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분리 없이 모든 직책 사퇴 두 아들 독립 원해 길 열어줘 "봉사 등 사회 기여에 힘쓸 것" 흔한 경영승계 안해 이례적
박용만 회장. <대한상의 제공>
박용만(사진) 대한상공회의소 전 회장이 두 아들과 함께 두산그룹 내 모든 직책에서 물러난다.
박 전 회장은 고(故)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의 5남이자 전 그룹 회장으로, 현재 두산경영연구원 회장직을 맡고 있다.
박 전 회장의 장남인 서원씨는 오리콤 부사장직을, 차남인 재원씨는 두산중공업 상무를 맡고 있다.
박 전 회장은 지역사회 봉사에 나서며, 두 아들은 전문 분야를 개척해 커리어를 쌓는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국내 재벌그룹의 승계는 계열분리를 통해 형제가 그룹을 나눠가지는 게 흔한 모습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례적인 일이다.
두산그룹은 10일 "박용만 전 회장이 두산경영연구원 회장직에서 사임한다"며 "두 아들인 박서원 오리콤 부사장, 박재원 두산중공업 상무도 '전문 분야에 맞는 커리어를 위해 그룹 임원직에서 물러난다'고 박 전 회장이 알려왔다"고 밝혔다.
그룹에 따르면 박 전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자신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재단법인 '같이 걷는 길' 등을 통해 지역 사회 소외계층 구호사업 등 봉사활동에 전념하게 된다.
박 전 회장도 페이스북을 통해 퇴진 소식을 알리며 "아들 둘이 다 독립을 하겠다고 했다"며 "어차피 자식들 커리어는 본인이 만들어가는 것이니 부모로서 내 역할은 여기까지가 맞는 일"이라고 말했다.
박 전 회장은 이어 "나도 연초부터 공언한 대로 그룹의 모든 자리를 떠나기로 했다. 그룹의 실무를 떠난 지는 이미 오래됐고 상징적 존재로 있던 자리까지 모두 떠난다"고 밝혔다. 또 "이제 이렇게 두산을 떠나는 것이니 나도 독립이다"며 "앞으로 그늘에 있는 사람들 더 돌보고 사회에 좋은 일 하며 살아가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재계에 따르면 박 전 회장은 올 8월 두산인프라코어가 현대중공업그룹에 매각된 이래 꾸준히 퇴진의사를 밝혀왔다.
크리에이티브 콘텐츠 분야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박서원 부사장은 두산그룹을 통해 밝힌 입장문에서 "관련 업계에서 유망 회사들을 육성하는 일에 이미 관여하고 있었다"며 "이제 본격적으로 관련 사업을 확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차남인 박재원 상무도 벤처캐피탈 회사를 바탕으로 스타트업 발굴 투자 사업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두산그룹은 본래 형제가 돌아가며 경영을 하는 형제 경영그룹으로 유명하다. 지난 1955년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의 5남으로 태어난 박 전 회장은 지난 2012년 '형제경영' 전통에 따라 형인 박용현 회장의 후임으로 두산그룹 회장에 올랐다.
박 전 회장은 서울대와 미국 보스턴대 경영대학원을 거친 전문경영인이다. 1983년 두산건설 뉴욕지사로 입사한 그는 이후 두산그룹 기획조정실장을 맡아 사업 포트폴리오를 소비재 중심에서 제조업 중심으로 바꿨다. 오비맥주 매각과 한국중공업 인수 등의 굵직굵직한 인수합병 작업을 주도했다.
박 전 회장은 회장 취임 후 4년 뒤인 2016년 3월 조카인 박정원 현 회장에게 그룹 총수직을 넘겼다. 이후 박 전 회장은 2013년부터 맡았던 대한상의 회장과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올해 3월 대한상의 회장 임기가 끝나고, 이어 8월에는 두산인프라코어가 현대중공업그룹에 매각되면서 공식 직책은 두산경영연구원 회장직만 남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