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주자땐 규제완화·혁신 약속 국회에 규제법안 무려 8개 달해 갈등확산 방치 기업도 문제지만 오락가락 정책탓에 혼란만 가중
공유경제, 플랫폼 산업 육성을 주창했던 문재인 정부가 정권 말기 '플랫폼 때리기'로 돌변하면서 네이버, 카카오 등 플랫폼 대기업뿐만 아니라 관련 스타트업까지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정권 초기 과감한 규제혁신 정책 기조를 믿고 공유 경제, 모빌리티 사업에 도전했던 플랫폼 기업들이 정책 후퇴로 퇴출됐다.
글로벌 공룡에 맞서 국내 시장을 지켜온 네이버, 카카오마저 골목상권을 침해한 주범으로 몰리고 있다. 규제 당국과 정치권이 동시다발적으로 플랫폼 규제 법안을 밀어붙이면서 국내 플랫폼 산업 경쟁력이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는 전혜숙 민주당 의원의 '온라인 플랫폼 이용자 보호법'. 공정위의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을 비롯해 국내 플랫폼 업체들을 규제하기 위한 총 8개의 법안이 발의돼 있다. 이들 대부분은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플랫폼 업체들의 시장지배력을 앞세운 사업 확장과 수수료 정책을 강도높게 규제하고 있다.
정치권은 5일부터 본격화하는 국정감사에서 주요 플랫폼 기업 수장들을 증인으로 불러내 골목상권 침해,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질타하고 향후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
인터넷, 모바일 업계와 학계는 정부와 정치권의 이 같은 플랫폼 때리기 기조가 글로벌 업체들에 비해 업력이 짧고, 사업기반이 취약한 국내 플랫폼 산업의 경쟁력을 훼손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특히 정부여당의 일방적인 플랫폼 기업 때리기 정책은 문 정부가 일관되게 내세웠던 플랫폼 산업 육성, 공유 경제 확산 기조를 정면으로 뒤집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공유 경제 확산, 플랫폼 산업 육성을 정책 기조로 제시해 왔다. 문 대통령은 2017년 4월 디지털경제협의체 초청모임에서 "4차 산업혁명을 정부가 주도하겠다고 했더니 '기업의 자율성과 창의력을 막는 것 아니냐'고 걱정한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정부가 기업과 함께 뛰는 페이스메이커가 되겠다"고 역설했었다. 정부 출범 후에도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타다 금지법(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 등을 처리하며 플랫폼 신사업 발굴에 힘을 실어줬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정부의 플랫폼 정책기조는 손바닥 뒤집듯 돌변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플랫폼 정책의 불확실성이 결국 국내 플랫폼 산업의 후퇴로 이어질 것으로 본다.
유병준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권 초기에는 혁신이라며 '규정상 문제가 없다'고 방치했다 갑자기 '안 된다'고 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면서 "한 마디로 예측 가능성이나 일관성을 보여주지 못한 것으로, 정부가 책임을 지지 않는데 어느 누가 정부를 믿고 따르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최근 정치권의 플랫폼 때리기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성난 민심을 되돌리기 위한 행보라는 해석도 나온다. 국내 플랫폼 산업에 대한 제대로 된 공과 구분없이, 해당 기업들을 '희생양' 삼아 정치에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부처 내에서도 플랫폼 규제의 역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다.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난 1일 국정감사에서 "구조적 (입법) 조치는 최종적 수단으로 도입 여부를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면서 "디지털 플랫폼 기업이 기술협력 시너지를 위해 M&A(인수·합병)를 추진하는 것은 정상적인 스타트업 생태계의 확장"이라고 밝혔다.
정치권이 문어발식 사업확장이라고 규정한 카카오, 네이버의 M&A를 플랫폼 생태계에서 정상적인 사업확장으로 해석한 것이다.
사업기반이 작은 스타트업계도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국내 1500여개 스타트업 연합체인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우리나라는 여전히 낡고 불합리한 규제로 인해 스타트업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플랫폼은 기존 시장의 문제점을 해결하며 소비자와 공급자를 연결하는 생태계를 성장시키는 역할을 하기에 그 자체가 규제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용희 숭실대학교 교수는 "(카카오의) 성급한 가격 설정이 문제가 됐지만, 원칙상 자본주의 사회이고 카카오든 네이버든 시장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건 사실"이라며 "피해가 생기면 소비자 보호측면에서 (정부가) 개입할 수 밖에 없지만, 시장에서 자정 작용이 이뤄질 수 있도록 규제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