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이어 아프간전에 가장 많은 군대를 투입한 영국에서는 탈레반을 공식 정부로 쉽사리 인정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온다.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지난 15일 "아무도 성급히 탈레반 정권을 인정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올해 주요7개국(G7) 의장국인 영국은 아프간 사태를 논의하기 위한 G7 정상회의 소집을 요구한 상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6일 "모든 형태의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에 맞서 계속 적극적으로 싸우는 것이 우선"이라며 "아프간이 과거와 같이 다시 테러의 성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아프간에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실패를 자인하며 "앞으로 이런 작전에 있어서 목표를 더 낮춰 잡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프간전을 주도한 미국을 의식한 말처럼 들린다.
'카불 굴욕'의 당사자 미국은 아주 난감한 상황이 됐다. 이번 일로 국제사회 주도권에 상처가 생긴 데다 아프간전에 참전한 유럽 동맹국의 테러와 난민 증가 우려를 달래야 하는 임무까지 생겼다. 특히 서방이 탈레반과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합법정부로 인정할지에 대해선 미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미국은 그간 무력으로 정권을 잡으면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하지만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의 발언이 묘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프라이스 대변인은 16일 언론 브리핑에서 "앞으로 아프간의 정부에 관한 우리의 태도는 궁극적으로 탈레반의 행동에 달려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아프간을 테러리스트의 온상이 되지 않도록 하는 일과 여성 기본권 보장 중요성을 언급한 뒤 "이것이 우리가 함께 협력할 수 있는 정부"라고 밝혔다. 향후 탈레반의 태도에 따라 공식 정부로 인정할 수 있다는 여지가 뭍어 나온다.
프라이스 대변인은 탈레반에 항복한 뒤 해외로 도피한 아슈라프 가니를 아프간의 대통령으로서 여전히 인정하냐는 질문에 "국제사회와 협력할 일"이라며 구체적으로 답변하지 않았다.
반면 그동안 미국과 각종 현안을 놓고 대립각을 세워온 중국과 러시아의 반응은 다르다. 대사관 인력을 철수시킨 서방 국가와 달리 이 두 나라는 대사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6일 브리핑에서 "아프간 인민의 염원과 선택을 존중한다"고 밝혀 탈레반 정권을 인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17일 브리핑에서는 탈레반을 향해 '아프간의 새 정권'이라고도 칭했다.
이미 왕이 외교부장이 지난달 말 탈레반 이인자인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와 정식으로 회담하며 중국과 탈레반 정권 간 관계 수립에 상당히 공을 들였다. 중국은 아프간 사태에 대해 미국식 민주주의 정권을 세우려다 실패한 사례라고 비판한다. 왕 부장은 16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통화에서 "힘과 군사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문제만 더 커질 뿐"이라고 말했다는 게 중국 매체의 보도다.
러시아는 자미르 카불로프 아프간특사가 최근 "(미국의) 괴뢰정부보다 탈레반이 더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이 크다고 오래전부터 결론내렸다"고 말하는 등 일부 기대감을 내비쳤지만 중국과는 온도 차가 있어 보인다. 구소련 시절 아프간을 침공했다가 큰 손해를 보고 빠져나온 러시아는 체첸 등지에서 이슬람 무장조직의 분리독립주의 발흥을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광태기자 ktkim@dt.co.kr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실시간 주요뉴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