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국 전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간)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성명을 내고 이렇게 애도를 표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파월을 국무장관으로 발탁한 인연이 있다.
흑인 최초의 미 합참의장과 국무장관을 지낸 파월 전 장관은 코로나19 합병증으로 치료를 받다가 향년 84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부시 전 대통령은 이어 "그는 대통령들의 총애를 받아 대통령 자유의 메달을 두 번이나 받았다. 그는 국내외에서 많은 존경을 받았다"고 했다. 파월 전 장관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때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냈고, 조지 H.W. 부시(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 당시 합참의장에 올랐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도 합참의장을 이어갔고, 아들 부시 전 대통령은 그를 미국 외교를 책임지는 국무장관으로 발탁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2000년 12월 파월을 국무장관으로 발탁하면서 "미국인의 영웅이자 위대한 미국 역사"라고 말하기도 했다.
파월은 베트남전에 두 번 참전했으며, 주한미군 대대장으로도 근무했다. 1991년 걸프전 당시 합참의장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국무장관이었을 때에는 비둘기파로 불렸으나 매파가 득세하던 부시 행정부 2기 때 사임했다.
파월의 일생은 '미국인 성공신화'의 전형이었다. 자메이카 부모님 밑의 가난한 흑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베트남전을 거쳐 전쟁 영웅으로서 성공적 길을 걸었다. 특히 그는 냉전 시절 군 최고위급 장성으로서 가능한 한 무력 개입을 피하되 국가 이익을 위한 개입이 불가피할 경우 압도적인 군사력을 투입, 속전속결로 승리를 결정짓는다는 이른바 '파월 독트린'을 정립했고 이는 걸프전 당시 미국민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파월은 아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발탁으로 첫 흑인 국무장관에 오르며, 백인 중심의 미국 정계에서 개척자이자 선구자로서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당시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 등 강경 '네오콘(신보수주의)' 매파들 중심의 백악관에서 온건파인 고인의 입지는 크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워싱턴포스트는 북핵 문제를 비롯해 중동·이스라엘 관계 등 주요 외교 사안에 있어 강경파에 가로막힌 파월 장관의 역할은 제한적이었고, 주로 부시 행정부의 극단적 성향을 완화하고 재앙을 막는 데에 한정됐다고 평가했다. 그에겐 무엇보다 4000명 이상 미국인 사상자를 낸 이라크전 참전이 정치 인생에서 오점으로 남는다.
김광태기자 ktkim@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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