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시설 위주 상권으로 인기 얻었지만 코로나에 손님 뚝 인근 마곡지구 상권에 위기감… 구청 이전까지 악재 겹쳐 골목경제 회복지원사업 통해 8억 투입… 혼잡한 도로 정비 상인들 "불법주차로 불편… 주차공간 확보 시급" 한목소리
강서구청 먹자골목 안쪽에는 노후한 빌라와 단독주택이 가게와 어우러져 있다.
풀뿌리상권 살려내자
강서구청 먹자골목
지난 19일 오후 7시 반쯤. 서울 강서구청 먹자골목은 각종 음식점과 주점의 현란한 간판들로 환했지만, 가게 안팎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상인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한창 저녁 장사가 이뤄질 시간대이지만 내부에 손님들이 채 반도 들어차지 않은 가게들이 대부분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적용되면서 오후 6시 이후에는 3인 이상 모임이 금지되면서 거리에는 둘씩 짝지은 시민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주점과 음식점이 즐비했지만 흥이 오른 손님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지역 대표 상권이자 한때 서울 서남부 최대 상권으로 자리매김했던 과거가 무색한 모습이다.
화곡역과 가양역 사이에 위치한 이 상권은 1977년 강서구청 개청 이후 서서히 발전해 지금의 모습을 형성했다. 강서구청과 강서경찰서 뒷길 300m 정도가 주요 골목이고, 이를 줄기로 삼은 200m가량의 골목 3~4곳이 먹자골목 상권으로 함께 묶인다.
음식점과 주점, 숙박, 게임 등 유흥시설 업종 위주로 가게가 꾸려졌다. 이런 상권의 특성 때문에 10년도 훨씬 전에는 주변 직장인들은 물론 경기도에서 넘어와 유흥을 즐기는 사람들이 넘쳐났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 상인들의 말을 종합하면 강서구청 골목상권은 국내 코로나19 발생 이전부터 위축되고 있었다. 3km 정도 떨어진 마곡지구에 새로운 유흥 상권이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위기감이 더욱 커졌다. 잘 관리된 계획 지구, 세련되고 정돈된 거리, 신규 아파트 대단지, 대기업 입주 등의 매력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겼다. 업무용 건물과 구축 빌라, 단독주택 등이 혼재돼 형성된, 구도심 유흥 상권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강서구청 먹자골목과는 대비되는 부분이다. 일부 상인들은 상권이 축소되기 시작한 시점이 2015년 청탁금지법(김영란 법) 시행 이후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강서구청이 10년 넘게 추진해 온 구청 이전이 확정되면서 분위기는 더욱 싸늘해졌다. 강서구청은 마곡역 인근에 신청사를 2026년까지 건립하기로 하고 이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 청사가 지어진 지 40년이 훌쩍 넘어 유지 보수를 위한 예산이 매년 증가하는 데다 면적도 협소해 보건소, 구의회 등 주요 관청이 분산될 수밖에 없어 효율성 하락을 유발한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구는 타당성 조사와 주민 여론조사 등을 거친 결과 이전이 낫다는 결론을 내리고 신청사 이전을 지난해 공식화했다.
강서구청 통합 신청사는 대지면적 2만256㎡, 건축 연면적 5만2152㎡으로, 지하 1층, 지상 10~11층 규모로 계획됐다. 구청과 구의회, 보건소, 편의시설도 함께 들어설 예정이다.
먹자골목 상인들 사이에서는 청사 이전으로 인한 상권 침체 우려도 자연스레 나온다. 가뜩이나 경기 침체 장기화로 화곡로 대로변과 마주한 건물의 1층 상가는 공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 상권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A씨는 "예전부터 손님들이 줄고 있었지만 코로나19로 장사하기가 더 어려워졌다"라며 "아직 5년이나 남았지만 강서구청 이전으로 더 침체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다"고 토로했다. 소규모 카페를 운영하는 B씨는 "당장 오늘만 해도 거리에 사람이 없지 않냐"고 되물으며 "코로나 여파도 언제까지 갈지 모르는데 상황이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화곡6동 주민센터와 화곡로56길 진입로. 대로변과 먹자골목 진입로로 목이 좋아보이지만 공실로 남아있다.
강서구청은 청사 이전으로 우려되는 주변 상권 침체에 대한 여러 대책을 강구하는 중이다.
그중 하나가 지난해 선정된 '골목경제 회복지원 사업'이다. 이 사업은 위축된 골목 상권을 되살리기 위해 진행되는 사업이다. 상권 문제를 자치구와 상권이 직접 해결하고 극복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가 예산을 지원하게 된다. 서울시에서 유일하게 선정된 강서구는 이 사업으로 8억원을 지원받았다.
강서구는 사업을 통해 먹자골목을 '걷고 싶은 거리'와 '다시 찾고 싶은 거리'로 환경을 개선하는 것에 주목했다. 우선 혼잡한 도로를 개선하기 위해 '보행환경 개선사업'을 진행 인도·차도의 재포장과 보행자 중심의 길을 조성해 올해 2월 공사를 끝냈다. 안전사고 예방과 더불어 보행자 편의를 높이기 위해 강서로56길 일대 보도를 기존 2m에서 4m로 확장했고, 보행자 우선도로 3개 구간도 새로 지정했다. 보행자 우선도로 조성 구간은 강서로52길(연장 500m), 54길(연장 550m), 공항대로38길(연장 450m)이며 폭은 약 6~8m다. 도로 바닥에는 스텐실 포장을 실시해 미끄럼을 방지했으며 주변 상점과 어울리는 다양한 무늬를 적용해 보행자가 걷고 싶은 거리를 연출했다. 보행자 우선도로에서 차량은 통행속도를 30㎞/h 이내로 다녀야 하고 고보조명과 투광등을 설치해 보행 편의성을 높였다. 먹자골목 내 방범용 폐쇄회로(CC)TV도 설치했다.
골목 특화 캐릭터 '수리'도 선보이고 안내판에 그려 넣었다. 수리라는 이름은 천연기념물 제324호로 보호되고 있는 수리 부엉이에서 착안했다. 복을 가져다주고 지혜를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지는 만큼 강서 먹자골목이 장사가 잘되는 상권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희망을 담았다. 다양한 볼거리로 다시 찾고 싶은 골목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기자가 먹자골목을 방문했을 때 먼저 눈에 들어왔던 것도 잘 닦인 도로였다. 한바탕 비가 내리고 난 후라 습하긴 했지만 도로에 물이 고여있거나 흙탕물로 지저분한 거리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퇴근 시간대에는 먹자골목을 통해 주거지역으로 이동하는 차들로 혼잡했다. 초저녁에는 거리에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저녁 9시가 넘어가자 지인, 동료 등과 식사 후 집으로 돌아가는 시민들을 여럿 볼 수 있었다.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보니 현란한 간판을 내건 식당과 주점보다 아기자기한 소규모 가게들이 보였다. 특화 캐릭터를 입힌 전봇대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고, 노후한 빌라·주택들이 가게와 어우러진 모습이었다. 다만 다인 식사가 어려운 상황인 만큼 안을 들여다보면 손님은 1~2팀만 있거나 아예 없는 곳도 있었다. 먹자골목이 오래되다 보니 터주대감과 같은 맛집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있었다. 인근 지역에서 곱창으로 유명한 '황소곱창', 맛집 프로그램 '수요미식회'에 나오기도 한 '예진 닭 한마리 산낙지' 등 종류도 다양했다.
지난해 사업 선정 직후 가장 빠르게 진행된 사업은 골목상권 상인들의 역량 강화였다. 지난해 10월 강서구청과 먹자골목 상인연합회, 서울신용보증재단은 '강서구청 먹자골목 상권 활성화 업무 협약'을 맺고 '역량강화 교육'과 '시설개선 지원'을 진행했다. 역량강화 교육은 상인연합회와의 협의 과정에서 전문 컨설팅에 대한 요청이 많아 먹자골목 내 77개 점포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서울신용보증재단에서는 간판, 인테리어, 냉·난방기 등 점포 내외부의 환경 개선이 필요한 경우 업소당 100만원 이내로 지원하는 사업도 진행됐다.
상인들은 골목의 주차난 해결에 대해서도 입을 모았다. 먹자골목 상권 활성화를 위해서는 손님들이 마음 편히 다시 찾을 수 있는 주차 공간 확충이 필요하다는 의견에서다. 실제로 주요 골목에는 불법 주정차된 차량이 많아 일부 구간은 인도 통행이 불편하기도 했다. 구는 점진적인 해결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구청 관계자는 "상인들의 요청을 알고 있지만 골목경제 회복지원 사업 예산으로 주차장 신설은 어려웠다"라며 "먹자골목 주차 공간 추가 확보는 내부적으로 논의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주차난은 장기적으로 완화할 전망이다. 먹자골목 인근에 위치한 옛 강서아파트 백연공원에 지하 주차장이 만들어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