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7일 "올해 금리가 한 번 인상됐지만, 한 번으로 그칠 것 같지 않다"며 "금리가 0.25%포인트 인상됐지만, 워낙 역대 최저금리로 유지해왔기 때문에 앞으로 금리 인상에 대한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3일 회동한 이주열 한은 총재와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가계부채 급증과 집값 폭등에서 비롯된 '금융불균형'을 없애겠다며 금융·통화 정책에서 공조하겠다고 했다. 경제, 금융, 통화 부문 트로이카가 이번 정부에서 폭등한 가계빚과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긴급 소방수 역할을 자처하며, 추가 금리 인상 등 적극적인 통화 정책을 펼치겠다는 데 한 목소리를 낸 것이다.
한국은행의 올해 '2분기 가계신용' 통계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가계 신용(빚) 잔액은 1805조9000억원으로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03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6월 말부터 올해 6월 말까지 4년 간 가계 빚은 418조1000억원(증가율 30.1%)이나 늘었다. 역대 정부 가운데 최대 증가폭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값은 최근 5주 연속 0.2%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2018년 2월 이후 3년 반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정부의 대출 억제와 금리 인상에도 집값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르고 있다. 수도권 아파트값도 최근 7주 연속 역대 최고 상승률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 아파트는 한 평당 평균 4000만원, 전국적으론 평당 평균 2000만원이다. 20평 짜리 아파트가 서울은 평균 8억원, 전국적으론 4억원이란 얘기다. 정말이지 미친 집값이다. 역시 역대 정부 가운데 최고의 집값 상승률을 기록 중이다.
당국의 금리 인상 기조에는 최근 가파르게 오르는 물가도 한 몫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6%를 기록했다. 5개월 연속 2%대 상승률이다. 올해 연간 물가상승률도 2012년 이후 9년 만에 처음으로 2%대를 기록할 전망이다. 특히 달걀(54.6%), 시금치(35.5%), 고춧가루(26.1%) 등 농축수산물 가격이 급등했다.
미친 집값은 반드시 잡아야 한다. 가계빚 줄이지 못하면 나라 경제가 순식간에 위태로워진다. 안 그래도 살기 팍팍한데, 빠르게 오르는 물가 역시 잡아야 한다. 그래서 금리를 올리고, 금융권 대출을 '꽁꽁' 틀어막아야 한다고 하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거꾸로 한 번 생각해보면 울화가 치민다. 부동산 폭등은 왜 발생했나. 임대차 3법, 부동산 세금 강화 등 규제 일변도의 '수요 줄이기' 부동산 정책 실패의 결과였다. 스물 여섯 번의 부동산 대책을 쏟아내는 동안 가장 고통받은 사람들은 돈 없는 서민층, 소외계층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치솟는 집값과 주가에 환호하는 것은 돈 있는 자들의 몫이요, 자고 일어나면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까 하루하루가 힘든 고통은 돈 없는 자들의 몫이었다.
통계청의 '2분기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소득보다 소비 지출이 많은 적자 가구 비율은 24.4%로 전년 동기 대비 4.4%포인트 증가했다. 소득 하위 20% 가구 중 적자 가구 비율은 55.3%에 달하는 데 비해 소득 상위 20%의 적자 가구 비율은 10.5% 수준이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폐업하는 자영업자가 부지기수다. 자영업자의 대출 잔액만 지난 6월 말 기준 800조원이 넘는다. 빚을 내 근근히 버티며 산다. 빚을 내 빚을 갚는다. 내수 경기는 코로나19가 처음 발생한 2020년 이전부터 나빠지기 시작해 작년과 올해 더 심각하게 나빠졌다. 수출이 역대 최대 기록 신고를 쓰고 있다고 정부는 자랑하지만, 수출 늘어난다고 고용도 내수도 좋아지진 않았다.
먹고 살기 힘드니 빚을 얻을 수밖에 없다. 그나마 저소득층은 은행에서 대출도 받기 어려워 2금융권이나 대부업자, 사채로 점점 이동한다. 가계 빚이 1800조원을 넘은 것이 비단 2030 세대의 '영끌' 부동산 대출 증가 때문만은 아니다.
궁금하다. 왜 항상 정부 정책으로 피해를 보고, 더 힘들어지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일까. 정부가 대출을 억제하면 살기 힘든 저소득층은 고리 대금업자에 돈을 빌릴 수밖에 없다. 정부가 금리를 올리면 빚 부담이 가장 큰 것은 역시 저소득층이다. 금리를 더 올려 원금에 이자까지 높아져 갚지 못하게 되면 이들은 삶을 포기해야 한다.
이번 정부가 나랏빚 걱정하지 않고 펑펑 예산 늘려 쓰면서 시중에 유동성을 올려놨다. 시중에 돈이 마구 풀리니 저금리 시대, 투자처를 찾지 못한 돈이 부동산과 주식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 거품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이치다. 결국 정부 스스로가 부동산 가격 올려놓고, 집값 올라가니 금리 올려서 때려잡겠다는, 정말 '병 주고, 약 주고', '북치고, 장구치고', 이런 '원맨 쇼'가 없다. 아직 내수 경기가 심각하고, 충분히 회복하기까진 긴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집값 때려잡다가 서민들 다 때려잡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