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렬 서울예술대 영상학부 교수
이영렬 서울예술대 영상학부 교수
이영렬 서울예술대 영상학부 교수
주식과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 투자에 몰렸던 젊은 세대들이 이 보다 훨씬 큰 돈을 벌 수 있는 동시에 원금을 잃을 위험도 큰 선물·옵션 등 파생상품으로 쏠리고 있다고 최근 보도되었다. 올들어 8월까지 개인 투자자의 파생상품 거래액은 5115조 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 보다 15%, 2년 전 보다는 76% 각각 늘어나는 거래 광풍이 불었다는 것이다.

이미 비트·도지 코인 같은 암호화폐의 가격이 하룻밤 사이에 수십 % 치솟았다가 폭락하는 것을 보아 온 터지만, 소수 금융 전문가의 영역인 파생상품에 젊은 개미들이 뛰어든다는 풍조에는 걱정이 앞선다. 파생상품은 이른바 '대박과 쪽박 사이' '천당과 지옥'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초고수익, 초고위험 투자의 최고봉이라고 한다. 증권회사 등 기관의 경우에도 지난해 해외파생상품 투자로 2조1140억 원을 잃었다고 할 정도이다.

젊은 세대가 이러한 초고위험 투자 상품 투자에 나서는 이유는 '요즘 웬만한 재테크로는 내 집 마련을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 언론 보도에서 20대 투자자는 "막말로 해외 파생상품에 투자했다가 빚이 수천만 원 쌓여도 삶이 여기서 더 크게 나빠지지 않지만 집 살 돈을 증권 펀드 등으로 모으려 했다간 1년 만에 수억 원씩 오르는 집값을 따라잡지 못해 외려 타격이 크다"고 말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저축해도 천정부지로 오르는 집값 때문에 벼락거지가 되는 것 같은 상실감을 이해할 수 있다. 보통의 직업을 얻어 착실하게 저축을 해서는 자신이나 가족이 맘 편하게 누워 잠잘 '지상의 방 한 칸'을 구할 수 없다면, 대출을 끼고라도 초고수익을 쫓겠다는 심리를 무조건 탓할 수만도 없다. 더구나 현재의 집값 폭등은 현 정치권을 포함한 기성세대의 책임이 아닌가.

그런데, 이러한 투자로 모두가 큰 돈을 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개인들의 해외 파생상품 투자 결과는 무려 1조 2203억 원의 손실이다. 올 상반기에도 개인들은 2770억 원을 날린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도 젊은 세대는 전문가들에게도 어려운 선물투자에 덤비고 있다니 걱정인 것이다.

일제시대였던 1921년 소설가 현진건은 '술 권하는 사회'라는 단편소설을 발표해 일제하 지식인 청년들의 사회적 어려움을 그려 냈다. 소설에서 젊은 남편은 만취 상태로 새벽 두시에 귀가하여 "이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했다오"라고 푸념한다. 남편은 "아아 답답해를 연발하며 아내의 손을 뿌리치고 다시 밖으로 나가고, 아내는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라며 절망을 되씹는다. 현진건은 일제 탄압 아래서 젊은 지식인들이 절망하고 주정꾼으로 전락하는 책임이 어디까지나 '술 권하는 사회'에 있다고 토로한 것이다.

오늘의 젊은 세대는 그 어느 세대보다 현실적이고 똑똑하다고 지적된다. 이들에게는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흥행에 올라탄 스퀴드 게임 토큰이라는 가상화폐가 하룻새 무려 2400% 올랐다는 등의 초고수익 뉴스가 넘쳐난다. 오징어 게임을 제작한 황동혁 감독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삶이 더 고단하고 힘들어졌다고 생각하면서 더 일확천금을 노리는 세상이 됐다. 그래서 오징어 게임에 더 공감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현진건이 1920년 대 우리 사회를 '술 권하는 사회'라고 명명한 것처럼, 우리는 오늘날의 사회를 '일확천금 권하는 사회'로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러면, '일확천금을 권하는 사회'의 끝은 어떻게 될까. 모두가 큰 돈을 벌어 멋진 새 아파트를 사고 번쩍번쩍하는 승용차를 몰게 되는 것일까.

노르웨이 작곡가 그리그의 애절한 가곡 '솔베이지의 노래'는 솔베이지의 애인 페르퀸트가 그녀를 떠나 일확천금을 노려 산 속 마왕에게 자신의 혼을 팔아넘기고 돈과 권력을 쫓아 유랑하다가 백발의 무일푼으로 고향에 돌아와 솔베이지의 팔에 안겨 죽는 이야기다.

이 가곡은 평생을 기다린 솔베이지의 아름다운 사랑으로 결말을 맺지만, 해외 파생상품 같은 제로섬 게임에 무지막지하게 승패를 거는 현실에서도 아름다운 결말만 있을 수 있을까. 각 투자자는 냉철하게 분석하여 자기의 능력 범위 안에서 투자를 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젊은이들이 누구나 내 집 마련을 계획하고, 노력의 결실로 그 꿈을 이루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한창 부동산 정책 등 공약이 나오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는 젊은 세대의 고민이 깊이 있게 논의되어, 우리 사회가 일확천금이 아니라 행복을 권하는 사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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