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연 융합연구, 연구현장에 정착 성과
논문·특허 2.3배… 기술이전 4.7배 높아
융합연구 사업 3000억 규모로 매년 확대
연구자 참여로 핵심 원천기술 확보 기대

김복철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NST 제공
김복철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NST 제공

이준기의 D사이언스

김복철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30년 넘게 몸담은 이유 때문일까. 국가 연구소인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에 대한 애정과 사랑은 남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과학자 길로 갓 들어선 신진 연구자 시절부터 기관장을 거쳐 지금의 자리까지 30년 이상 출연연 곁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출연연 연구 현장에서 소위 '산전수전 공중전'을 모두 다 겪었기에 그를 출연연과 떼어 놓고 논할 수 없다는 데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세상에서 출연연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농담 섞인 말로 그를 평가하곤 한다.

김복철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이사장은 지난 7월 한국지질자원연구원장을 끝으로 30년 간의 출연연 연구인생에 마침표를 찍고, 25개 출연연을 육성·지원하는 NST 새 이사장에 취임했다.

누구보다 출연연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고, 이해도가 높은 그였기에 주변의 기대는 당연히 클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런 기대에 부응하고자 취임 100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 순간도 긴장감을 내려놓을 수 없다.

김 이사장은 취임 일성으로 '출연연 융합연구 활성화'를 내걸었다. 출연연에 대한 국가와 국민들의 기대에 만족할 만한 대형 연구성과를 내놓으려면 출연연 간 벽을 허문 '융합연구' 밖에 없다는 절실함과 절박함의 호소나 다름 없었다.

그는 "NST와 제 역할은 출연연 융합연구 활성화를 통해 출연연 주도의 융합연구생태계를 구축하고, 이를 국내 R&D 전반에 확산시켜 나가는 것"이라고 피력했다. 김 이사장은 2014년 NST 통합 출범과 함께 시작한 융합연구단 사업 규모를 키워 융합연구를 출연연의 연구문화로 내재화시키겠다는 구상도 제시했다.

김 이사장은 "출연연은 국가 과학기술 혁신주체의 중요한 한 축이자, 국가의 중요한 전략 자산인 만큼 출연연 연구자들이 두려움이 없이 연구에 몰입하고, 융합과 협력을 통해 미래 기술패권 경쟁의 주역으로 국가와 국민에 부응할 수 있도록 정부와 함께 적극 돕겠다"고 밝혔다.

대담=이준기 ICT과학부 차장

◇출연연, 과거 영광 딛고, '자발적 변화·혁신' 시동=25개 과학기술계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은 1966년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설립을 시작으로 과학기술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의 R&D 생태계의 발전을 선도하며 국가 경제성장과 과학기술 경쟁력 향상을 위한 최전선에서 활약해 왔다.

하지만, 2000년대 접어 들면서 대학과 민간기업 등 다양한 R&D 혁신주체들의 역량이 높아지면서 출연연에서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대형 연구성과 창출이 줄어들자, 출연연 역할과 존재에 대한 회의적인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김 이사장은 "출연연은 기초연구부터 응용연구, 중소기업 지원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의 연구를 수행해야 했고, 수시로 국가·사회가 요구하는 연구에서도 대응해야 했다"면서 "그렇다 보니 선택과 집중을 통한 중장기 연구와 몰입도 높은 연구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됐고, 결국 점차 경쟁력을 잃어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탄생한 것이 지금의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다. NST는 2014년 기초기술연구회, 산업기술연구회를 통합, 출범한 이래 25개 출연연을 총괄 육성·지원하고 있다. NST는 출범 이후 지난 7년 동안 출연연의 변화와 혁신을 통해 새롭게 탈바꿈하기 위한 노력을 가속화했다. 그 과정에서 출연연 R&R(역할과 책임)을 정립했고, 융합·협력 연구생태계 구축을 통해 국가 현안과 난제를 해결하는 '임무지향형 출연연'으로 변모시키는 데 주력했다.

◇"출연연이 기술패권 시대 주인공 돼야"=감염병, 탄소중립, 기후변화, 에너지 혁명 등 전 세계를 둘러싼 각종 현안과 이슈 해결에 과학기술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각 국은 기술패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과학기술 혁신에 국가적 역량을 쏟아붓고 있다.

김 이사장은 "오늘날과 같은 기술 대전환의 시대에서 변화를 주도하지 않는다면 살아 남을 수 없게 된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이런 변화를 이끌어 갈 주인공은 출연연이 돼야 한다"고 출연연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각 출연연은 명확한 역할과 책임을 기반으로 융합과 협력의 기회를 통해 미래 변화를 주도하는 혁신 주체로 전면에 나서고 있다. 지금까지 출연연이 각자도생의 길을 걸어왔다면, 이제는 융합과 협력을 통해 '더 큰 가치, 더 큰 성과'를 창출하는 대한민국 과학기술 혁신 생태계를 선도하는 국가대표 공공연구기관으로 재도약하기 위한 각오를 다지고 있는 것이다. 그는 "NST는 출연연의 체계적 지원과 육성을 위해 설립된 기관인 만큼 출연연을 든든하게 서포트하는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며 "출연연 연구자들이 보다 창의적·도전적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안정적인 연구환경을 조성해 우리나라 융합연구 생태계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출연연 융합연구 내재화' 통해 'NST 2.0' 구현=김 이사장은 '출연연 융합연구 내재화'를 통해 NST 2.0 시대를 열어 가겠다고 피력했다. 출연연 융합연구를 연구현장에 정착시켜 우리나라 R&D 체계를 '출연연 주도의 융합연구 생태계'로 구축하겠다는 복안에서다. 융합연구에 대한 김 이사장의 확신은 최근 들어 융합연구단 사업에서 굵직굵직한 대형 연구 성과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2015년 NST 정책본부장으로 근무하면서 융합연구단 사업을 실질적으로 이끈 경험과 역량을 갖고 있는 것도 한 몫하고 있다.

그는 "사업 초기 융합연구단 사업에 대한 많은 우려와 걱정이 있었지만, 5∼6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보면 상당한 성과가 나오고 있다"며 "출연연의 일반 R&D 과제에 비해 논문과 특허는 2.3배, 기술이전은 4.7배 가량 높은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면역치료제 융합연구단은 백혈병, 간암, 폐암 등 난치성 암 치료기술을 1500억원이 넘는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고 설명했다.

기술이전 성과뿐 아니라, NST가 지원하는 51개 융합연구과제는 종료 이후 다른 과제로 연계돼 새로운 과제로 이어지는 등 이른바 '이어 달리기' 성과도 나오고 있다.

융합연구단 사업은 출연연과 산학연 연구자들이 한 곳에 모여(On-Site) 융합연구를 통해 국가·사회 현안이나 산업계 대형 기술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2014년 처음 시작됐다. 연구단별 연간 40∼80억원의 연구비를 최대 6년간 지원하는 등 한 해 예산이 900억원에 이르고 있다.

김복철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NST 제공
김복철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NST 제공
◇"융합연구사업 판 키울 것…출연연은 중요한 국가 전략자산"=김 이사장은 융합연구 사업의 파이를 키우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현재 융합연구 사업은 1000억원 규모로, 이를 매년 조금씩 늘려 3000억원 수준까지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융합연구 사업에 NST가 리더십을 갖고 추진하고, 출연연 주도의 자발적 융합연구 생태계를 대학으로 넓혀 가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NST 주도로 대한민국의 융합연구 모델과 융합연구 생태계 플랫폼을 출연연 중심으로 만들어 가겠다는 게 김 이사장이 그리고 있는 융합연구 사업의 지향점인 셈이다.

김 이사장은 "앞으로 NST 주도의 융합연구 규모를 3000억원, 출연연 자체 융합연구는 4000∼5000억원 수준으로 각각 확대하면 출연연이 수행하는 전체 융합연구는 8000억원으로 커져 판을 키울 수 있다"며 "이 같은 규모가 돼야 출연연이 국내 융합연구뿐 아니라 국가 R&D 생태계를 리딩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이사장은 연구현장의 의견을 반영해 융합연구 사업을 연구자 중심으로 개선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가령, 출연연의 연구비 매칭 비율을 현재 50%에서 20∼30% 수준으로 낮추고, 온 사이트(On-Site) 연구방식을 다소 완화해 연구자가 융합연구사업에 더욱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고 있다.

또, 현재 운영 중인 80∼100억원 규모의 '융합연구단 사업'과 20억원 규모의 '창의형 융합연구사업'를 잇는 40∼50억원 규모의 새로운 융합연구 트랙을 만들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최대 9년(3+3+3년) 간 중장기 융합연구를 통해 미래를 선도할 핵심 원천기술 확보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최근 전국 100개에 달하는 출연연 지역조직이 지자체와 대학, 기업 등과 협력해 지역혁신 성장의 주체로 역할을 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출연연 지역조직이 지역문제 해결과 지역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R&D 첨병 역할을 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최근 전북 정읍에 있는 생명연 전북분원, 원자력연 첨단방사선연구소, 핵융합연 플라즈마연구센터, 한의학연 등이 원팀을 꾸린 '반려동물신약개발사업단'이 NST 융합연구단 사업에 지역 조직으로는 처음 선정됐다.김 이사장은 "출연연은 2만명의 고급 과학기술 인력과 최첨단 연구시설·장비, 50년 간 축적된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 역량을 지닌 국가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전략적 자산"이라며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 시대에서 우리나라가 미래 지속가능한 발전과 성장을 위해선 출연연이 산학연 R&D 생태계의 구심점 역할을 하도록 모두가 힘을 모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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