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황당함을 느끼게 하는 재판 결과가 있었다. 바로 승리 사건이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식품위생법 위반 △업무상횡령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성매매알선 등) △상습도박 △외국환거래법 위반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성매매) △특수폭행교사 혐의 등 총 9개 혐의가 인정돼 징역 3년 선고가 내려졌다.
이게 황당한 것은 여기 어디에도 버닝썬 사건 관련 혐의가 없기 때문이다. 버닝썬 사건은 일부 부유층이 버닝썬에서 조직적인 비호를 받으며 마약범죄, 성범죄 등을 저질렀다는 의혹이다. 그동안 언론은 승리가 버닝썬 사건의 핵심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혐의 중에 버닝썬에서 마약을 공급했다든가, 손님들의 성범죄를 덮어줬다든가 하는 내용이 나와야 한다. 하지만 무려 9개나 되는 혐의 중에 그런 내용은 없다. 그렇다면 언론은 무얼 근거로 버닝썬 사건의 핵심이 승리라고 했단 말인가?
버닝썬 사건의 전개는 정말 해괴했다. 처음 사건이 알려졌을 때 엄청난 충격파가 일었다. 공분이 터졌고 발본색원하라는 목소리가 드높았다. 언론이 대서특필했는데 그러면서 승리를 버닝썬 사건의 핵심으로 지목했다. 정준영 사건도 언론이 버닝썬 사건으로 분류했다.
당시 방송뉴스에서도 버닝썬 사건을 다룬다면서 승리과 정준영 이야기만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승리 사건과 정준영 사건이 버닝썬 사건의 모든 것이 됐다. 하지만 승리 사건은 혐의 자체가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버닝썬 사건과 거리가 멀고, 정준영 사건도 마찬가지다. 연예인의 개인일탈 사건인데 언론은 그걸 '버닝썬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그렇게 언론이 연예인 사건을 버닝썬 사건이라고 하면서 진짜 버닝썬 사건은 사라져버렸다. 사회는 공분했고 버닝썬 사건의 철저한 진상조사를 요구했는데, 이미 승리 사건이 버닝썬 사건을 대체한 구조에서 철저한 진상조사는 승리 탈탈 털기로 귀결됐다. 승리 입대 전에 언론은 승리를 구속시켜야 버닝썬 사건이 끝난다고 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검찰은 승리 구속 영장을 두 번이나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분위기에 떠밀려 무리를 한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승리 털기는 계속 진행됐고 그동안 많은 내용이 보강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번에 마침내 9개 혐의에 대한 유죄가 나왔다. 그래서 뭐가 정리됐나? 일각에선 이번 재판으로 버닝썬 재판이 마무리된다고 했는데, 버닝썬 사건이 단 10%라도 정리된 게 있나? 승리 측은 여전히 일부 혐의에 대해 억울하다고 하며, 수사기관이 승리 처벌을 목표로 정해놓고 무리하게 밀어붙였다고 주장한다. 그 말의 진위는 만약 승리가 항소한다면 향후에 밝혀질 수 있는데, 어쨌든 엄정하게 진실을 밝혀야 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건 연예인 개인비리 문제이고, 버닝썬 사건은 이 건과 별개로 진상을 밝혀야 한다. 버닝썬 사건 당시 제기된 의혹들로 뜨거운 파장이 이는 와중에 더 충격적인 의혹이 나왔는데, 바로 버닝썬 사건이 버닝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강남 클럽에서 일했던 사람이, 다른 강남 클럽에서도 잘못된 행동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애초에 버닝썬 자체가 강남 클럽 문화 속에서 다른 클럽의 업태를 모방하면서 생긴 업소였다. 버닝썬의 MD들도 다른 클럽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스카우트한 거라고 했다. 그렇다면 버닝썬의 문화가 다른 강남 대형 클럽의 문화하고 서로 통할 가능성이 있었다. 거기에 다른 클럽의 의혹에 대한 폭로까지 나왔다면 클럽 문화 전반에 대해 문제를 밝혔어야 했다. 최소한 버닝썬만이라도 제대로 조사해서 부유층과 MD들의 잘못된 커넥션이 의혹처럼 정말 존재하는지 밝혔어야 했다. 하지만 언론은 '승리! 승리! 승리!'만을 외쳤고 마침내 이번에 승리 유죄가 나오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버닝썬 사건은 덮였다.
모두가 승리만 바라보는 사이에 클럽 마약 성범죄 관련자들은, 만약 그런 자들이 존재한다면, 이미 증거를 지웠거나 사라졌을 것이다. 오피스텔을 빌려서 그런 행동을 했다는 주장도 있었는데,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이것 역시 다 정리했을 것이다. 국민공분 사건을 언론이 연예인 일탈 사건으로 바꿔치기한 신묘한 '야바위'가 21세기에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