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상당한 정치적 개입이 있었다는 증거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특정 기업과 대표를 정말 싫어한다(disdain)고 밝힌 상황에서, 국방부가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고 결정을 내리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2019년 12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연례행사 '리인벤트 2019'에서 앤디 재시 AWS(아마존웹서비스) CEO가 한 작심 발언이다.
이날 도마에 오른 것은 100억달러(약 11조4900억원)에 달하는 미 국방부 클라우드 사업 '제다이(JEDI·합동방어인프라)' 프로젝트였다. MS와의 경쟁 끝에 그해 10월 고배를 마신 AWS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편파적인 개입이 국방부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며 미 국방부를 상대로 이의제기 소송을 냈다. 이후 사업은 착수하지 못한 채 표류해 왔다. 미 법원은 지난해 2월 국방부에 제다이 사업 보류 명령을 내렸고 이후 소송전이 이어졌다.
◇제다이 백지화에 반색하는 클라우드 기업들=그런 상황에서 최근 미 국방부가 제다이 프로젝트 전면 백지화를 선언하면서 클라우드 업계가 반색하고 있다.
국방부는 6일(현지시간) "제다이 사업이 기술 환경의 변화로 더는 국방부의 뒤떨어진 역량을 메우기 위한 요구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몇몇 기업으로부터 새로운 기술 제안을 받을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발표 후 아마존 주가가 급등하는 등 시장이 즉각 반응했다. 사업자로 선정되고도 2년 가까이 진척이 없었던 MS에는 씁쓸한 결과지만, 클라우드 시장에서 AWS·MS 2강에 다소 뒤처진 오라클·IBM 등도 제다이 백지화가 가져올지 모르는 기회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구글 본사 전경
◇트럼프의 '대못'으로 표류해온 미 국방부 클라우드=국방부 클라우드 도입을 수년간 지체시킨 주인공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다.
제다이 사업은 국방 관련 모든 데이터를 클라우드 상에 통합하고 AI(인공지능)를 적용해 미래형 전투체계를 갖추는 사업으로, 2029년까지 10년간 추진할 계획이었다. 국방력을 결정짓는 것은 데이터와 AI라는 판단 하에, 전 조직에 흩어져 있던 데이터를 클라우드에 모아 실시간 공유하고 AI로 작전을 수행하는 미래형 플랫폼을 구축하는 게 목표였다. 총알과 포탄 대신 데이터와 소프트웨어로 싸우는 시대가 열겠다는 것. 이 사업은 역대 최대 클라우드 프로젝트로, 거대 테크기업들이 사업을 따내기 위해 전방위 로비전과 경쟁을 벌였다. 여기에 트럼프 전 대통령과 미 의회까지 관여하면서 진흙탕 싸움을 방불케 했다.
◇미 감사원·법원·의회·백악관까지 번진 사업 논란=AWS·MS·IBM·오라클이 경쟁한 끝에 IBM과 오라클이 중간 탈락하고 AWS와 MS 간 경쟁으로 압축된 상황에서 클라우드 업력이 가장 길고 CIA(중앙정보국) 서비스 경험이 있는 AWS가 유력한 후보로 꼽혔다. 구글은 AI 윤리이슈를 이유로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미 감사원·법원·의회·백악관까지 번지고, 트럼프 전 대통령까지 나서서 AWS 경쟁사들의 강력한 이의제기를 이유로 들면서 국방부에 종합검토를 요구했다. 이후 마크 에스퍼 당시 국방부 장관은 사업자 선정과정을 종합 검토할 때까지 발표를 연기한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IBM과 오라클은 사업을 단일 기업이 아닌 복수 사업자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 정부의 멀티 클라우드 우선 정책에 어긋난다는 것. 이들 사업자는 미 감사원에 문제 제기를 하기도 했다. 또 국방부가 AWS에 몰아주기를 하려 한다고 공격했다. 오라클은 국방부 내 특정 인사, 전임 국방장관과 AWS와의 밀착 의혹 등을 문제 삼으면서 소송까지 제기했다. 이후 미 연방법원이 국방부의 입찰 진행과정이 적법했다고 판결하면서 이 소송은 일단락됐다.
◇"국방부 대형 사업을 왜 아마존에?"=트럼프 전 대통령은 국방부의 대형 사업 이익이 왜 베이조스 CEO에 돌아가야 하냐며 수시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전에도 워싱턴포스트를 소유한 베이조스 CEO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지속적으로 표현해 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베이조스가 소유한 '워싱턴포스트'의 보도에 여러 차례 불만을 제기하고, 심지어 워싱턴포스트를 '아마존 워싱턴포스트'로 바꿔 부르기도 했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MS가 최종 사업자로 선정되자 AWS는 다 잡은 사업을 놓친 격이 됐다. 전문가들은 이 결정이 이후 10년간 클라우드 시장 경쟁구도를 바꿀 만한 일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MS가 AWS와의 격차를 줄이고 본격적인 선두경쟁을 벌일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는 것. AWS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의중이 사업자 선정결과를 뒤집어 놓았다며 국방부에 이의제기 소송을 제기했다.
◇제다이 대신 JWCC 프로젝트 추진=이런 상황에서 미 국방부가 제다이 프로젝트를 백지화한 것은 클라우드 전환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또 수년 전 기획한 프로젝트 내용이 이미 시대에 뒤진다는 평가를 한 것으로 분석된다. 단독 사업자에 클라우드를 맡기는 제다이 대신 복수의 사업자를 선정해 멀티 클라우드 인프라를 도입하는 'JWCC(합동 전투원 클라우드 역량)'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단일 퍼블릭 클라우드에 전체 시스템을 올리는 대신 복수의 클라우드를 채택하는 것이 최근 클라우드 도입 트렌드다.
국방부에 따르면 JWCC 사업은 5년 정도 기간 동안 수십억달러 규모로 추진될 예정이다. AWS와 MS는 국방부에 다시 사업제안서를 제출할 기회를 얻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다 국방부가 요구사양을 충족할 수 있는 다른 사업자가 있는지 시장 조사를 할 것이라고 밝혀, 구글·오라클·IBM 등에도 기회가 열릴 가능성이 있다.
◇구글·오라클·IBM도 수혜 얻나='승자독식' 구조의 제다이 대신 '다자협업' 기반의 JWCC에서 어느 기업까지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특히 국방부가 제다이 사업자 선정평가를 하던 2~3년 전과 달리, 그동안 구글·오라클·IBM 등도 기술과 사업경험을 상당폭 끌어올린 만큼 참여 기회를 얻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제프 베이조스와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추며 클라우드 사업을 탄생시키고 키워온 앤디 제시 신임 아마존 CEO가 JWCC 사업에서 어떤 승부수를 던질 지도 관심이다.
국방부의 발표 후 아마존은 "국방부의 결정을 이해하고 동의한다. 제다이 프로젝트가 사업과 관련 없는 외부 영향에 따라 결정됐지만, 우리는 국방부의 현대화 노력을 계속 지원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MS도 "제다이 계약을 취소한 국방부 결정을 이해한다"고 밝혔다. 안경애기자 naturean@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