톤마이스터 최진 소리 '톤'·장인 '마이스터'의 합성어 서울대서 호른 전공·독일 음향 유학 3D 사운드 표준화 프로젝트에 앞장 "프로듀서·연주자 교감, 명반 만들어"
최진 톤마이스터
interview 1 음향 중심지에서 온 소리 전도사 최진 톤마이스터
"3D 사운드는 제게 전혀 새로운 게 아닙니다. 기본이죠. 3D로 음반을 녹음한 지도 10년 가까이 되어갑니다."
음원 플랫폼 애플뮤직의 공간음향 런칭 소식에 전 세계가 떠들썩한데, 톤마이스터 최진은 마냥 덤덤한 모습이다. 다만, 이전보다 더욱 분주해졌을 뿐이다. 메이저 음반사로부터 스테레오로 발매된 앨범을 3D 사운드로 믹스해달라는 요청이 물밀 듯이 쏟아져서다. 그는 음향의 진보를 예견하고 수년 전부터 3D 녹음을 진행해왔다. 예상은 적중했다. 이렇게 작업한 앨범이 하나씩 빛을 보고 있다. 백건우의 슈만 피아노 작품집(도이치 그라모폰), 고티에 카퓌송의 첼로 소품집(워너 클래식스), 선우예권의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데카) 등이다.
톤마이스터는 독일어로 소리를 의미하는 '톤(ton)'과 장인을 의미하는 '마이스터(meister)'의 합성어다. 1950년대 독일에서 체계적인 학문으로 자리 잡았다. 음반을 녹음할 때 음악을 관장하는 프로듀서와 음향을 설계하는 엔지니어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직책이다. 서울대에서 호른을 전공한 최 톤마이스터는 지휘와 리코딩 엔지니어링을 공부하기 위해 독일로 떠났다. 뒤셀도르프 로베르트 슈만 음대에서 수학하고, 2002년 뒤셀도르프 심포니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음반(헨슬러)을 녹음하며 관계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지금은 유니버설 뮤직(도이치 그라모폰·데카), 워너 뮤직(워너 클래식스·에라토) 등 세계 주요 음반 레이블에서 그를 찾는다.
2017년부터는 독일 정부 산하 연구기관 프라운호퍼 연구소(Fraunhofer Institut)와 함께 3D 음향 표준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프라운호퍼는 독일 전역에 75개의 연구소를 둔 유럽 최대의 응용과학연구소다. 오디오 압축기술인 MP3를 포함해 음향 관련 대부분의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60여 개의 스피커가 설치된 프라운호퍼 3D 스튜디오는 돌비 애트모스·AURO 3D·22.2 채널 등 현존하는 모든 3D 음향 시스템을 망라한다. 그야말로 3D 사운드의 중심지인 셈이다. 이곳에서 최 톤마이스터는 3D 사운드를 위한 마이킹 방법부터 후반 작업, 그리고 재생기기 연구까지 3D 사운드 전반에 걸친 솔루션 개발에 앞장서고 있다.
△"3D 사운드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강력히 주장해왔다. 지금 감회가 남다르겠다.
-3D 사운드는 오디오 업계에서는 오래된 화두다. 그런데 어느 순간 회의감이 들더라. 우리끼리 아무리 이야기해봤자 소비자가 외면하면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서라운드 포맷이 실패한 것은 가정에서 듣기에 너무 번거롭기 때문이다. 하물며 3D 사운드를 들으려고 스피커 10대를 설치할 사람이 누가 있나. 그러던 와중에 젠하이저에서 프라운호퍼의 기술을 이용해 10대 이상의 3D 스피커 조합의 70~80%까지 재생할 수 있는 사운드바를 출시했다. 그때 3D 사운드의 대중화 가능성을 봤다.
△최근에 제조사들이 3D 사운드를 구현하는 사운드바·AI 스피커·무선이어폰 및 헤드폰을 경쟁적으로 내놓았다. 그런데 이번 '애플뮤직'의 파급력에는 못 미쳤다. 대중은 물론, 콘텐츠 제조사도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콘텐츠 산업에서 플랫폼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체감하게 된다.
-애플뮤직에서 한다는 건 이제 어디든 다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메이저 음반사에서도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거다. 플랫폼의 힘이란 것이 참 대단하다. 지금까지는 3D 사운드로 녹음을 해놓고도, 음반사에 보낼 때 CD라는 최종 작업물에 맞춰 스테레오로 믹스했다. 해상도를 오히려 낮춘 거다. 이제는 재생기기, 콘텐츠, 플랫폼까지 3D 사운드를 위한 모든 것이 갖춰졌다.
△아직 일반 청취자에게 3D 사운드라는 개념은 낯설다. 하나씩 물어보자. 우선 3D 사운드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무엇이 더 좋은가?
-악기 음원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까이 들리면서도 공간감이 충분히 느껴지는 사운드를 즐길 수 있다. 실제로 좋은 홀에서 음악을 들으면 그런 소리가 난다. 기계를 통해서 음악을 듣는 게 아니라, 내가 실제로 그 공간에서 듣는 느낌이다. 2020년부터 예술의전당과 롯데콘서트홀에서 진행된 서울시향과 코리안심포니 온라인 콘서트 녹음을 모두 3D로 해두었다. 3D로 마이킹을 하면 일반 스테레오로 믹스하여 송출하였을 때도 월등히 좋은 사운드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공간의 울림이 핵심인 클래식 음악 녹음에서 3D 사운드가 빛을 발하겠다. 대개 클래식 음악은 스튜디오가 아닌, 콘서트홀이나 성당에서 녹음이 이뤄지니까.
-녹음의 가장 첫 단추가 레퍼토리에 어울리는 최적의 장소를 찾는 것이다. 대부분의 유명 프로덕션이 수고스럽더라도 스튜디오보다는 현장을 직접 찾아가 녹음하기를 선호한다. 훌륭한 어쿠스틱 사운드를 갖추려면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크기가 확보되어야 하는데, 일반적인 스튜디오는 그러기 어렵기 때문이다. 좋은 홀에서 녹음한 소리는 인위적인 보정을 가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훌륭하다.
△3D 사운드를 만들기 위한 녹음 방식과 후반 작업은 어떻게 이뤄지나? 스테레오와는 다를 것 같은데.
-2018년,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프라운호퍼가 세계 최초로 3D 스트리밍 송출을 위한 여러 번의 테스트 녹음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당시 내가 메인 톤마이스터를 맡았다. 오케스트라를 3D로 녹음할 때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을 제안하는 가이드를 만드는 작업도 병행했다. 이를 위해 각기 다른 마이크 시스템을 동시에 사용하다 보니 마이크를 100대가량 썼다. 그런데 프라운호퍼와 음향 표준화 프로젝트에서 도출한 결론은 그렇게까지 복잡하게 하지 않아도 좋은 3D 사운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불필요한 마이크는 걷어내고, 최대한 효과적인 마이킹 방식을 마련했다.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30~50대의 마이크를 설치해 무대에서 들리는 소리, 벽과 천장을 맞고 오는 소리를 모두 녹음한다. 후작업에서는 30~50개 채널 각각의 밸런스를 맞춘다. 이 작업을 스테레오는 스피커 두 대로 작업했다면, 3D 사운드는 스피커 열 대 이상으로 작업한다. 원래도 녹음은 각 채널의 볼륨을 한 단계 올리냐 내리냐에 따라 뉘앙스가 완전히 바뀌는 아주 정교한 작업이다. 지금은 더 다양한 조합이 가능해졌다. 작업과정이 훨씬 더 섬세해졌다고 볼 수도 있지만, 더 복잡해지고 어려워졌다고 볼 수도 있다.
△3D 사운드로 인해 연주자들은 원하는 소리를 음반에 담아내기가 더 용이해졌나?
-어떤 스펙으로 녹음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건 연주자가 원하는 소리를 어떻게 끌어내느냐다. 아무리 좋은 마이크라도 그저 갖다 대기만해서는 소용이 없다. 프로듀서가 연주자와 적극적으로 교감하고, 온 정신과 체력을 쏟아붓는 연주자에게 음악적 에너지를 줄 때 명반이 나온다. '좋은 소리'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건 딱 하나다. 연주자의 연주를 가장 돋보이게 하는 사운드다.
△"세계적으로 K팝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시청각적으로 잘 만들어진 양질의 콘텐츠(뮤직비디오)가 있었다"고 말하면서, "앞으로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고품질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보이는 것보다 들리는 것이 중요한 콘텐츠인 만큼, 톤마이스터라는 직업의 전망도 밝을 것 같다.
-CD의 활황을 지나 판매량이 하락하면서 2000년대부터 음반산업계가 점점 힘들어졌다. 그때는 누가 톤마이스터를 하겠다고 하면 뜯어말렸다. 그에 비해 요즘은 원한다면 한번 해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톤마이스터는 한 세대 위아래로 선후배와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직업이다. 끊임없는 자기 연마는 필수다. 지금도 1년 전 녹음한 앨범을 들으면 부족한 점이 보인다. 발전이 없으면 퇴보다.
인터뷰가 끝난 뒤 최진 톤마이스터는 "100번 설명하는 것보다 1번 들어보는 것이 훨씬 낫다"라며, 기자를 엔지니어룸 의자에 앉혔다. 세계의 스튜디오를 돌아다니며 장점만 골라 만들었다는 작업실(서울 서초구 소재)에 대한 자랑도 잊지 않았다. 놀랍도록 생생한 음감에 깜짝 놀라자, 최 톤마이스터가 만족스럽다는 듯 웃어 보였다. 그의 표정은 마치 장인의 그것이었다. 팬데믹으로 발이 묶였던 그는 다시 전 세계의 좋은 홀에서 모아온 소리를 이곳에 풀어놓고, 음반에 넣는다. 8월에는 영국에서 런던 심포니와 녹음하고, 9월은 첼리스트 양성원의 베토벤 소나타 전곡 녹음 등으로 독일에 머물다가, 11월 워너 클래식스 본사에서 진행하는 녹음 프로젝트를 위해 프랑스로 떠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