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10년간 170조 투자·R&D 지출도 年 7% 이상 확대
美, 일본·대만 이어 한국과 반도체·배터리 동맹 추진
韓, 규제완화·인재육성 그쳐… 특별법 처리못해 아쉬움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 <삼성전자 제공>
[디지털타임스 박정일 기자] 삼성전자가 3년 만에 세계 1위 자리를 탈환한 반도체 시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산업의 '쌀'을 넘어 '공기'로 표현할 만큼 필수 불가결한 산업재로 가치가 치솟았다.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자동차는 물론 건물, 청소기, 심지어 전등 같은 제품까지 안 들어가는 곳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스마트폰의 대중화와 5G 통신 시대의 개막으로 데이터센터가 처리해야 할 정보량은 기하급수로 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을 비롯 세계 각국이 '국가 안보'까지 언급하며 자국 내 반도체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美·中·EU 등 수년 내 수십조원 직접투자…한국기업 러브콜도= 세계 반도체 전쟁의 포문을 연 것은 중국이다. 중국은 지난 2015년 '중국제조 2025'에서 반도체 자급률을 2020년 40%, 2025년 70%로 늘리기 위해 10년 간 1조위안(17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중국의 반도체 산업은 미국의 견제를 받기 전까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세계반도체통계기구(WSTS)에 따르면 중국의 반도체 시장규모는 2010년 570억 달러에서 2020년 1434억 달러를 기록, 10년 만에 2배 이상 성장했다. 그러나 미국 트럼프 정부에 이은 바이든 정부에서 집중 견제를 받으면서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2020년 기준 15.9%에 머물렀다. 최근 중국 최대 반도체 기업인 칭화유니는 파산, 구조조정 수순을 밟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물러서지 않을 기세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지난 3월 중국의 연례 최대 정치행사 양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AI를 포함한 8개 신산업과 7개 영역의 연구·개발(R&D) 지출을 매년 7% 이상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맞서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지난 3월 2조2500억 달러(약 2543조원) 규모의 인프라 투자 계획을 공개하면서 이 가운데 500억 달러(약 57조원)를 반도체 분야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미 상원에서도 중국에 대한 기술 경쟁력 우위 확대를 위해 총 2500억 달러(약 280조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내용의 '미국혁신경쟁법'을 준비해 조만간 통과시킬 예정이다.

미국 정부는 자국 반도체 공급망 강화를 위해 글로벌 동맹도 더 굳건하게 다지고 있다. 이미 일본과 탄탄한 반도체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지난 6월 대만과의 무역투자기본협정(TIFA)에서 반도체 협력을 처음 논의하는 등 미·일·대만 반도체 3각동맹을 구축 중이다.

미국은 이를 넘어 한국과도 중국 견제를 포함한 반도체·배터리 동맹을 구축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여러 채널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마샤 버니캣 미 국무부 경제성장·에너지·환경 담당 차관 대행은 지난달 21일 '제4차 한미 민관합동 경제포럼' 기조연설에서 전기차 배터리와 반도체 분야에서 양국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양자 컴퓨팅과 기후변화, 글로벌 백신 공급 등 다른 분야에서도 한미 공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도 마찬가지다.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EU는 독일, 프랑스 주도로 최대 500억 유로(약 67조4630억원)에 달하는 첨단 반도체 제조기술 발전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며, 이를 위해 삼성전자와 TSMC의 참여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원책 등 힘입어 반도체 투자 급증…韓 정부는 소극적= 반도체 수요 급증과 주요국의 전략적 투자로 세계 반도체 시장은 괄목할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1일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세계 반도체 장비 투자액은 지난해 596억 달러(약 68조6000억원)에서 6% 늘어난 632억 달러(약 72조7000억원)로, 내년에는 700억 달러(80조6000억원)를 돌파하면서 역대 최대치를 경신할 전망이다.

SEMI는 아울러 올해와 내년 세계 반도체 신규 공장 착공만 29곳이 진행되고, 이를 위한 반도체 장비 투자액은 무려 160조원을 넘을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이 역시 주요국들의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 전략에 따른 결과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세계 각국의 움직임에 비해 우리 정부의 지원책은 다소 아쉬움이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지난달 29일 세법개정안을 통해 반도체 등 국가전략사업을 대상으로 5년 간 총 1조3000억원 규모의 법인세 감면을 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앞서 지난 5월에는 2030년까지 총 510조원을 투자하는 'K-반도체 전략'을 내놓기도 했다. 다만 이 같은 투자금액은 거의다 민간기업들이 집행하는 내용이고, 정부는 세금과 규제완화, 인재육성 등 간접지원에 방점을 뒀다.

업계에서는 시급한 현안인 화학물질관리법 규제완화 등의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고, 정치권에서 논의 중인 반도체 특별법 처리가 지지부진한 점 등에 대한 아쉬움도 나오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미국은 반도체에 5년간 59조 원을 직접 지원하는 법(CHIPS for America Act)을 통과시켰고 일본은 자국 기업도 아닌 대만 TSMC가 일본 내 연구시설 짓는데도, 자금을 지원하면서까지 대만과 손잡고 반도체 산업 부흥에 발 벗고 나섰는데, 왜 우리 기업이 정부 지원은 바라지 않고 자기 돈을 투자하겠다는데 그것 하나 못 도와주느냐"고 말했다. 박정일기자 comja77@dt.co.kr

세계 반도체 장비 투자규모. <출처=SEMI>
세계 반도체 장비 투자규모. <출처=SEMI>
중국의 반도체 산업 시장규모 추이. <출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국의 반도체 산업 시장규모 추이. <출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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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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