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월 출범을 목표로 추진됐던 '대환(대출 갈아타기) 플랫폼' 출시가 표류하고 있다. 1700조원대의 가계대출 관리에 대환 플랫폼이 후순위로 밀리는 모습이다.
은행권과 빅테크 간의 갈등도 대환대출 플랫폼 출범을 늦추는 요인이다. 새로 취임한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전면 재검토 발언 직후 금융권 협의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분석이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초 금융소비자가 비대면과 원스토으로 낮은 금리 대출상품으로 갈아탈 수 있는 관련 인프라를 올 10월부터 구축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고객이 보유한 기존대출 정보와 전환 가능한 다른 금융회사의 모든 대출상품의 금리 정보를 핀테크사의 앱에서 제공하면, 소비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상품을 신청하는 식이다. 선택받은 상품 판매사인 은행은 플랫폼을 통해 타 은행에 기존 대출을 상환하고 신규대출을 실행하는 것이다.
플랫폼은 당초 빅·핀테크사에 무게중심이 있었다. 직접 상품을 제공하는 건 은행 등 금융사지만, 플랫폼을 이용하는 만큼 서비스 제공자에 별도의 수수료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대출모집인(3~4%)보다 낮은 1%대 수수료를 지불하고, 법무사 비용이 발생하지 않아 비용 절감 효과가 크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은행권이 서비스 출시에 반대한 이유는 보다 근본적인 데 있다. 각 은행이 자체 플랫폼을 통해 취급하고 있는 대출을 플랫폼 내에 입점시킬 경우 장기적으로 빅테크에 대한 종속이 심해진다는 우려때문이다.
금융당국이 신용대출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담보대출까지 취급하겠다는 계획을 전하면서 급기야 가계대출이 많은 일부 시중은행이 참여 거부 의사를 나타내기도 했다.
은행과 당국 간 '밀당'이 이어진 결과, 은행권이 독자적으로 플랫폼을 만드는 방향과 기존 빅테크가 운영하는 두 갈래로 나눠지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이 과정에서도 여전히 은행권의 요구는 계속되고 있다. 급기야 금융지주 회장들이 직접 나서 '플랫폼을 중금리로 제한해달라'는 요구를 하기도 했다.
금융당국은 당초 '중금리제한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위원장이 전면 재검토 계획을 밝히면서 이같은 주장에 다시 힘이 실리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은행권은 독자 플랫폼 운영도 중금리 상품으로 제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각 은행 간 금리 경쟁이 심화할수록 영업 여건이 나빠지는 건 자명하기 때문이다.
고승범 위원장이 취임사에서 '빅테크와 핀테크, 금융업권간 협력방안 모색'을 강조하면서 대환대출 플랫폼의 무게추는 은행으로 옮겨가는 형국이다. 고 위원장은 이날 오전 관련 질문에 "계속 검토해야 할 이슈"라며 "기한에 구애받지 않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히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사업 추진에 기약이 없는 셈이다.
아직 플랫폼 운영 사업자가 결정되지 않은데다가 본격적인 대환 서비스 제공을 위해서는 전산 인프라 작업 등 관련 준비를 마쳐야 한다. 반면 은행은 기존에 운영 중인 대출 상품만 등록하면 돼 별도로 준비해야 할 게 많지 않다. 플랫폼 출시가 지연될수록 빅테크의 추진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사실상 은행의 손을 들어준 것"이라고 평했다. 황두현기자 ausure@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