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송도가 지난 9일 'K-바이오 랩허브' 후보지로 최종 선정됐다. 인천시가 제안한 사업 조감도 모습. 중기부 제공
"주인과 손님이 뒤바뀐 신세가 됐다."
지난 9일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K-바이오 랩허브' 후보지로 인천 송도가 결정되자, 대전시와 대전지역 바이오 업계는 '주객전도'라는 말로 반응을 대신했다. 'K-바이오 랩 허브' 구축사업 아이디어를 내고, 기획한 주체가 대전시이자 대전지역 바이오 업계였기 때문이었다.
'한국판 모더나'와 같은 바이오 분야의 글로벌 유니콘 기업을 육성할 'K-바이오 랩허브'로 지난 9일 인천 송도가 최종 선정됐다.
김희찬 K-바이오 랩허브 선정평가위원장(서울대병원 교수)은 "미국의 랩센트럴처럼 성공할 수 있는 곳, 바이오 창업기업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대학과 병원, 바이오 기업 등 바이오 협력 생태계 구축에 적합한 곳을 찾는 데 중점을 두고 평가한 결과, 인천 송도가 최종 선정됐다"고 밝혔다.
K-바이오 랩 허브 사업은 당초, 대전시에 의해 시작됐다. 지난 2019년 허태정 대전시장과 대전 바이오 산학연병관 관계자들이 미국 보스턴의 바이오 스타트업 지원기관인 '랩 센트럴'을 찾은 후, 이를 벤치마킹한 바이오 특화 창업보육 관련 시설의 필요성을 중앙정부에 제안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대전시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KAIST, 안전성평가연구소, 딥 테크 기반 바이오 벤처기업 등 혁신적 기술과 우수한 인력, 첨단 인프라 등을 구축하고 있어 'K-바이오 랩허브' 최적지로 판단하고, 이를 자체 추진 사업으로 기획했다.
이후 중기부가 전국 지자체 공모사업으로 추진 방향을 바뀌면서 지자체 간 물밑 경쟁이 치열해졌다. 지난 5월 11개 지자체가 사업 참여계획서를 제출함에 따라 사실상 전국 단위 공모사업으로 커졌다. 이후 서류와 현장평가를 거쳐 대전, 경남, 인천, 전남, 충북 등 5개 지역이 발표평가 대상지로 선정됐다.
각 후보지는 지역의 역량을 총동원해 K-바이오 랩허브 유치에 사활을 걸고 본격적인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다. 대전시는 KT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등 9개 정부출연연구기관, KAIST 등 4개 대학, 충남대병원 등 4개 대학병원, 국내 유수의 투자기관, 바이오 기업 및 협회 등 총 53개 기관이 'K-바이오 랩허브'에 참여키로 하는 등 몸집을 키워 경쟁에 나섰다. 또 3500억원을 들여 치료제, 백신 등 신약개발 창업을 육성하고, 세종과 충남 등과 협력해 세계적인 바이오 혁신 클러스터로 성장시키겠다는 청사진도 제시해 사업 유치에 총력을 기울였다.
인천시도 지역 사회 결집은 물론 지역 정치 역량을 총동원해 K-바이오 랩허브 유치에 적극 나섰다. 특히 인천은 집권 여당인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정치력을 발휘하면서 대전과 가장 유력한 후보지로 떠올랐다. 급기야 송 대표는 지난달 16일 국회 본회의 연설에서 인천에 힘을 보태는 듯한 발언에 이어, 지난달 26일에는 인천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 현장 최고위원회를 열며 K-바이오 랩허브 유치 지원에 나서 공정성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다.
결국 최종 후보지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등 국내 대표적인 바이오 앵커기업과 2026년 개원 예정인 송도 세브란스병원 등 산학연병 협력 네트워크가 잘 갖춰진 인천 송도로 결정됐다. 인천은 부지 무상제공과 높은 재정 지원계획 등 사업계획 측면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인천의 정치력이 대전을 앞섰기에 가능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대전에는 6선의 박병석 국회의장을 비롯해 친문 인사인 박범계 법무부장관 등 7곳 지역구 국회의원이 모두 여당임에도 불구하고, 매번 정부 공모사업에 떨어져 정치력 부재와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후보지 선정에서 탈락한 대전시는 허탈감과 함께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대전시측은 "지역균형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라며 반발하는 분위기도 역력했다. 허태정 대전시장은 지역 공모사업이 가진 구조적 한계와 국가 공모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한 후 "본래 목적을 간과한 후보지 선정에 대전뿐 아니라, 공모사업에 탈락한 다른 지자체도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대전시는 K-바이오 랩허브와는 별개로 '대전형 바이오 랩허브'를 자체적으로 추진키로 했다. 바이오 분야 중소벤처기업을 중심으로 자생적으로 성장해 온 바이오 클러스터 인프라와 바이오메디컬 규제자유특구를 활용하고, 생명연 등 출연연의 기술역량, KAIST 등 우수한 연구인력을 통해 대전만의 바이오 특화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한편, K-바이오 랩허브는 하반기 예비타당성조사를 거쳐 사업 계획이 통과되면 국비 2500억원을 투입해 2023∼2024년 공사를 거쳐 2025년부터 운영에 들어가게 된다. 이준기기자 bongchu@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