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도전 열 손가락 잃은 산악인 브로드피크 정상 정복후 하산중 실종 파키스탄 군 헬기 동원 등 긴급 수색
김홍빈 대장이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북동부 카라코람산맥 제3 고봉인 브로드피크(8047m) 베이스캠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광주시산악연맹 제공]
"코로나로 지친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장애인 김홍빈도 할 수 있으니 모두들 힘내십시오."
'열 손가락을 잃은 산악인' 김홍빈(57) 대장이 이렇게 대국민 응원메시지를 남긴 후 침묵이 길어지고 있다. '도전의 아이콘' 김홍빈 대장은 현지시간 18일 오후 4시 58분(한국 시각 오후 8시 58분) 파키스탄과 중국 국경 지대에 있는 브로드피크(Broad Peak·8047m) 정상 정복에 성공한 위대한 산악인이 하루 만에 하산 과정에서 실종됐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모든 조건이 갖춰진 도전은 더 이상 도전이라 부르지 않는다. 온전한 몸으로 오르는 것과 열 손가락을 모두 잃은 자가 오르는 것은 다르다."라는 글을 남겼다. "어떤 위험 속을 헤쳐나갔느냐가 중요하기보다 어떤 조건으로 극복했느냐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 오르는 자가 가진 story(이야기)와 극복 의지가 맞물릴 때 가장 클 것이라 믿는다." 자신의 도전 앞에 '장애'는 아무런 '장애'가 아니라는 것을 몸소 보여줬다.
산악인 김홍빈은 전남 고흥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때부터 산을 동경했지만, 대학 산악부에 들어가면서 산과 본격적인 인연을 맺게 됐다. 그는 고산 등반을 제대로 하기 위해 술, 담배도 멀리하고 스키, 사이클, 스케이트도 열심히 탔다.
그는 1989년 동계전국체전에 출전, 노르딕 개인전 2위에 입상하고 그 해부터 1991년까지 바이애슬론 부문에서 1, 2,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2019년 전국장애인동계체육대회 알파인스키 대회전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도로사이클 개인도로 독주 24㎞ 2위, 트랙경기 팀스프린트 1위도 기록했다.
그는 대학 2학년 때 광주·전남 암벽대회에 출전해 2위에 오를 정도로 기량이 부쩍 늘었고 1989년 에베레스트 원정에 이어 1990년 낭가파르바트 원정에도 참여할 정도로 전도유망한 산악인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1991년 북미 최고봉 매킨리(6194m) 단독등반은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이 등반에서 조난을 당해 열 손가락을 모두 잃고 손목까지 절단하며 산악인으로서는 좌절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방황은 잠시, '다시 한번 시작해보자. 나는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고 백두산부터 한라산까지 한반도의 모든 산을 오르고 구르며 다시금 의지를 다졌다. '다시 산을 오를 수 있겠느냐'는 편견에 맞서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가던 그는 선후배의 도움을 받아 재기에 성공해 7대륙 최고봉과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나선다.
그는 2009년 7대륙 최고봉을 13년 만에 완등하고 히말라야 14좌 중 13좌를 정복했다. 모두 장애인으로는 누구도 해내지 못한 최초의 기록이다. 2019년 히말라야 13좌 등정에 성공하고 이제 마지막 1개인 브로드피크(8047m) 등정만을 남겨뒀다. 당초 지난해 등정 계획이었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올해 등반에 나서 지난 18일 14좌 완등이라는 소식을 국민들에게 전했다.
주파키스탄 한국대사관은 김 대장의 실종소식을 접하고 현지 당국에 곧바로 협조 요청을 하는 등 긴급 대응에 나섰다. 주파키스탄대사관 관계자는 19일 "김홍빈 대장이 실종됐다는 연락을 받은 후 전 직원이 구조 지원 관련 업무에 투입됐다"며 "내일부터 파키스탄군 소속 헬기가 수색에 동원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사관은 이와 함께 브로드피크 현지로 영사와 현지 직원을 급파할 예정이다.김광태기자 ktkim@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