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문화평론가
가짜 수산업자 김모씨 사기 사건에서 연예인들 이름이 나왔다. 김씨에게서 손담비와 정려원이 각각 억대의 물품과 자동차를 선물로 받았다는 보도가 나온 것이다. 이에 정려원 측은 해당 자동차를 정당하게 구입했다며 계좌 정보를 공개했다. 정려원이 김씨와 단 둘이 집 안에 있었다는 보도도 나왔었는데, 이에 대해선 지인과 함께 상담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손담비 측은 김씨가 팬이라며 일방적으로 선물 공세를 했을 뿐이고 받은 것들은 모두 돌려줬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김씨와 여성 연예인들이 부적절한 관계였을 것이라며 단정하고 조롱했다. 처음에 선물 받았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부터 사람들은 그렇게 단정했었는데, 해명이 나왔는데도 무시하는 것이다.

이 사건은 우리 인터넷 공론장 문제의 한 단면을 드러냈다. 주장과 사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근거 없이 속단하며, 너무나 비정하다. 일단, 처음 나온 일방적인 내용의 보도로 상황을 판단할 수 없는데도 사람들은 속단했다. 기사 속에서 나온 김씨 측근의 주장도 사실로 받아들였다. 요즘 공론장에서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사람들은 '척보니 뻔하다'고 한다. 여성 연예인이 재력가에게 선물을 받았으면 뻔하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대중의 경험칙에 의거한 직관적 판단이 잘 맞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기 때문에 무슨 사건이든지 확인된 사실관계에 입각해서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이건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는 기본적인 원칙인데 우리 공론장에서 이런 원칙이 사라져간다는 게 문제다.

일단 뻔하다고 결론을 내린 다음엔 반대 정보가 나타나도 무시한다. 정려원의 경우 자동차를 돈 주고 샀다고 계좌까지 공개했는데 여전히 선물로 간주하며 애초의 속단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데도 무시하고 하나의 결론만 고수한다. 손담비의 경우는 일방적으로 선물 받았다는 해명이 사실일 수도 있다. 김씨는 금품공세로 인맥을 넓히며 과시해왔기 때문에 연예인에게도 비슷한 수법을 썼을 수 있다. 혹은 손담비가 김씨에게 호감을 가지고 가까워졌을 가능성도 있는데 그런 것들을 모두 무시하고 금품을 매개로 한 부적절한 관계로만 단정한다. 김씨가 수십 년 기자 경력의 정치인을 현혹시키면서 사기를 칠 만큼 언변과 흡인력이 비상한 데다, 재력가에 건실한 사업가로 알려졌고, 국회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상까지 받았기 때문에 연예인이 김씨에게 신뢰나 호감을 갖게 됐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만약 호감을 가지고 가까워지면서 선물을 받았다가 헤어지면서 돌려준 것이라면 문제 될 일이 없다.

물론 진실은 모른다. 문제는 여러 가능성이 있는데도 근거 없이 한쪽으로 단정 지으며 마녀사냥을 한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일부 유튜버들이 의혹을 부풀리면서 더욱 그런 경향이 강해졌다. 우리 공론장에서 합리성이 사라져가는 느낌이다.

게다가 인간미까지 실종돼간다.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연예인에 관한 의혹들은 만약 사실일 경우 매장당할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다. 이번 김씨 관련 여성 연예인들에 대한 의혹 역시 그렇다. 합리적 판단을 떠나서 인간적인 이유에서도,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중대사라면 그만큼 더욱 신중하게 된다. 낙인찍고 단죄내리기 전에 두 번 세 번 아닐 가능성을 숙고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 여론은 그 반대로 흘러간다. 마치 상대가 무참히 무너지는 걸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유튜브에선 연예인이 매장될 수도 있는 심각한 내용을 심심풀이 땅콩을 즐기듯이 가볍게 폭로하는 영상들이 인기를 끌고, 사람들은 그런 영상에서 찍힌 대상에게 일제히 돌을 던진다. 그런 의혹이 틀릴 가능성을 제기하는 사람에겐 악플을 퍼부어 입을 막는다.

사람에게 매장 선고를 내리려면 하나하나 사실관계를 따지면서 확인을 해나가야 하는데, 그런 확인 작업에 대해서도 화를 낸다. 결론이 났으니 할 일은 그저 돌을 던지는 것뿐이라는 태도다. 어떻게 타인이 무참하게 무너지는 걸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 수 있을까? 어떻게 그런 폭로를 반복하는 유튜브에 환호할 수 있을까?

이러니 인터넷 여론이 너무 비정하다고 한 것이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이 상실된 상태에서 공분의 에너지만 들끓는다. 합리적 판단력과 인간적 정서가 모두 우리에게서 멀어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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