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전략, 중국 노출 등 우려 장관이 나서 "고객 기밀 안돼" 미국 정부와 타협 가능성도 국내 업계는 당분간 신중모드 기업·정부 공조체계 구축 필요
대만 TSMC가 미국 정부의 반도체 재고 현황 등 정보 공유 협조 요청에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같은 요청을 받은 삼성전자의 고민을 덜어줄 수 있을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TSMC측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의 특성상 고객 정보가 유출될 경우 퀄컴 등 미국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업체들의 사업전략까지 중국 등에 노출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 공급부족 해소 등 산업적 측면 뿐 아니라 대중국 견제용으로도 대만이 중요한 카드인 만큼, TSMC의 요청을 쉽게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5일 로이터통신을 비롯해 대만 타이페이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쿵밍신 대만 국가발전협의회(NDC) 장관은 "TSMC는 고객의 기밀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으며 고객과 주주의 권리를 위태롭게 하는 관행에는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NDC는 TSMC의 핵심 주주로, 쿵밍신 장관은 TSMC 이사회 소속이기도 하다. 현지 언론들은 TSMC가 창업부터 현재까지 대만 정부로부터 막대한 지원을 받고 있는 만큼 이번 사안에서도 정부의 지원을 요청할 것으로 관측했다. 실제로 왕메이화 대만 경제부 장관 역시 "대만은 미국의 상업법과 규정을 존중하고 이해한다"면서도 "다만 대만 기업이 국제 경쟁에서 무리한 요구에 직면하면 정부는 확실히 필요한 지원을 제공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달 24일 주요 반도체 기업들에게 상위 3대 고객사, 주요 생산 제품과 고객사별 매출, 주문 잔고, 증설 계획 등을 다음달 8일까지 자발적으로 제출할 것을 요청하고 응하지 않을 경우 강제적 수단을 동원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업계에서는 대만의 이 같은 태도를 미국 정부가 일정 수준 수용하며 타협할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미국 내 반도체 업계에서도 자국 영업비밀까지 유출될 수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서다. 대만 디지타임스는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 정부의 요구가 애플과 퀄컴 등 TSMC에서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는 미국 주요 업체들을 불쾌하게 할 수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미국은 반도체 설계에서는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과시하지만, 제조 역량은 한국과 대만 등에 비해 떨어진다. 팹리스의 경우 퀄컴 등 미국 업체가 세계 톱 10 가운데 6개를 차지하는 등 우위를 차지하지만, 파운드리의 경우 TSMC가 전체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삼성전자가 2위다.
파운드리 톱 5 가운데 미국 업체는 단 1개 뿐이고 점유율도 10% 남짓에 불과하다. 팹리스와 파운드리는 '이와 잇몸' 같은 관계이기 때문에 미국 반도체 업계에서는 대만과 한국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당분간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며 정부, 거래업체 등과 협력하며 대응해갈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5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미국의 정보 요구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을 묻는 질문에 "우리 기업에 불리한 상황이 되지 않도록 미국 정부와 적극 협의할 계획"이라며 "기업과 우선 협의하면서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략을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미국 정부의 요구 사안 중에는 고객사에 민감한 정보도 있어 기업들은 법적인 위배 소지도 함께 검토하고 있다"며 "시일을 충분히 이용하면서 반도체 기업들 간, 또 정부와 함께 공조 관계를 구축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전혜인기자 hye@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