한 인권침해, 신장에서의 잔혹 행위 앞에서 이번 올림픽을 평상시와 다를 바 없이 취급하는 격이 된다. 그렇게는 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내놨다.
앞서 미국 의회에서도 중국 신장 지구의 위구르 소수민족 탄압, 홍콩의 인권 탄압 등을 문제 삼아 베이징 올림픽을 보이콧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정부 사절단을 파견하지 않는 외교적 보이콧에 대해 초당적인 공감대가 형성된 가운데 일각에선 선수단까지 보내지 않는 전면 보이콧이 거론되기도 했다.
미국이 외교적 보이콧을 공식화함에 따라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방 진영의 연쇄 동참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현재 영국, 캐나다, 호주가 외교적 보이콧을 검토 중이라는 외신 보도가 나온 상태다.
올림픽에 공식 사절을 보내는 것이 중국의 인권 유린 행위를 묵인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는 상황으로,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 역시 인권이라는 명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미국의 이런 기조는 평창에서 도쿄, 베이징으로 이어지는 동북아 3국의 '릴레이' 올림픽이 성공리에 치러지길 바란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과도 다소 결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베이징 올림픽 외교적 보이콧 관련 질문에 "다른 나라 정부의 외교적 결정이라 특별히 언급할만한 사안은 없다"면서 "베이징올림픽이 동북아와 세계평화·번영에 기여하고 남북관계 개선의 전기가 되길 바란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정부는 미국의 다른 동맹국 등 국제사회의 외교적 보이콧 동참 여부를 주시하면서 고위급 인사를 비롯한 대표단 파견 여부를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통상적 관례에 따라 중국 측에 체육 관련 주무장관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참석자로 이미 제출했는데, 이 또한 다시 판단해야 할 수도 있다.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서방의 견제 구도 완화와 지지 확보를 위해 '약한 고리'인 한국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이 서훈 청와대 안보실장, 장하성 주중대사와 잇달아 회동하고, 중국 매체가 한국 측의 베이징 올림픽 지지 발언을 부각한 것은 중국의 이런 의도를 보여준다는 해석이다.
베이징 올림픽 외교적 보이콧은 미중이 서로 타협하기 어려운 '가치 대립', 서방세계 대 중국의 진영대결 구도를 심화하는 발화점이 될 수 있어 한국이 모호성을 계속 유지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이 외교적 보이콧을 공식화한 만큼 종전선언 등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한 한반도 정세 진전 구상에도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다만 최근 정부 당국자들은 "베이징올림픽과 종전선언을 불가분의 관계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이인영 통일부 장관)며 올림픽을 계기로 한 종전선언 추진에 다소 거리를 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