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선택 도입' 찬반 공방 격화 전문가 "설정 자체 신중" 의견 과학·통계적 명확한 근거 요구
지난 8월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대통령후보자 선거관리위원회 임명장 수여식 및 제1차 회의에서 선관위원장으로 임명된 정홍원(오른쪽 네번째) 전 국무총리가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국민의힘이 대선 경선 레이스에 들어갔지만, '경선 룰' 파열음에 흔들거리고 있다.
31일 출범 엿새째를 맞은 당 경선 선거관리위원회 정홍원 위원장에 "사퇴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후보(유승민)가 나왔다. 경선에서 국민여론조사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역선택' 방지 장치를 도입할 경우 "특정 후보(윤석열)를 위한 불공정한 룰"이라는 등 대권 주자들 간 경선방식을 둘러싼 공방이 확산하고 있다.
역선택은 정치·선거 환경에서는 특정 정당의 당원 또는 지지자들이 지지정당의 승리를 위해 '경쟁정당에 가장 불리하게 작용할' 경쟁정당 후보를 선택하는 행위로 풀이된다. 각 정당 내부 선출직 또는 공직선거 후보 경선을 위한 당내·시중 여론조사, 국민경선 등에 경쟁정당 지지층이 집단 개입하면 내부 의사결정이 왜곡된다는 우려에서 논란이 출발한다. 본선 국면에서 경쟁정당 지지층의 1표가 실제로 경선 과정에서 향했던 후보에게 고스란히 돌아올지도 불투명한 까닭이다.
국민의힘에서는 최재형 전 감사원장 측이 홍준표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강성지지자들의 역선택'을 받는 후보라는 의혹을 제기하며, 역선택 방지 조항 도입을 주장해왔다.
지지율 선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가장 날카롭게 각을 세우는 홍준표, 유승민 두 후보가 야권 대선후보군으로 한정한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2·3위를 굳히며 지지율로 상승세를 타고 있는 게 배경이 됐다.
최근에는 홍 의원이 자유한국당 대표 시절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지지층, 정의당 지지층에 우리 당 후보 투표권을 줄 수 없다"며 당헌에 역선택 방지 근거(99조 여론조사 특례)를 마련한 과거가 재조명되기도 했다. 홍 의원은 이날 SNS를 통해 자신의 상승세를 '호남 지지율 강세'로 부각하면서 "대선 투표를 우리끼리만 하냐"고 반박했다.
'정홍원 선관위'가 앞서 '서병수 경준위(경선준비위원회)'에서 내린 역선택 방지 조항 '배제' 결정을 뒤집을 수 있느냐는 권한 논쟁도 불이 붙었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 관한 당헌 69조 3항에는 "여론조사는 선거관리위원회가 정한 일정과 방법에 따라 실시한다"는 문구가 있다.
후보군 중에서는 최 전 원장 외에도 원희룡 전 제주지사가 "경준위가 결정했으니 선관위는 무조건 한다면 선관위가 왜 필요하냐"며 룰 재검토를 주장했다.
반면 유승민·홍준표 캠프에서는 경준위 안이 최고위 추인을 받은 사항이라며 선관위 재검토 움직임에 대해 '이적행위', '경선판 깨기'라고 비난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역선택 방지 조항 설정 자체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경선 결과를 바꿀 만큼 역선택 영향이 크다는 게 '입증'되면 보정해야 하지만, 후보자 간 동의 수준이 다르고 누가 일방 주장해선 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선관위가 자의적으로 결정했을 때 굉장히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면서도 "경준위에서도 무슨 근거로 역선택 방지를 배제하기로 했는지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분명한 과학적·통계적 증거를 갖고 설정해야 한다"며 정홍원 선관위에서 충분한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모든 여론조사는 목적을 밝히게 돼 있고, 역선택을 하려고 마음 먹은 사람은 (방지 조항을 넣더라도) 막을 수가 없고 처벌도 할 수 없다"며 실효성 문제를 제기했다. 신 교수는 "선관위에서 무리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표본 수를 늘리는 것이다. 돈은 더 들어가지만 룰을 바꿀 필요는 없다"며 "현재 정례여론조사를 표본 1000명 정도로 하는데 1만명 이상으로 늘리면 역선택의 비율을 낮출 수 있다"고 제언했다. 홍 교수도 "표본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역선택 효과는 상쇄될 수 있다"고 봤다. 반면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역선택이란 단어가 오픈에 가까운 경선을 하는 시대에 맞지도 않다"고 논란 자체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박 교수는 선관위의 경선 룰 변경 가능성에 대해서도 "바꾼다면 전(全) 캠프 합의와 상식적인 선에서 바꾸는 경우는 가끔 있지만, (이번 경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