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동 금융부장
김현동 금융부장
김현동 금융부장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잡겠다고 했던 가계부채 대책이 발표됐다. 상환능력에 기반한 대출관행 정착과 분할상환 확대가 골자였다. 이를 위해 내년부터 총대출금이 2억원을 넘어서면 차주 단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전면 적용된다. 금융회사에는 대표이사(CEO)가 직접 나서 분기별로 대출자산 증가율을 관리하도록 했다.

대출총량을 억제한 만큼 앞으로 대출자산 증가속도는 둔화될 것이 확실하다. 가계부채가 1600조원을 넘어서면서 나라가 곧 망할 수도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 국내 가계의 대차대조표를 보면 금융부채보다 금융자산이 2배 이상 많다. 부채가 늘어나는 속도보다 금융자산이 더 빨리 늘어나고 있고, 그래서 부채 상환능력에는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오히려 진짜 문제는 가계의 자산에서 토지 등 비금융자산 비중이 80% 가까이 된다는 점이다. 부동산은 그 속성상 불증성이고 부의 편중이 심하다. 이번 정권이 다주택자를 투기세력으로 몰면서 부동산과의 전쟁을 실행한 것 역시 부동산으로 대변되는 비금융자산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고, 그 가격이 폭발적으로 상승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대출 저승사자'라는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가계부채 총량 억제와 함께 은행에 신탁업 확대 의사를 밝힌 것은 반갑고 기대되는 대목이다.

10년 전인 2011년 김석동 금융위원장 시절 국무회의에서 신탁법 개정안을 반영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개정안에는 자기신탁 제도 도입, 신탁가능재산 확대, 수익증권 발행신탁 전면 허용 등이 담겼다. 해당 개정안은 2012년 8월 국회에 제출됐지만 2016년 19대 국회 회기 종료로 폐기됐다. 2017년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금융위 업무계획으로 신탁제도 전면 개편 계획을 밝혔다. 신탁제도 개편은 태스크포스까지 꾸려져 신탁업법 제정까지 논의됐고, 금융위 내부에서 권역간 합의까지 이뤄졌지만 유야무야로 끝났다.

고승범 위원장은 은행이 빅테크 플랫폼 기업에 대항할 수 있도록 종합재산관리자 역할이 가능한 신탁 확장 방안을 꺼냈다. 현재의 신탁은 금전신탁 중심이다. 재산신탁은 단순 수탁 업무에 불과한 금전채권신탁이 절대적이다. 국내 가계의 순자산 가운데 금융자산 비중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그치고 있다. 토지자산이 순자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토지 등 비금융자산 비중이 76.2%에 이른다.

가계의 종합적인 재산관리를 위해선 금융자산만이 아니라 토지 등 비금융자산을 종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신탁업 대상 자산을 확대하면 국민 재산의 76%를 신탁을 통해 안전하게 맡길 수 있게 된다. 당장 겸영 신탁사에 대해 임대형 토지신탁을 허용한다면, 금융회사가 자체 점포를 활용해 고령층이나 단독 세대를 위한 임대사업을 벌일 수 있다.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선 알짜 부동산 공급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도심 곳곳에 위치한 금융회사 점포를 개발해 주거용 부동산으로 공급할 수 있다면 부동산 가격 안정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재신탁이 허용되면 은행·증권·보험 등의 겸영 신탁사가 부동산을 수탁한 후에 필요할 경우 부동산 개발·관리 전문업체에 해당 부동산을 재신탁할 수 있게 된다.

부동산 개발 업체 중심의 부동산 개발·분양시장이 확대될 수 있는 여지도 생긴다. 금전신탁으로 한정돼 있는 수익증권 발행신탁 범위를 확대하면, 부동산을 증권화해 취득·처분할 수 있다. 부동산을 수익증권화 시켜서 자금을 끌어오는 것이 가능해지고, 판매와 처분도 수월해진다.

신탁업 제도 개편이 이뤄질 경우 부동산 공급 문제만이 아니라 중소기업의 경영권 승계를 돕는 과정에서 신탁의 역할도 확대될 수 있다. 현행 자본시장법 상 의결권 있는 지분을 100% 수탁한다고 해도 의결권 행사에 제한이 있다. 하지만 자기신탁 제도가 도입된다고 한다면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경영권 승계에서 자기신탁을 통해 후계자를 정할 수 있다.

신탁제도 개편은 김석동·임종룡 전임 금융위원장의 유산이다. 동시에 가계부채 관리를 통한 부동산값 안정화를 추구하는 고승범 위원장의 숙제로도 남아있다. 10년간 해결하지 못한 숙제를 잘 풀어내기를 기대한다.

김현동 금융부장 citize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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