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학계 원로 崔, 尹에 자유주의 가치정립 적극 제언
"자유주의 없이 민주주의 위험 빠져" 공감대…崔 "냉전자유주의 탈피하고 소외계층 주목" 당부
대통령 권력집중 비판도…崔 "현행헌법 총리권한 구현을" 尹 "靑 독점 국정 난맥 심각"

지난 7월12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오른쪽)이 서울 시내 한 식당에서 진보진영 학계 원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왼쪽)를 만나 대화하기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윤석열 제20대 대통령선거 예비후보 캠프 제공
지난 7월12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오른쪽)이 서울 시내 한 식당에서 진보진영 학계 원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왼쪽)를 만나 대화하기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윤석열 제20대 대통령선거 예비후보 캠프 제공
범(汎)야권 유력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진보진영 학계 원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와 만난 사실을 이틀 만인 14일 공개했다. 두 사람은 '국가주의(statism)'와 '자유주의(liberalism)'를 대척점에 놓고 보수정당의 새로운 가치 정립 방향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전 총장 대선캠프는 이날 자료를 통해, 윤 전 총장이 지난 12일 최 교수를 초빙해 서울 시내 모 음식점에서 오찬을 겸해 2시간 45분 가량 회동했다고 전했다. '한국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진단과 해법'을 의제로 최 교수는 문재인 정권에서의 대통령 권력 초(超)집중화, 국가주의 확장 기조를 비판하며 촛불시위 이후 한국 민주주의 상황에 대한 지론을 밝히고 윤 전 총장은 이를 경청하면서 정치적 견해를 피력했다고 한다.

특히 자유주의에 관한 논의가 이뤄졌는데, 윤 전 총장이 "자유주의에 대한 교수님 인터뷰·논문을 장기간 접했으며 공감해왔다"고 화두를 던졌다. 최 교수는 "자유주의가 없으면 민주주의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자유주의는 민주주의의 건강한 작동을 위한 필수조건인데 지금 한국에서의 민주주의 위기는 자유주의적 기반이 허약한 데서 비롯된다"고 진단했다.

지난달 말 정치선언부터 '자유'를 강조해 온 윤 전 총장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우리 헌법의 근간이다. 자유는 정부 권력의 한계를 그어주는 것"이라며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는 진짜 민주주의가 아니라 독재이며 전제"라는 지론을 재차 밝혔다. 그는 "현 정부는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내려 하는데 어떤 민주주의를 바라는 건지 의문"이라고도 했다.

자유주의 담론을 현실정치에 접목시키기 위한 보완 방안도 논의됐다. 최 교수는 "한국인들은 대체로 과거 냉전시대 권위주의 환경을 통해 (공산주의를 배척하기 위한) 자유주의를 경험했기 때문에 자유주의를 '냉전 자유주의'로 부정적으로 인식·이해하는 경향이 많다"며 "자유주의를 냉전 자유주의와 구분시키면서 현실에 뿌리내려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한 "자유시장경제는 상층 부르조아지(Bourgeois·중세 서구 유산시민계급)가 발전시킨 이념이었다는 것을 약점으로 염두에 두면서 접근해야 한다"며 "반드시 다원(多元)주의를 동반해야 하며 노동·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윤 전 총장은 "크게 공감한다. 자유민주주의는 승자와 사회적 상층집단을 위한 것이라는 오해가 있다. 자유민주국가에선 나의 자유만 소중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자유와 존엄한 삶도 마찬가지로 소중하다"면서 다원주의론에 공감하듯 "존엄한 삶에 필요한 경제적 기초와 교육의 기회가 없다면 자유는 공허하다"고 말했다. 또한 "자유시장경제가 건강하게 작동하기 위해선 기업이 공정한 경제질서를 헝클어뜨리는 행위에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며 미국의 반(反)독점법 제정 사례를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최 교수는 "한국의 자유주의는 (권위주의적 구질서와 연결된) 보수에 의해 제대로 수용되지 못하고 진보에 의해 버림받은 미아같은 존재"라며 "자유주의를 보수가 잡는 것으로 재도약의 기회가 온 것이다. 그것은 자유주의적 다원주의의 공백을 채우는 작업으로 출발해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에 윤 전 총장은 "새로운 기술혁명시대의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선 과학기술과 경제·사회제도 혁신과 자유주의 정신이 필수"라며 "혁신은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고, 자율적인 분위기, 공정한 기회와 보상, 예측 가능한 법치에서 나온다. 창의와 혁신은 자유주의를 근간으로 공정과 상식, 법치의 자양분을 먹고 자란다"고 화답했다.

뒤이어 '확장적 국가주의(maximal state)'로 화제를 옮겨, 최 교수는 "한국의 정치상황은 대통령 권력이 초집중화하고 국가가 굉장히 확대·강화되고 일방 독주하는 체제로 나타나고 있다"며 "그 속에서 시민사회는 양극화하고 세력균형이 파괴돼 자유주의·다원주의가 가능하지 않게 돼버렸다. 토론이나 대안을 낼 여지가 존재하지 않게 됐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윤 전 총장은 "대통령 권력의 집중화는 헌법의 기본 원리인 삼권분립과 법의 지배를 심각하게 저해한다"면서 공감을 표했다.

최 교수는 "오늘의 진보세력은 강력하고 확장적인 국가주의의 자리를 선점했다. 그런 국가주의가 관철되는 것과 자원주의·다원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당체제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정당체제 변화가 시급하다"며 "촛불시위 후 한때 궤멸에 가까운 상황에 직면했던 보수정당은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비전·이념·가치를 만들어 재건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말만을 앞세운 협치(協治)는 공허하다"며 가치정립을 우선시하라고 당부했다.

정치인들이 저마다 '개혁론자'를 자임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최 교수는 "'적폐청산'을 내건 개혁의 열풍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화 이전의 민주주의관이 복원됐음을 말해준다"며 "(이는) 진보 정치가들을 거의 입만 열면 개혁을 주창하게 만드는'개혁꾼(reform monger)'으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윤 전 총장은 "그런 상황이 정권 교체의 역사적 소명과 신념을 강화시킨다. 정권교체를 하지 않으면 개악(改惡)을 '개혁'이라 말하는 '개혁꾼'들, 독재·전제를 민주주의라 말하는 선동가들, 부패한 이권(利權) 카르텔이 지금보다 더욱 판치는 나라가 된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고 맞장구를 쳤다.

앞서 대통령 권력 초집중 현상을 비판했지만, 최 교수는 "지금은 헌법 개정 타이밍이 아니다"라고 선을 긋기도 했다. 그는 "대통령의 권력을 하향·분산시켜야 하는 점은 맞지만 '정부 형태'를 바꾸는 개헌을 논한다는 것은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며 "개헌 방향의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컨센서스(공동체의 일치된 의견)를 만드는 것도 어렵고 그 결과도 불확실"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선책을 현행 헌법의 틀 속에서 찾아야 한다. 헌법 제86·87·88조에 있는 국무총리의 위상·역할만 제대로 구현·활용해도 대통령 권한을 줄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윤 전 총장은 "국정의 의사 결정에서 청와대의 우월적 독점으로 인한 국정 난맥상이 심각하다. 비서실장, 수석비서관 심지어 행정관들이 내각을 지휘하고 있다는 것이 공직사회의 불만"이라며 "헌법 틀 안에 있는 총리의 역할이 보장되면 내각의 결정권이 많아지고 자연스럽게 집중화된 청와대 권한을 줄일 수 있다는 교수님의 지적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정치치도자로서의 자세에 관해 최 교수는 "촛불시위 이후 민주주의를 위협할 정도로 강도가 높아진 사회적 갈등을 완화해야 한다"며 "시계추를 짧게 해서 진폭을 줄이듯, 갈등의 강도가 완화되게끔 해야 한다. 현재 나타나는 전 사회적 갈등을 세부적으로 부분별로 나눠 접근·해결해야 한다"고 당부했고, 윤 전 총장은 "적극 동감한다"고 화답했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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