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주곤 안전성평가연구소 연구전략본부장
남주곤 안전성평가연구소 연구전략본부장
남주곤 안전성평가연구소 연구전략본부장
20세기 초 사회과학 분야의 대표적인 천재 막스베버는 19세기 중반부터 유럽에 서서히 자리 잡기 시작하던 새로운 조직체계를 꿰뚫어 보고, 이를 정리하고 발전시켜 관료제(Bureaucracy)라는 이름으로 정의했다. 구성원이 자기가 속한 조직에서 자기에게 부여된 일을 자신의 권한에 따라 하기만 하면 전체 조직이 합리적으로 굴러가는 이 신통방통한 제도는 인류가 본격적인 현대사회로 진입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막스베버 본인조차도 이 체계를 '가장 합리적이며 효율적인 조직의 형태'라고 자화자찬했을 정도였다. 단점이 없지는 않지만 이를 가볍게 초월하는 장점 때문에 현대사회를 구성하는 거의 모든 인위적 조직은 관료제를 기본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주로 조직적인 연구를 수행하는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 역시 어느 시점부터인가 이러한 관료제가 깊이 활용되고 있다. 다수 연구원이 조직을 구성해서 체계적으로 연구한다는 점에서 관료제는 불가피하지만, 잘 알려진 관료제의 단점은 과학연구 분야에서는 훨씬 더 비합리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특히 조직에 소속된 한 사람의 역량이 전체 조직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설계된 관료제의 안정성은 어떤 측면에서는 장점이지만, 한 사람의 우수한 능력과 성과가 연구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과학연구 분야에서는 매우 치명적일 수 있다.

모든 정부출연연구소는 연구 분야를 기반으로 다양한 연구조직으로 나뉘고, 각 조직에는 연구와 관련한 제반 의사결정 권한을 부여받은 책임자가 임명되며, 이러한 책임자를 중심으로 연구사업을 기획하고 연구비를 확보하며 연구를 수행한다. 이러한 권한의 계층화·집중화는 통상적이고 보편타당한 의사결정에는 도움이 되지만, 연구소에서는 개별 연구자의 우수한 많은 창의적 시도를 저해할 가능성이 크다. 조직을 나누고 직무를 분장하는 것은 조직별 전문성을 강화하여 효율적인 분업체계를 구성하지만, 연구기관에서는 조직 간의 벽으로 작용하여 협력 활동을 저해하고, 연구 문화를 배타적으로 만들 우려가 있는 것이다.

더욱 주목할 부분은 이러한 관료제는 조직의 성장과 더불어 점점 강화된다는 점이다. 조직이 성장하고 구성원이 늘어나게 되면 조직 운영의 효율성을 유지하기 위해 관리와 통제는 더욱 강화되고 치밀해져야만 한다. 이로 인해 연구자는 더 많은 시간을 독립적인 연구 주체가 아닌 조직 속의 톱니바퀴처럼 일해야 하며, 이렇게 획일화된 업무로 연구자들은 본인의 창의력과 열정을 발휘할 기회를 점점 상실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효율적인 연구조직이란 무엇인가? 업무분장이 잘되어 있고 내부 통제가 우수한, 즉 관료제가 잘 실현된 연구조직이 정답은 아닐 것이다. 효율적인 연구조직은 당연히 우수한 연구성과를 낼 수 있는 조직이어야 하고 이러한 측면에서 연구조직에 관료제는 애당초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연구조직과 관료제 사이의 부조화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필자는 관료제의 효율성을 일부 포기하더라도 이를 느슨하게 적용하는 것이 좋은 대안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역설적으로 다소 애매한 책임부과와 느슨한 통제, 불분명하고 모호한 업무분장, 계층적 서열화의 최소화, 수평적 조직문화 확산, 집단적 의사결정 체계의 강화 등이 이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료제의 느슨한 적용은 분명 조직 운영의 비효율성을 증가시키거나 감시와 통제를 약화해 비윤리적 행위를 발생시키는 등의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 하지만 효율적이고 윤리적인 측면에서 우수한 조직체계는 강화된 관료제로 인하여 창의성과 자율성 등 연구기관의 연구역량을 후퇴시키는 기능을 한다는 점도 부정할 수는 없다. 이러한 폐단은 관료제의 심화를 불러오는 사전적·제도적 예방대책보다는 사후적·개별적 대응조치를 통하여 엄단하는 것이 연구조직에서는 더욱 효과적일 수 있는 것이다.

2018년 공공기관운영법 개정을 통해서 공공기관 관리 정책에서 연구기관은 '연구'라는 특성을 반영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다. 세부적인 적용기준 등에 대하여 현재에도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겠지만, 연구기관의 관리와 운영에 있어서 관료제를 얼마나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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