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재벌 총수는 정치적 발언 안 한다’는 재벌가의 금기 깨고 파격 행보 군부 독재 시절 ‘재벌 손보기’ 관행이던 한국 풍토에선 이례적 이건희·김우중도 ‘정치 설화’ 후폭풍…“표현 신중해야”
정용진 부회장 인스타그램. <정 부회장 인스타그램 캡쳐>
'정치적 소신이가, 치기인가.'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발언이 연일 화제를 모으면서, 정치적 발언을 금기시해온 한국 재벌가의 불문율을 깬 배경에 관심이 모아진다.
국내 대기업 총수들 사이에선 정치적 발언은 삼가는 분위기가 암묵적으로 형성됐다. 과거 군부독재 시절부터 정권부터 '재벌 손보기'가 일종의 관행처럼 이어진 한국적 풍토 탓이다. 이 때문에 정 부회장의 발언은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과거 정치권의 심기를 거슬렀다가 큰 곤욕을 치른 재벌가의 역사를 모를 리 없는 정 부회장이 과감한 소신 발언을 한 것은 그의 독특한 성향과 함께 정권 말기라는 특수한 상황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있다.
정 부회장은 지난 15일 '공산당' 발언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빨간색 카드 지갑과 잭슨 피자 박스를 들고 있는 사진을 올리며 "뭔가 공산당 같은 느낌인데 ㅠㅠ 오해 마시기 바랍니다"란 문구와 함께 '난 공산당이 싫어요'란 해시태그를 붙였다.
일부 매체에서 이를 기사화한 뒤 논란이 일자 17일에는 "반공민주정신에 투철한 애국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자유세계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중략) 난 콩 상당히 싫다"는 글을 또 올렸다.
중국 내 반감과 함께 주주나 소비자 피해가 우려된다는 지적에도 "이것조차도 불편러(매사 불편함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현실이 개탄스럽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이어 24일에는 '北, 오징어게임 들여온 주민 총살…구입한 학생은 무기징역'이란 제목의 신문 기사 사진을 올리며 재차 "공산당이 싫다"고 했다.
업계에선 신세계그룹 내에서 면세점 사업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중국인들이 면세점의 '큰손'이란 점을 감안하면 정 부회장의 이런 발언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중국 소비자들이 정 부회장의 발언을 문제 삼아 불매운동을 벌일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한국유통학회장인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26일 "누구나 개인적 성향이나 의사표현의 자유가 있지만 정 부회장의 경우 책임이 큰 자리에 있기 때문에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표현은 좀 더 신중하게 하는 게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황교익 씨가 부자는 치킨을 안 먹는다, 음식에 계급이 있다고 하는데 댓글 부탁한다"고 한 질문에 정 부회장은 "가세연 보세요"란 답글을 달았다.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가 보수 성향 유튜브 채널이라 정 부회장이 은연중에 정치 성향을 드러냈다는 말이 나왔다.
대부분의 대기업 총수들은 SNS 계정을 운영하지 않는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드물게 인스타그램 활동을 하지만 정치적 성향의 글은 거의 올리지 않는다.
재계 일각에선 대선을 앞두고 진보와 보수 진영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정 부회장이 굳이 특정 정치 성향을 드러내 오해의 소지를 만드는 것이 신중하지 못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정 부회장이 정권 초기라면 그런 말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정권 말기이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보수 성향 후보가 유리한 상황이라 과감하게 속내 발언을 하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김수연기자 newsnews@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