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8일 전국민재난지원금 추진 의사를 결국 철회했다. 이 후보는 자신의 SNS에 "야당이 전국민재난지원금 지급에 반대하고 있다"는 말을 앞세웠지만, 실제로는 정부와 갈등이 커지며 당청 관계에 균열이 감지되자 이 후보가 한 발자국 물러선 모습이다.
특히 이 후보는 "윤석열 후보도 50조 원 내년도 지원을 말한 바 있으니 국민의힘도 반대하지 않을 거라 믿는다"며 "빚내서 하자는 게 아니니 정부도 동의하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올해는 물러서지만, 집권 후에는 훨씬 더 강력한 세금살포 정책을 예고한 셈이다.
그런데 이미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둘러싼 여론은 싸늘한 상황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8일 발표한 여론조사(TBS 의뢰, 지난 5일~6일 조사,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를 보면 전국민재난지원금 추가 지급에 대해 유권자들의 60.1%는 '재정에 부담을 주기 때문에 지급하지 말아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내수 진작을 위해 지급이 필요하다'는 답변인 32.8%의 2배에 육박하는 비율이다. 비슷한 시기의 다른 여론 조사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드러난다.
이는 지난 총선을 앞두고 추진됐던 전국민재난지원금을 비롯해, 총 5차례의 재난지원금 살포 만에 여론이 뒤집힌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간 민주당이 문재인 정부가 위기일 때마다 재난지원금 카드를 꺼내 들었고, 선거 때마다 나쁘지 않은 결과물을 받아들었던 것과는 확연한 온도 차가 있다. 실물 경제가 어렵다는 여론이 많은 상황에서 재정이 '진통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지만, 최근 들어서는 더 이상 이런 단기처방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몇 년도 채 못 가서 소위 '약발'이 다한 모습이다.
하지만 '진통제를 처방한 대가'는 컸다. 단 5차례의 재난지원금 살포는 우리에게 남긴 무거운 짐을 남겼다. 재정 건전성이 바닥을 치면서, 문 대통령마저 지난달 25일 2022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정부가 추가로 확보한 세수의 용처에 대해 "일부를 국가채무 상환에 활용함으로써 재정 건전성 개선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하는 지경이다. 홍남기 경제 부총리도 재정이 녹록지 않은 상황임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특히 사상 최대의 예산안을 계속 쓰면서도 '나라 곳간 상태가 좋아져 부채가 줄었다'는 말은 결국 문재인 정부 내내 들리지 않았다.
이제 사람들은 재난지원금에 면역이 생긴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진통제에 무감각해지고 무거워진 부채를 갚아나가야 하는 고통이 수면위로 올라오자 개혁이라는 수술대에 올려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길 원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치권 일각에서는 수술보다는 '기본소득' 같은 더 강한 진통제를 만지작거리는 모습이 관측된다. 점점 더 강한 진통제를 맞아 나가면 끝은 어디인지, 이후 받아들게 될 더 큰 청구서는 누구의 책임이 될지, 현시대의 어른들의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임재섭기자 yjs@dt.co.kr
9일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소속 단체장들과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 소통관에서 전국민재난지원금 지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