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왜 지금도 호찌민인가

후루타 모토오 지음·이정희 옮김 / 학고방 펴냄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9년 9월 2일 오전 9시 45분, 79세 노인의 맥박이 정지했다. 베트남 민족운동에 헌신하면서 아시아의 반(反)식민운동을 이끌었던 '거인'이 지는 순간이었다. 길고 험난했던 호찌민(胡志明) 의 삶은 끝났다. 북베트남 정부가 다음날인 3일 그의 사망을 발표하자 전 세계에서 논평이 쏟아졌다. 우루과이의 한 신문은 "우주만큼 넓은 심장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아이들에 대한 가없는 사랑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모든 분야에서 소박함의 모범이다"고 평가했다. 미국 타임지는 "적의 총구 앞에서 꿋꿋하게 버텼던 사람은 그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는 헌사를 바쳤다.

9월 8일 미군 폭격의 위험 속에서 장례식이 열렸다. 군악대가 '남베트남을 해방하라'는 곡을 연주하자 하노이 바딘 광장에 모인 10만명의 추모객들은 흐느꼈다. 장례식은 그의 유언대로 간소하게 치러졌다. 하지만 시신을 화장해 베트남 강토에 뿌려달라는 유언은 지켜지지 않았다. 호찌민은 성실했고 사심이 없었다. 조국과 결혼했다면서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재산을 모으지 않았고 따라서 유산도 없었다. 그는 유언은 "평화롭고 통일되고 독립돼 민주적이며 번영된 베트남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그는 러시아혁명을 이끈 '레닌' 같기도 했고, 인도 민족해방운동의 '간디' 같기도 한 지도자였다.

일본 최고의 베트남 현대사 연구자가 쓴 이 책은 호찌민 개인에 대한 단순한 전기가 아니다. 그의 사후 베트남의 역사 전개에서 호찌민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초점이 맞추고 있다. 베트남판 개혁개방 정책인 '도이머이'가 그의 후배들에 의해 어떻게 도입되게 되었는지, '호찌민 사상'이 1991년 베트남공산당의 당 규약에 어떻게 명기되었는지, 빠른 경제성장을 구가하는 현재의 베트남에게 호찌민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등에 대한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낸다.

내년이면 한국과 베트남이 국교를 수립한 지 벌써 30주년이 된다. 하지만 우리의 베트남과 베트남인에 대한 인식은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호 아저씨'(伯胡)라 불리며 추앙되는 호찌민을 모른다면 베트남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없다. 책은 호치민과 베트남을 제대로 인식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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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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