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설문서 강도 높은 정권 비판 "정치인 특유의 화법서 벗어나 일반인이 신선하게 느꼈을 것" "국가·대통령 비전 구체성 결여"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9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출마 선언을 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9일 대권 출사표를 던지며 '야권 후보' 정체성을 명확히 밝혔지만 '반문 빅텐트'냐, '국민의힘 입당'이냐에 대한 답은 내놓지 못했다.
정치 전문가들은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과 거리를 좁히는 동시에 야권 군소 주자들과 차별성을 꾀하는 전략으로 풀이하고 있다. 당장 국민의힘의 '경선버스'에 오르지는 않고 보수 대표주자로서 독자 세력화에 나선 뒤, 야권 통합 후보로 입당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윤 전 총장이 제1 야당의 울타리 없이 대권 행보를 이어가기에는 경제정책 등 각론에서 대선 후보로서 구체적 비전을 이날 드러내지 못한 것은 극복해야 할 과제로 지적됐다.
윤 전 총장은 이날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출마 선언과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문재인 정권과 각을 세우면서 정치적 무게감이 급격히 커진 윤 전 총장은 지난 3월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난 뒤부터 대변인 등을 거치는 '전언정치'를 통해 주로 국민과 소통해왔다. 하지만 이날 대선 출마 선언 과정에서는 직접 카메라 앞에 서서 연설문을 낭독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정치인 윤석열'의 첫 신고식인 셈이다.
'정치인 윤석열'의 신고식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관전평은 엇갈렸다.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윤 전 총장의 말이 (정치인이 구사하는 화법과 비교할 때) 굉장히 세더라. 그 정도 수위 높은 발언이면 두 가지 장점을 가지게 된다"며 "하나는 자기의 정치적 입지를 확실히 각인하는 것이고, 둘째는 정치인의 화법이 아니기 때문에 비정치인의 신선함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윤 전 총장이 경제 정책으로 지속가능한 성장과 복지를 모두 강조한 것과 한일관계에서 실용주의·실사구시·현실주의 등을 제시한 것과 관련해 "윤 전 총장은 외교에서는 실용주의적으로 접근한다고 했는데, 이는 사실 전통적인 보수정당의 입장과 가깝다"며 "보수 쪽에 가까운 인사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엄경영 시대정신 연구소장은 "총괄적인 평가는 55점 정도 주고 싶다. 윤 전 총장과 기자 질의응답을 보면 (윤 전 총장이) 준비가 덜 돼 그런지, 핵심을 찌르는 촌철살인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면서 "그렇지만 국내외 현안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페이스를 잃지 않고 자기중심으로 끌어간 것은 나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출마 메시지에 대해선 "대체로 현 정부를 강력히 비판하면서 (야권 후보로서의) 선명성을 부각했고, 본인이 보수 대표라는 것을 충분히 설명했다"며 "다만 거슬리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뺀 민주주의가 독재라고 한 것은 정치학에 대한 짧은 식견을 드러낸 것 같다"고 말했다. 염 소장은 "상대방을 비판하는 것은 시원하게 잘 했지만 본인의 국가비전, 대통령 비전은 구체성이 결여돼 있다"고 말했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윤 전 총장이 여전히 준비가 안 돼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윤 전 총장이 자신의 이야기를 한 게 아니라 문재인 정권을 비판하는 발언만 나열한 선언문을 접한 느낌을 받았다"며 "반문(反文) 정서에 기대어 반사이익을 노리는 수준을 넘지 못했고, 담론도 지극히 상식적이고 고루한 단어들이 나열됐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이 판국에 자유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다만 베이스에 깔려 있는 자유민주주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두고 공화주의냐 경제민주화냐 등의 담론을 말하는 것인데, 지금 자유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을 보면 시대정신 등의 부분에 대해 준비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이 제3지대에서 반문 빅텐트를 구축할지, 국민의힘에 입당할지에 대해서는 당장은 아니더라도 입당에 무게를 뒀다.
엄 소장은 "윤 전 총장이 당장 입당하는 것은 고강도 검증대 위에 서는 것과 같다. 입당시기를 좀 미룰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의 경선버스에 함께 올라타기보다 국민의힘 최종 대선후보와 결선을 치르려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지지율이 하락하거나 다른 대안 주자가 부상할 경우, 입당한다는 승부수를 띄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 입당 가능성을 열어둔 것에 주목했다. 비록 윤 전 총장이 입당시기를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국민의힘과 자유의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는 언급한 만큼 입당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신 교수는 "입당 가능성을 열어 뒀다는 얘기는 할 가능성이 더 많다는 얘기"라면서 "구체적인 시기는 자기도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상병 인하대 교수는 국민의힘 입당 시기를 명확히 밝히지 않은 것에 대해 "아직도 좌고우면하는 것으로 보인다. 본인도 길을 모르는 게 아닌가 한다"며 "명색이 출사표를 던지는 날인데, 했던 말도 다시 명확히 해야 할 판에 애매한 이야기를 한 뒤 이전에 한 말로 갈음한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