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인호 전략기획국장
우인호 전략기획국장
우인호 전략기획국장
2016년 11월 20일 서울 대학로의 한 극장. 배우 정우성은 자신이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아수라'의 단체관람 현장에서 팬들에게 인사하기 위해 무대 위에 올랐다. 직접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던 김성수 감독도 함께 무대 위에 섰다. 팬들이 정우성에게 극중 대사를 재연해달라고 요청하자, 정우성은 남들에게는 뜬금 없었지만, 자신의 소신대로 이렇게 외친다. "박근혜, 앞으로 나와!"

영화 속 자신의 캐릭터인 한도경 형사를 이용해먹은 박성배(황정민 분) 안남시장에게 포효했던 대사 "박성배, 밖으로 나와!"를 당시 시국에 '야합'해 빗댄 것이다. 이 한마디로 영화 '아수라'는 사라졌고 '깨어 있는 영화인' 정우성만 부각됐다. 말기 암 환자인 아내의 병원비를 때문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아수라의 세계 속에 빠져 허우적거린 한도경, 아니 정우성은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사건에 저항의 의미를 담은 것이다.

2021년 10월 1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 이재명 경기지사는 거대 여당의 대통령선거 후보자로 선출됐다. 과반이 넘는 득표를 기록, 여당의 당헌·당규에 따라 결선투표 없이 본선으로 직행하게 됐다. 이 지사는 상기된 표정으로 후보 수락 연설문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마스크에 가려 표정이 잘 읽히지는 않았지만, 조금의 떨림과 조금의 벅참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그리고 이렇게 외친다. "적폐를 일소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적폐, 공정, 정의는 지난 5년 간 우리 사회를 관통한 주요 키워드였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적폐라고 손가락질 했고, 스스로로는 공정하고 정의롭다고 생각했기에 무엇이 적폐이고, 공정이고, 정의인지 희미해져 가는 시기이기도 했다. 2개의 적폐, 2개의 공정, 2개의 정의가 뒤엉켜 있는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정말 세상은 요지경이고 여전히 뒤죽박죽이다. 5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아수라장이니 말이다. 단군 이래 최대 비리로까지 불리는 사건, 공권력으로 국민 재산을 약탈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는 사건의 중심에 선 공복(公僕)이 국회를 장악한 여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것부터가 요지경이라는 생각이 든다. 본인이 대장동 개발을 설계했다면 아수라가 되는 것이고, 심복-지금은 소원해졌다고 주장하는-이 하는 일을 몰랐다면 아수라를 키운 셈이 되는 것 아닌가.

정우성이 무대 위로 소환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궤멸됐다가 정권의 무능으로 타의에 의한 부활의 조짐을 보이는 야당도 마찬가지다. '대장동 의혹'과 깊은 이해관계를 맺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박영수 전 특별검사에 의해 발탁되어 민간인 최순실에 의한 국정농단을 수사를 진행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유력한 야당의 대선 후보 중 한 명이 됐다. 탄핵에 암묵적으로 동조했거나 주도한 인물로 볼 수밖에 없는 홍준표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 또한 야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 중 한 명이다. '묵시적 청탁' '경제적 공동체'라는 단어에 엮이면서 10원짜리 동전 하나 받지 않았음에도 뇌물죄로 징역 22년을 살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해탈 외에는 숨 쉴 방법이 없을 듯하다.

현 정권의 추진 연료였던 '국정 농단'과 '사법 농단'도 뭐가 '농단'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대장동 의혹'의 핵심 인물 가운데 한 명인 김만배 전 기자, 현 화천대유 대주주가 이재명 지사의 공직선거법 위반 관련 대법원 선고 전후로 권순일 전 대법관을 자주 찾아간 것이 '재판 거래'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임성근 판사 관련 김명수 대법원장의 '거짓 해명'과 대법원장 공관에서 있었던 한진 법무팀 회식 등이 드러났을 때 이미 농단(壟斷)은 의미가 퇴색됐다.

그래서 기대했다. 세상이 원래 아수라장이기에 기대했다. 2021년 10월 11일 대장동 의혹의 핵심 인물인 김만배가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하기 앞서 기자들과 마주쳤을 때 남들에게는 뜬끔 없는 말을 외쳐주기를. "박근혜, 이제 감옥에서 나와야"라고.

하지만 그는 아수라장 속에서도 정연히 말한다. "재판거래, 얼토당토않다." "천화동인 1호는 내 것." "불법자금 거래는 없었다." 아수라장에서 사는 재미가 반감됐다. 전략기획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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