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했다. 연합뉴스.
국가정보원이 3일 "북한이 한미연합훈련 중단 시 남북관계에 상응하는 조치를 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국정원은 북한이 미북 간 대화 조건으로 대북제재 일부 완화를 염두하고 있는 것으로 봤다.
당장 야권에서는 국정원의 이 같은 시각은 지나치게 북의 입장을 반영만 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북핵 문제 해결이 선행되야 한다는 게 그동안의 정부와 미국 등 유엔의 입장이다. 중국과 북한은 북핵 해결을 위해 점진적으로 하나씩 주고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국정원의 시각은 북한의 이 같은 시각을 대변하는 것이다.
앞서 한미훈련 중단을 촉구하는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담화에 이어 국정원의 발언까지 공개되면서 이날 국회는 한미훈련을 놓고 공방이 벌어졌다.
국정원은 이날 국회 정보위 전체회의에서 국회에 북한 동향을 보고하면서 최근 남북이 통신 연락선을 복원한 것과 관련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복원을 요청한 것"이라며 "남북이 통신 연락선을 통해 매일 두 차례 정기적으로 통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보위 여당 간사인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보위 야당 간사인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정보위 브리핑에서 국정원의 보고를 전하면서 "지난 4월부터 남북 정상 간 두 차례 친서 교환을 통해 남북 간 신뢰 회복과 관계 개선의 의지를 확인했고, 판문점 선언 이행 여건을 탐색하기 위한 목적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서해 군 통신선을 통해 지난달 29일부터 매일 한 차례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 정보를 교환하고 있으며, (함정 간) 국제상선통신망은 오늘부터 정상적으로 교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또한 "북한은 대외적으로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 및 한미 당국 간 긴밀한 대북정책 조율 결과를 주시하면서 우리 정부가 향후 북미 관계 재개를 위해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는 측면도 있다고 (국정원이 설명)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미국의 대북제재 조정 또는 유예와 관련해서는 "북한이 광물수출 허용, 정제유 수입 허용, 생필품 수입 허용 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 의원은 생필품의 경우 북한 측은 평양의 상류층들에게 공급하기 위한 고급 양주와 양복을 원하고 있다는 구체적인 내용도 설명했다.
북한의 이런 움직임은 남북 통신 연락선 복구를 사전조치로 취하면서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압박하는 동시에 조건부로 북미 간 대화 가능성을 물밑에서 확인하는 이중적인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여권에서는 남북미 대화 재개 가능성을 고려해 한미연합훈련을 연기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전날 통일부와 설훈 민주당 의원이 SNS에 언급한 데 이어 이날 박지원 국정원장도 '북한의 비핵화라는 큰 그림을 위한 유연한 대응'을 강조했다.
하지만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대북제재 완화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수정해야 하는 사안이므로, 사실상 미국이 받기는 어려운 안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논의를 하더라도 북한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 있는 조치가 전제되지 않는 한 대화의 테이블이 무르익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전화 통화에서 이날 국정원이 밝힌 대북제재의 조건과 관련해 "굉장히 큰 의미가 있고 중요한 내용인데, 북한은 그간 미국의 북한 적대시 정책 철회가 대미 회담의 전제라고 주장해왔다"며 "만일 이날 국정원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지난 2019년 북한이 하노이 회담에서 요구한 것이 대북제재의 해제인 것이 확실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그러면서도 "큰 틀에서 볼 때 북한의 수출핵심이 광물이고 수입에서도 가장 문제가 정제유와 원유인데, 이 제재를 풀어 달라는 것은 핵심 제재를 거의 다 풀라는 이야기"라면서 "미국에서 중요하게 보는 △협상 테이블에 일단 앉고 △비핵화에 관한 전향적 조치의 두 단계를 뛰어넘은 요구여서 미국이 받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