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박상길 기자] 정부가 1년 만에 재건축 실거주 의무 방침을 철회하기로 하자 부동산 시장에서 후폭풍이 연일 거세다.
14일 국회에 따르면 지난 1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국토법안소위를 열고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 중 재건축 조합원에게 실거주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을 빼기로 했다.
재건축 조합원 실거주 의무 부여 방안은 작년 6·17 부동산 대책의 핵심 내용으로 투기과열지구에서 실거주 2년 요건을 채우지 않으면 재건축 후 분양권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 골자다. 당정은 당시 서울 집값이 급등세를 보이자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값을 잡겠다면서 강력한 수요 억제책으로 실거주 의무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러나 대책 발표 직후부터 지나친 규제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고 토지거래허가제 등 더욱 강력한 규제가 작동하고 있다는 점, 세입자에게 피해가 전가될 우려가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결국 야당 의원들의 반대로 법 통과가 지연되다 결국 이날 법안에서 삭제됐다.
결론적으로 보면 법이 시행된 것은 아니지만 법 시행을 감안해 미리 움직였던 시장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실험한 것이냐", "실거주 요건 채우려 수천만원 들여 인테리어하고 들어간 집주인들이 멘붕이란다" 등의 글들이 올라왔다.
한 누리꾼은 "정부의 발표를 믿은 사람은 손해를 보고, (정부 말을) 믿지 않고 버틴 사람만 이득을 보는 상황이 어처구니없다. 이래서 누가 정부 정책을 신뢰하겠느냐"고 지적했다. 정부가 설익은 정책으로 주거 안정은커녕 전세난만 부추겼다는 날 선 비판도 쏟아졌다. 실거주 요건을 채우기 위해 재건축 아파트로 들어가는 집주인들이 늘면서 애꿎은 세입자만 쫓겨났고 이 때문에 결과적으로 전세 물건이 줄면서 전세난이 심화됐다는 것이다.
지난 1년 사이 이 규제를 피해 재건축 아파트를 판 사람이 최대 피해자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서울 평균 아파트값은 작년 9억2509만원에서 올해 11억4283만원으로 1년 새 2억1744만원이 급등했다. 재건축 아파트의 경우 작년 말부터 최근까지 가격 상승 속도가 일반 아파트보다 2배 빨랐던 것을 감안하면 재건축 아파트 매도자가 치른 기회비용은 이보다 더 클 수밖에 없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정책을 만들 때 국민의 삶에 미칠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시행해나가야 하는데 이를 무시하고 정책을 남발한 측면이 있다"며 "기존에 내놓은 정책들도 효과를 다시 검토해 필요하다면 수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서울 압구정 현대아파트, 개포우성아파트, 은마아파트 등 강남권 28개 재건축 조합 및 추진위원회, 준비위원회 등은 최근 '강남구 정비사업 연합회'를 발족했다. 이들은 오세훈 서울시장 당첨 후 재건축 사업이 진척없이 가로막힌 상황이라고 판단해 연합회를 결성했으며 향후 재건축 이슈에 공동 대응하고 강남구청 및 서울시에 입장을 전달한다는 방침이다.박상길기자 sweatsk@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