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문화평론가
안산 선수가 짧은 머리카락 때문에 페미니스트로 낙인찍혀 공격받았다는 보도들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다. 주말엔 국민의힘 대변인이 안산 선수가 남성혐오 단어로 지목된 용어를 쓴 게 문제였다는 식으로 주장해, 남성혐오 단어 논란으로 상황이 더 복잡해졌다. 무려 약 일주일에 걸쳐 이 논란이 크게 벌어졌는데, 국내외에서 가장 뜨겁게 주목 받은 건 짧은머리 문제였다.

올림픽 영웅이 짧은머리 때문에 비난당한다는 건 정말 황당한 이야기다. 그래서 보도가 쏟아졌고 국내외 관심이 폭발했다. 하지만 이상한 논란이었다. 보도는 많았는데 그 실체가 모호했다. 통상적으로 이렇게 대대적으로 보도가 나올 정도의 이슈라면, 그런 움직임이 실제로 인터넷상에서 포착이 된다.

예를 들어 크게 화제였던 편의점 손가락 포스터 논란의 경우, 기사 댓글 게시판에 관련 주장이 넘쳐났었다. 이렇게 큰 사회적 이슈는 찬반 양측의 열띤 게시판 공방을 보며 이슈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짧은머리 논란의 경우는 관련 기사들이 넘쳐나는 가운데 정작 그런 주장을 하는 게시물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짧은머리로 안산 선수를 비난했다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만 가득했고, 그 반대 주장은 없다시피 했던 것이다. 누가 짧은머리를 이유로 안산 선수를 비난했다는 건지 확인이 어려운데 언론만 열을 올렸던 셈이다.

짧은머리 스토리가 너무나 황당하고, 공분을 초래하기 좋은 내용이다보니 앞뒤 안 가리고 매체들이 그대로 받아쓴 것이 아닐까? 황당한 스토리에 반응하는 건 외신도 예외가 아니어서, 해외매체들도 이 파문을 전했다.

로이터 통신은 '한국 양궁 선수 안산의 짧은 머리 모양이 국내에 반 페미니스트 정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헤어스타일을 보고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 온라인 학대는 한국 젊은 남성들 사이의 반페미니즘 정서에 기인한다'고 했다. 프랑스24는 '짧은 머리를 선택한 건 페미니스트란 의미라고 주장하는 남성들이 안 선수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BBC는 '양궁 2관왕에 오른 한국의 안산 선수가 온라인상에서 학대를 당하고 있다'며 '안산은 짧은 머리로 비난을 받고 있다. 헤어스타일을 둘러싼 온라인 학대는 일부 젊은 한국 남성들 사이의 반페미니즘 정서에 기반해 일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에서도 짧은머리 파문에 관심이 나타났고 한국이 조롱의 대상이 됐다.

국내 기사들을 보고 외신이 정말 한국에 그런 현상이 만연한 줄 알고 보도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 실체도 불분명한 짧은머리 파동은 나라망신으로 귀결된 모양새다.

물론 아예 없는 현상을 매체들이 보도하진 않았을 것이다. 일부 남초커뮤니티에서 실제로 그런 움직임이 있었을 순 있는데, 극단적인 사람들 일각의 움직임을 과도하게 국가적인 이슈로 만든 것은 아닌지 언론이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일부 극단적 표현을 언론이 자꾸 부각시키면 대립이 심화되고 사회가 황폐해진다.

한편, 언론이 과도하게 일을 키운 것과는 별개로 일부 남초커뮤니티의 극단적 언행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들이 과도한 여성혐오 표현 등을 만들어 인터넷 곳곳에 흩뿌리면서 대립이 시작됐다. 그후에도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계속해서 극단적인 행태를 이어간다.

일부 여초커뮤니티에서 미러링을 한다면서 유사한 행태를 보인 것이 사태를 본격적으로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남성혐오 단어로 지목된 용어'라는 것도 이런 미러링의 와중에 생겨났거나, 그렇게 의심받는 말일 수 있다. 양측에서 서로 극단적인 표현으로 응수하면서 이젠 어느 표현이 왜 문제인지조차 알 수 없는 혼돈의 상황이 됐다. 그저 어떤 표현이 혐오표현이라는 분노의 목소리만 가득하다. 이 와중에 아무 생각 없이 해당 표현을 썼다가 혐오 동조자로 낙인찍히는 애꿎은 피해자들이 양산된다. 안산 선수도 그런 피해자일 가능성이 있다.

보통 양비론은 무의미한 진단일 경우가 많은데, 최근 남녀대립 논란에선 양비론이 가장 정확한 진단이다. 일부 남초커뮤니티의 여성혐오와 그에 대한 일부 여초커뮤니티의 미러링이 이 난국을 만들었다. 이를 두고 어느 한쪽만 비판하는 건 사태를 더 심화시킬 뿐이다. 언론이 양측 모두 문제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하고, 과도하게 대립을 부추기는 보도행태도 주의해야 한다.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