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외작업 비중높은 조선·건설업 年평균 열사병 환자 수십명 발생 원청 책임범위 모호한 규정 논란 개인부주의 등 제외 법수정 필요
<한국경영자총협회 제공>
[디지털타임스 박정일 기자] 옥외작업 비중이 높은 조선·건설업의 A사업장은 연 평균 열사병 증상자가 약 15명, B사업장은 약 20명 정도 발생하고 있다. 대부분 간단한 진료와 휴식을 하면 수일 내 회복할 수 있었다.
만약 두 사업장 각각에서 연간 발생 환자들 가운데 최소 3명이 의도적으로 4일 이상 요양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업재해 인정을 받을 경우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이 된다. 해당 기업의 경영책임자는 매년 법 위반 여부에 대해 조사를 받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14일 온라인으로 개최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관련 산업계 긴급 대책회의'에서 나온 업종별 우려사항의 한 사례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에도 온라인 화상으로 긴급 회의를 개최한 이유는 모호한 처벌규정 때문에 산업계 전반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9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관련 시행령 제정안을 발표했다. 40일간 입법예고 기간을 거쳐 내년 1월27일부터 해당 법이 시행된다.
각 업종별 안전·보건 관계자들은 이대로라면 회사 대표이사가 매년 수사와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이날 회의에서 자동차·타이어 업종 관계자는 "원청의 책임범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아 사업장 내 모든 제3자의 종사자 사고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다"며 "정부가 해석이나 가이드라인 만으로 법을 적용하는 것은 형법상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화학물질 취급 작업이 많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업종의 경우 중대시민재해 대상인 원료 또는 제조물 목록 가운데 '그 밖에 이에 준하는 것으로서 생명·신체에 해로운 원료 또는 제조물'이라는 포괄규정 문구가 있는데, 범위가 너무 광범위해 재해 발생 시 법 적용 대상인지를 둘러싼 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건설업종은 경영책임자 의무 중 전담조직 설치 요건으로 '시공능력평가 순위 200위 이내'라는 별도의 규정을 지켜야 하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중소규모여서 전담조직을 만들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회의에 참석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예를 들어 순위 197위인 모 건설업체의 경우 본사 전체인력이 21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정유업종은 "중대시민재해 대상인 공중이용시설에 주요소와 가스충전소를 포함시키면서, 단순히 면적으로 적용대상을 정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재검토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예를 들어 지방에 있는 주유·충전소의 경우 2000㎡ 이상의 부지에 주유·충전기가 1~2대만 설치돼 있는 경우가 많고, 전체 면적 중 85%가 주차장 등 유휴부지로 쓰이는데도 처벌 대상이 된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도 해당 규제가 현장의 특수성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처벌 만능주의'라며, 이대로 시행될 경우 심각한 부작용이 초래될 것으로 우려했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선진국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강한 처벌에 의존하는 것은 산업재해 감소에 기여하지 못한 채 영세중소기업 등에 과잉처벌이 집중되는 부작용만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동근 경총 부회장은 "개인의 부주의 등 다른 원인에 의해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경영책임자가 처벌받지 않도록 법률수정이 필요하며, 경영책임자 범위, 도급인의 책임범위 등이 구체화될 수 있도록 연내에 보완입법이 반드시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경총은 이번 대책회의 결과 등 산업계 의견을 종합적으로 수렴해 경제계 공동건의서를 조만간 정부부처에 제출할 계획이다.박정일기자 comja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