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미국 등 주요국 정부가 자국 반도체 공급망의 안정성과 회복력을 중시하는 반도체 산업 정책을 추진함에 따라 지금까지 공정별·지역별로 분업했던 관련 공급망이 구조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주요국의 반도체 산업정책과 공급망 변화 전망' 보고서에서 향후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국제 분업체계에서 자국 내 분업체계로의 전환, 미·중 디커플링(탈동조화) 심화, 초미세 공정 경쟁 격화 등의 변화를 보일 것이라고 31일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반도체 산업은 지난 수십 년 간 지역 간 전문화·분업화가 이뤄졌는데, 최근 코로나19와 자연재해로 인해 공급망 교란이 발생하면서 각국의 관련 정책 기조가 바뀌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6월 미국 백악관은 반도체 등 4대 품목의 공급망 점검 보고서를 발표하고 미국 내 반도체 공급망 구축을 우선순위로 삼았다. 미 의회 역시 520억 달러(약 60조원) 규모의 반도체 제조 인센티브 법안(CHIPS for America Act)을 추진 중이다.
중국은 '반도체 국산화'를 최우선 목표로 내걸며 대규모 국가 펀드 지원을 통한 지원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유럽연합(EU), 대만, 일본 등도 인센티브 강화 등 자국 반도체 산업 진흥 정책을 추진 중이다.
보고서는 또 최근 미국의 대 중국 반도체 제재와 이에 대한 중국의 맞대응을 언급하며 "미·중의 기술을 활용하거나 소재·장비를 공급하는 제3국의 기업들에도 영향을 끼쳐 세계 반도체 공급망을 양분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다양한 첨단 산업에 활용 가능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초미세 공정 반도체 설계·제조 기반을 선점하기 위한 국가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규섭 무역협회 연구원은 "주요국은 반도체를 단순한 상품이 아닌 핵심 안보 자산으로 인식한다"며 "여러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앞으로의 반도체 전쟁에서도 경쟁 우위를 지키려면 기업과 정부 간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정일기자 comja77@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