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인국공사태'에는 여러 차원의 불공정 문제가 혼재되어 있다. 우선 가장 선호하는 공기업에 취업하기 위해 많은 공력을 기울였던 취업준비생들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게 되면서 취업기회를 박탈당했다는 불공정 문제, 입사절차가 다르고 지위상 차이가 있던 비정규직이 갑자기 자신과 동등해진다는 정규직의 상대적인 불만, 비정규직 상호간에도 기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불만 등을 제기했다.
왜 이런 사태가 야기되었을까? 문제의 발단은 2017년 5월 취임하자마자 문 대통령이 '인국공'을 방문해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을 제로로 하겠다'는 정책을 갑자기 발표한 것이었다.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화 하겠다는 정책은 일견 환영받을 만한 정책인데 왜 불공정 문제가 나오는가. 여러 당사자 간에 이해가 서로 다르므로 아무리 좋은 취지의 정책이라도 그 시행 조건과 시행 방법을 협의하고 합의하기 위해 노력했어야 하는데 이 절차, 과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는 공정이 최대의 화두이다. 대선 출마자도 공정을 외치고 청년들도 공정이 사라졌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왜 갑자기 공정이 문제인가. 그것은 사람들이 갈수록 기회가 평등하지 않다, 과정과 노력에 대한 보상이 공정하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최근 임금과 성과급이 높은 대기업의 재직자들도 성과급 배분기준이 공정하지 않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한 언론사에서 지난달 청년세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사회가 노력에 따른 대가를 제공한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설문에 68%의 청년들이 그렇지 않다고 답변했다. 게임의 규칙이 불공정하고 그나마 반칙, 편법이 성행하기 때문에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고 이런 사회에서는 계층간 신분상승이 불가능하다고 답한 청년이 50%를 넘었다.
사람들이 공정하지 않다고 반발하는 것은 게임의 규칙이 일방적으로 어느 한편에 유리하게 결정되고, 더구나 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편파적으로 시행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통용되었던 규칙이 이해당사자와 협의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바뀌면서 상대적으로 공평한 기회를 상실한 사람들이 박탈감을 갖게 된다. 제도가 바뀌면 사회 집단간의 이해관계가 달라지는데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일부 소수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법 제도를 일방적으로 제정한다면 정의에 반하는 일이다.
'정의'라는 주제에 평생을 바쳐 연구한 미국의 철학자 존 롤즈는 공정한 절차를 거쳐 구성원간 합의하는 원칙이 정의의 원칙이라고 규정했다. 자기와 상대방의 사회적 지위나 능력, 체력 등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원초적 자연 상태에서는 누구도 자신의 특정 조건에 유리한 원칙을 제안할 수 없고, 구성원들이 서로 자유롭고 평등하게 논의하여 공감할 수 있는 원칙을 합의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정의라는 이론이다. 서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공정한 절차를 통해 구성원들이 논의하는 과정에서 '사회의 최소 수혜자에게 더 많은 분배를 하자'는 정의의 원칙이 합의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법 제도는 이해집단 간에 오랜 세월에 걸쳐 상호 논의하고 그 결과로서 합의된 게임의 규칙인데 합의과정 없이 어느 한 당사자가 일방적으로 정해 "이것이 규칙이니 그대로 따르라" 하면 사람들이 승복할 수 있겠는가. 선거의 규칙을 정하는 선거법 개정도 주된 당사자를 배제하고 입법하는 정치인은 애당초 정의가 공정한 절차를 거쳐 확립되어야 한다는 것을 무시하는 것과 다름없다. '법치'는 정당한 내용을 공정한 절차를 거쳐서 입법된 법에 의해서 통치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법의 내용에 못지않게 갈수록 절차적 정당성을 중시한다. 입법과정에서 편법, 반칙 등 절차적 정당성, 공정한 절차를 무시하고도 일단 입법하고 나서 법이니까 그냥 지키라고 강요하는 것은 법치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논리이다.
결국 공정이란 법치와 신뢰의 문제이다. 신뢰는 공동체에서 공통의 규범을 서로 준수하며 다른 사람도 그렇게 행동할 것이라 믿는 데에서 형성된다. 공통의 규범은 오랜 기간 공정한 논의과정을 거쳐 서로 합의한 것이고 이를 준수하는 것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당연한 책무이다. 위반자에게는 엄정한 제재를 가하며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