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이든 밀라노 음원에서 피아노·성악 전공해 지휘로 석사밟고 오페라 지휘자 시작 "브장송 최종 결승 오르며 특별상 수상 거장들에 비하면 나는 아직 어린나이 지휘자의 덕목 중 하나인 존중과 겸손" 천재성 이상의 열정과 노력 쌓고싶다
연주자 이든.
연주자의 이름 앞에 '한국인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을 때 그가 짊어질 책임의 무게는 가늠하기 어렵다. 이든(1988~)은 프랑스 브장송 지휘 콩쿠르 최종 결승에 오르며 한국인 최초로 특별상을 받은 지휘자로 기록됐다. 1951년 출범한 이 콩쿠르는 1948년 개최된 브장송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시작 됐다.
이든은 일찍이 이탈리아에서 유학하며 밀라노 음악원에서 피아노·성악을 전공했다. 이후 밀라노 음악원에서 지휘과 석사를 수학하며 오페라 지휘자로 발돋움했다. 그와 주고받은 메일에는 콩쿠르 출전으로 인해 지친 여력도, 우승에 대한 부담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다음을 단단히 준비하고 있는 듯 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
△한 명에게만 주는 그랑프리를 선정할 수 없어 최종 3인 모두에게 공동 특별상(Mention Speciale)을 수여했다. 브장송 콩쿠르 70여 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고, 한국인 수상도 처음이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순위와 등수가 있는 다른 콩쿠르와 달리 브장송 콩쿠르에는 등수가 없다. 또한 2003년에는 최종 3인의 연주가 콩쿠르 기준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해 최종 우승 그랑프리를 공석으로 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심사위원은 "최종 결선에 오른 세 명 모두 다양하고 독창적인 연주를 보여주어 누가 더 훌륭한지 비교할 수 없었다"고 심사평을 발표했다. 이번에 주어진 특별상은 '공동 우승'이나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를 콩쿠르 주최 측에게서 전해 들었다.
△최종 우승자를 선정하지 않았던 전례를 보면 브장송 콩쿠르가 다른 콩쿠르와 달리 중요하게 심사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다른 몇 콩쿠르와 다르게 참가 오케스트라와 심사위원들을 진행 중에 따로 만날 수가 없다. 매번 처음 마주하는 음악가들(오케스트라 단원·합창단·솔리스트) 앞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짧은 시간 내에 음악을 만들어가는 리허설 능력, 소통 방법, 음악을 즐기는 모습을 중요시하는 것 같다.
△콩쿠르 진행 방식에 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예선·본선·결선은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었나?
-콩쿠르 시작 2개월 전, 대면 무대를 거쳐 선별된 20명의 최종 결선 진출자 명단과 함께 1·2차 라운드부터 1·2차 준결선과 최종 결선까지 연주할 레퍼토리를 홈페이지에 게재한다. 1·2차 라운드에는 무대에 올라가기 5분 전, 악보의 어떤 부분을 맞춰볼지 알려준다. 그리고 처음 만난 오케스트라(Orchestre Victor Hugo Franche Comte)와 함께 1차 라운드의 경연곡인 하이든의 교향곡 90번과 103번을 지휘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2차에서는 풀랑크의 '심포니아'의 리허설을 진행한다. 이렇게 최종 결선까지 이어지는 모든 경연은 끝도 없는 리허설의 향연이다.
△1·2차 준결선에서는 리옹 국립 오케스트라·디종 오페라 합창단과 함께 오라토리오와 오페라 작품을 연주했다. 어떠한 작품을 연주했고,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1차 준결선에서는 멘델스존의 '엘리야'의 모든 합창 부분을 리허설했다. 디종 오페라 합창단 50여 명의 단원과 함께 행복하게 음악을 만들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2차 준결선에서는 몇몇 성악가들과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를 리허설했다.
◇오페라 지휘자라는 틀을 벗어던지고
△마스크를 쓰고 경연을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휘자는 지휘봉 외에도 표정과 입 모양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하는데, 마스크 때문에 경연 중 어려움을 겪은 경험은 없었는가?
-다행히 오케스트라 사이 거리 두기가 가능해 마스크를 거의 쓰지 않았다. 하지만 1차 준결승에서 오라토리오 리허설 때는 합창단원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따라서 리허설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단원들의 발음과 음악적 프레이징을 바로바로 알아채 고쳐 나가는 부분이 조금 불편하였다. 이와 반대로 마스크를 쓰고 지휘를 해 원하는 바를 입 모양으로 백 퍼센트 전달할 수 없어 아쉬움이 남았던 무대도 있다. 2차 준결승 과제가 오페라 작품이었는데, 많은 인원이 투입되고 피트에서 연주해야 했기에 거리 두기를 지킬 수 없었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마스크를 착용했다. 하지만 그러한 어려움을 어떻게든 극복해 나가는 것 역시 콩쿠르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임하였다.
△오랫동안 오페라 무대에 서 왔기에 더 유리한 조건이었을 것 같다.
-내가 이탈리아어를 모국어처럼 할 수 있고, 독일어도 공부했기에 작곡가가 의도한 언어적인 뉘앙스를 잘 전해줄 수 있었다. 그리고 지휘를 공부하기 이전에 성악가로 활동했기에 단원에게 직접 노래를 불러 더 빠르고 정확하게 그들의 이해를 도와줄 수 있었다. 나의 경우 다른 장르보다 오페라를 더 사랑하기 때문에 오페라 무대에 많이 선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현대음악·고전음악 등 다른 시대의 음악을 소홀히 하지는 않는다. 동시대 작곡가들과 모든 시대의 교향곡과 협주곡을 즐겨 연주했다. 그 경험들이 쌓여 1·2차 준결선 무대에 잘 드러난 것으로 생각한다.
△최종 결선 무대에서는 이번 콩쿠르를 위해 위촉된 카미유 페팽(1990~)의 '폭풍의 가장자리에(Aux confins de l'orage)'를 초연했다. 초연 작품을 경연 무대에 올릴 때 어떤 과정을 거치는가?
-최종 결승 3인에 선별되고 난 다음 날, 프랑스 작곡가인 카비유 페팽을 만나 약 2시간 정도 대면 미팅을 했다. 작품의 의도, 음악적 요소, 곡에 대한 작곡가의 생각 등 많은 것을 묻고 답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오케스트라와의 리허설 시간은 단 90분이 주어지는데, 90분이 짧게 느껴지는 까닭은 페팽의 작품과 최종 결선 과제인 시벨리우스 교향곡 5번을 모두 90분 안에 리허설을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선 연주회가 있는 당일 오전, 참가자당 불과 20분의 마지막 점검 리허설 시간이 주어진다.
△오케스트라의 리허설이 길게는 2시간씩 3일에 걸쳐 진행되는 것을 생각할 때, 90분은 매우 짧은 시간이다. 처음 마주하는 악보를 짧은 시간 안에 다룰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이고, 오케스트라와의 조율은 어떻게 하는가?
-리옹 국립 오케스트라는 현대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굉장히 높다. 하지만 콩쿠르 규칙상 오케스트라는 당일 리허설 때 해당 파트보를 처음 받는다. 단원에게도, 리허설하는 지휘자에게도 도전인 과제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악보의 세밀한 부분보다 큰 그림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총보를 페이지마다 하나의 큰 그림으로 보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한 파트가 다른 파트로 넘어가는 모습이 그림의 한 획으로, 또는 하나의 색깔로 다가온다. 그렇게 작곡가가 어떤 의도로 선율을 썼는지, 왜 특정 화성을 고집하는지, 악기의 어떠한 특성을 나타내고 싶은지가 조금씩 보인다. 그다음 차례는 작곡가의 곡 설명을 다시 읽어보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어떠한 부분에 작곡가가 힘을 주었는지 보인다. 그 부분을 잘 체크해 두었다가 오케스트라와 첫 만남에서 알려줄 수 있도록 노력한다.
◇오직 시간과 경험이 빚는 것
△심사위원 폴 다니엘은 당신에게 "대회가 치러지는 내내 지속해서 단원들과 소통하며 안정적인 연주를 이끌었다"라고 평가했다. 처음 만난 단원들, 특히 콩쿠르와 같이 똑같은 작품을 여러 번 연주해야 하는 오케스트라와의 첫 리허설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첫 만남에서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이다. 짧은 인사와 소개를 하고 음악으로서 오케스트라와 첫 소통을 한다. 가장 기본적인 제스쳐, 지휘법으로 그들이 나를 바로 알아볼 수 있도록 리허설을 이끈다. 리허설 중 단원들의 표정을 읽으며, 나를 이해하고 있다고 확신이 들 때, 내 음악적 스타일과 작곡가의 의도를 더 적극적으로 지휘로 보여준다. 단원들과는 언어적 소통 외에도 음악적 소통, 서로에 대한 암묵적 이해를 거쳐야 하며, 과하지 않은 표정, 침착함을 첫 만남에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점점 콩쿠르에 도전하는 연령층이 낮아지고 있는 것 같다. 이번 경연 참가자 20명 중 최연소 참가자는 20세의 시몽 클로스였다. 최종 결선에 함께 오른 참가자 찌앙 찌에 인은 21살이었다. 뛰어난 지휘자는 많은 무대에서의 연륜으로 빚어지지만, 연륜보다 천재성을 더 높이 사는 분위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의 나이는 거장 지휘자에 비하면 아직은 어리다. 지휘자의 덕목 중 하나인 존중과 겸손은 천재성이 아닌 인생을 살아가며 쌓는 것이다. 하지만 천재성과 연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열정을 갖고 노력과 시간을 들였는가?'이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천재성이 보이는 어린 지휘자들을 보면, 결국 대가들의 모습을 많이 따라 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그런 모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결국 연륜이고.
△부쿠레슈티 지휘 콩쿠르(2019)·루이지 만치넬리 오페라 지휘 콩쿠르(2018)·다뉴브 지휘 콩쿠르(2017)에서도 우승했다. 지휘자로 발돋움하기 위한 과정에 지휘 콩쿠르가 필수적이라고 보는가?
-콩쿠르에 참가했던 이유는 더 많은 관계자들과의 교류, 새로운 오케스트라와의 만남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우승은 열심히 노력한 나 자신에게 따라오는 부수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앞으로 한국에서 보여줄 오페라 무대가 기대된다. 여전히 국내에서는 오페라를 낯설어하는 대중이 많다. 많은 단체가 그 벽을 허물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는데, 국내 오페라 발전을 위해 어떠한 것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우선, 대중매체가 오페라에 대한 오해를 청중에게 심어주지 않아야 한다. 여러 명이 마이크로 오페라 아리아를 나누어 부르는 것은 오페라가 아니다. 오페라란, 단순히 아름다운 노래가 아닌, 그 너머의 세계를 다룬다. 그 세계 안에는, 땀 흘려 노래하는 성악가와 오케스트라, 무대를 만드는 연출과 지휘자가 있고, 이 모든 것이 합하여 오페라가 되는 것이다. 그에 발맞춘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고, 유명 지휘자 보다 실력 있는 오페라 지휘자를 무대에 세우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앞으로의 계획과 포부가 궁금하다.
-현재 음악감독으로 있는 이탈리아의 벨 오페라 페스티벌(Bell'Opera Festival)은 이탈리아의 젊은 성악가와 음악가에게 더 많은 데뷔 무대와 기회를 마련하는 곳이다. 지금은 이곳에 더 집중하고 싶다. 가장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한 극장의 음악감독으로 일하고 싶다. 내 이상과 극장의 현실을 하나씩 맞추어, 많은 오페라를 지휘하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과 뉴욕에서도 오페라 지휘를 하고 싶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조급하지 않게, 내 자리에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