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이 뜨겁다. 정치부에 오래 몸담은 기자로서 대선 취재가 처음도 아니지만 이번 대선처럼 뜨겁게 달궈진 선거판은 처음인 것 같다. 대선은 이제 여당의 시간을 지나 바야흐로 야당의 시간으로 흐르고 있다. 국민의힘 최종 경선이 불과 3일밖에 남지 않았다.
경선은 참 아이러니한 선거다. 같은 진영 내 경쟁이지만 피아를 나누는 것은 진영 간의 대결보다 더 치열하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선이 그랬다. 여당은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를 대선후보로 낙점했지만 과연 이 전 지사가 이낙연 전 대표의 지지층을 끌어들여 진정한 '원팀'을 꾸릴 수 있을지 아직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국민의힘 경선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홍준표 의원,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전 제주지사의 4파전은 피 튀기는 전쟁터가 따로 없다. 여론조사에서 1위와 2위를 다투고 있는 윤 전 총장과 홍 의원의 대립은 여당이 보여준 이 전 지사와 이 전 대표 간의 네거티브 공방은 '저리 가라' 할 정도다. 오죽하면 막장 드라마보다 정치가 재밌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까.
막바지에 다다른 국민의힘 경선은 당협위원장 줄세우기 논란과 공천 협박 공방으로 번졌다. 홍준표 캠프는 윤석열 캠프가 '조직 동원' 선거운동을 지시한 정황이 담긴 통화 녹음 파일을 확보했다고 폭로했다. 홍준표 캠프는 또 모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윤석열 캠프로부터 지지율이 낮게 나온 지역 당협위원장은 공천받기 힘들 것이라는 협박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글이 올라왔던 것을 근거 삼아 공천 협박 프레임까지 공세를 확대했다. 해당 글은 현재 삭제된 상태다. 윤석열 캠프는 법적 대응을 예고할 정도로 강하게 반발했다. 양 캠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지지자들 간의 감정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유승민 캠프에서는 유 전 의원의 지지자가 유 전 총장 지지자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상황이 악화일로를 걷자 당 차원에서 절제를 호소했지만 별 효과가 없다.
재밌는 것은 선거마다 등장하는 네거티브 전략이 역사적으로 매우 유래가 깊다는 사실이다. 무려 2000년이 넘는다. 기원전 64년 로마 공화정 말기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인 마르쿠스 키케로가 집정관 선거에 출마하자 그의 동생 퀸투스 키케로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 58가지를 정리해 그의 형에게 헌정했다. 동생인 퀸투스 역시 로마와 그리스에서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은 교양인이자 뛰어난 군인이었다. 로마 서열 2위인 법무관을 지냈고 식민지 총독까지 역임한 유력인사였다.
퀸투스의 전략 58가지를 살펴보면 상대후보의 약점을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 조언이 나온다. 퀸투스는 "로마 대중 앞에서는 반드시 멋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 당연히 위엄이 있어야 하며, 화려한 색채와 볼거리를 가미해 군중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당신의 경쟁자들이 얼마나 불한당 같은 인간인지 일러준다고 해서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자초했던 범죄와 성추문, 부정부패를 기회가 될 때마다 주기로 활용해 그들을 압도해야 한다"고 했다. 사실상 네거티브 전략을 제안한 것이다.
그러나 퀸투스의 전략 중 네거티브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네거티브 전략을 형에게 일러주기 전 퀸투스는 "당신이 지닌 수많은 장점들을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지지자들에게 유익한 조언을 하고 충고를 구함으로써 그들이 계속 당신에게 호의를 가지도록 힘쓰라"고 했다. 또 "나무랄 데 없이 완벽한 선거운동을 최대한 사려깊고 성실하게, 그러면서도 조심스럽게 전개해야 한다"며 "다양한 친구를 만들어 모든 층의 유권자로부터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하라"고 충고했다.
지역공동체를 확실한 지지기반으로 만들거나 경쟁후보의 친구에게도 친절을 베풀어 마음을 얻을 것, 유권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도록 인간적으로 관대한 모습을 보일 것, 사람들이 당신의 장점을 이야기하게 할 것, 모든 것을 동원해 당신의 소식을 전할 것 등 세심하고 구체적인 행동지침도 담았다. 퀸투스의 58가지 전략은 '선거에서 이기는 법'이라는 책으로 엮어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 세계의 정치판에서 선거 교본으로 읽힌다. 2012년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 전 대통령의 재선 캠프에서 참모들이 수백 권을 구매해 함께 읽은 책이라고 한다. 2000년의 역사를 가진 이 고전을 대선 후보들이 꼭 한 번 읽었으면 한다. 선거에서 이기려면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나의 이야기를 널리 퍼뜨리는 게 더 유효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