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30일 오후 광주 서구 치평동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민의힘 당대표·최고위원 후보 광주·전북·전남·제주 합동연설회에서 이준석 당대표 후보가 정견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월 30일 오후 광주 서구 치평동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민의힘 당대표·최고위원 후보 광주·전북·전남·제주 합동연설회에서 이준석 당대표 후보가 정견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6·11 전당대회까지 이제 일주일 남았다. 그동안 '이준석 돌풍'이 변수에서 상수로 정치권에 자리 잡는 데 한달이 채 안 걸렸다. 전에 없던 '거대정당 30대 당대표'가 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행이 계속되고, 보수야당 입장에선 제법 고무적인 상황으로 보인다. 이준석 당대표 후보 개인의 선거 도전 내력을 미루어도 '반전 요소'가 충분하다. 통상 국회의원 3선(選)을 돌파하면 중진 반열에 오르는데, 낙선 경험만 3회로 '0선 중진'이라는 별칭을 지닌 채 출사표를 던진 그는 초반의 '초선 대표론' 주자들마저 꺾고 본경선에 진출했다. 당원선거인단 70%·시민 30% 비율 여론조사라는 '본경선 룰'과는 거리가 있지만, 지지율 선두에서 더 치고 나갔다는 여론조사가 잇따르며 '대세 굳히기' 수순에 들어간 듯 하다.

엄살인지 진심인지 알 길은 없지만, '당대표 이준석' 현실화 가능성을 두고 'K-180석'으로 불리는 집권여당에선 "놀랍고 두렵고 부럽다"는 말이 연신 흘러 나온다. 보수진영에서도 모처럼 정치권 내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후보를 지지하는 당원·시민들은 꽤 고양돼 있다. 이에 '찬물'을 끼얹는 격일수도 있으나, 이준석 바람이 형성되기까지 느낀 '위화감'이 적지 않았음을 털어놓는다. 요컨대 2019년 '조국 사태'로 화두에 오른 '공정'에 충실하고 '거짓'과 '내로남불'을 멀리하는 방향으로 건전한 여론이 형성돼왔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그 역방향으로 '선 넘는' 광경을 정치권, 언론계와 인터넷 여론에 걸쳐 목도했다. 4년 전 탄핵 직후 정권교체론이 압도한 조기 대선 국면에서 지지율 40%대로 '대세론'을 이루던 후보를 둘러싸고 "이니 하고 싶은 거 다 해" "얼굴이 복지다"와 같은 맹종적인 선거구호가 난무했다. 마땅한 검증조차 차단하는 풍조를 방치한 결과는 4년간 '공약 이행이 재앙이 되는' 정부였는데, 최근 4년 전과 비슷한 분위기를 느낀다.

가장 충격적인 동향은 언론계에서 엿보였다. '조중동'의 하나인 동아일보의 김순덕 대기자는 지난달 30일자로 '나는 이준석 찬성이다'라는 제목의 노골적 지지 칼럼을 썼다. 김 대기자는 1985년생 이준석 당대표와 문재인 대통령의 영수회담을 상상하면 "자꾸 실실 웃음이 난다"며 "갑자기 그 당이 재미있어졌다"고 운을 뗐다. 논거는 "설령 이준석이 '유승민 키즈'라 해도 당대표 된 다음 대선 관리를 편파적으로 하진 않을 것" "국힘당 지키자고 내년 대선 때 야권 후보 단일화를 못 해낸다면" 등 가정에 기반했다. 마무리엔 "당원들이 이준석을 안 찍으면 나도 대선에서 국힘당 안 찍으면 그만"이라고 압박하기까지 했다. 2017년 1월 탄핵심판 중이던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두고 논설주간으로서 "졸피뎀 영향에 자신이 한 일을 기억도 못하는 게 아니냐"고 세월호 참사 당일 약물 의혹을 던졌던 것에 이어, '책임 있는 논설'로 보이지 않는 대목이다.

한편으로는 출마선언 열흘 전까지만 해도 '유승민계 대표격'을 자칭하던 이 후보를 향한 경쟁주자들의 계파 문제 제기 일체를 '구태'로 치부하는 동시에 "문재인 정부 국무총리와도 친소관계가 있다"는 등의 말 돌리기에는 지나치게 관대한 보도가 많았다. 문재인 정부 초·중반 범(汎)야권 동향을 주시했다면 이 후보가 유승민 전 의원과 옛 새누리당 탈당, 바른정당·바른미래당·새로운보수당을 거쳐 미래통합당으로 복귀한 사실을 모를 거라고 보기도 어렵다. 새보수당에서의 최종 복당 행렬은 한자릿수 의석(8석)으로 작았지만, 오랜 이합집산 속 응축된 '계파 그 이상'의 관계였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 반면 언론에선 나경원·주호영 후보에게는 양자 간 불편한 관계, 단일화 거부 동향을 외면하고 '나주연합' '네거티브 협공' 주체로 거명했다. '0선 중진'에서 0선만 거론함으로써 참신성만 부각, 윤석열 전 검찰총장 등 정치신인과 기계적으로 동치 하는 논조도 문제가 없지 않다.

여론 환경에서는 '맥락 없는' 후보 비방이 따라 붙는다. 이번 당대표 경선 도중 온라인에서는 전례 없이 나 후보에게 '나베'라는 멸칭을 다는 '보수 유권자'들이 대거 등장했다. 그동안 극성 친문(親문재인) 네티즌들을 위주로 '나경원 친일' 프레임을 띄워온 데 가세한 셈이다. 예컨대 나 후보와 조경태 후보가 TV토론 중 독도 분쟁에 따라 도쿄올림픽 보이콧 '적극 검토'로 입을 모았다는 포털사이트 기사에서 '나베'를 거론한 댓글 이력을 추적하면 보수층 네티즌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 나 후보의 성씨와 아베 신조(전 일본 총리) 이름의 한 글자를 이어 붙였다는 식인데, 독음대로면 우리말로 '냄비'를 뜻한다. 이는 정치권과 사회 곳곳에서는 오래 전부터 성(性)을 매개로 한 여성혐오 단어로 떠올랐다. 모 정당 명칭의 갤러리 등 남초 토론장에서는 지난달 말부터 남발되고 있지만, 이들의 지지를 받는 후보는 '내가 혐오발언을 한 적 있냐'는 입장을 반복할 뿐이다. 마치 '당대표 청년할당제'라도 적용 중인 것처럼 그 어떤 논쟁과 검증론에도 세대교체를 앞세우며 중진주자 퇴출을 기계적으로 외치는 댓글도 부지기수다.

정치 주체들이 주는 실망감은 더 크다. 이 후보와 친소관계가 뚜렷한 정치인들이 선출직 후보와 당내직을 가리지 않고 100% 시민여론이라는 미명 아래 당원투표 배제 여론전을 거듭한 사례가 먼저 떠오른다. 이른바 '문자 폭탄'이 두려워 '대깨문(친문 극성지지층 지칭 은어)'이 원하는 노선만 따르다가 4·7 재보궐선거에 참패한 더불어민주당 사례를 누차 들었지만, 자당의 책임당원들을 '잠재적 대깨문'으로 몰아세우는 데서 논거를 찾는 태도로 보였다. 이들은 당원 연령분포가 '50대 이상'이 대다수라는 점도 '문제 거리'로 몰아세움으로써, 그동안의 당원 모집 부진의 책임을 인정하긴커녕 떠넘기면서 '룰 변경'부터 요구한 게 됐다. 실제로 자칭 '이준석계' 및 초선 의원들은 본경선 돌입 직전 '룰 변경 의원총회' 소집을 요구해 특정 주자의 유불리에 적극 개입하려 했다는 지적이다.

한편 이 후보 본인은 '할당제 반대' 구호와 다르게 지난해 총선에서 '퓨처메이커' 단수공천 전형의 수혜자였다는 지적에 "(서울 노원구병은) 자원자가 없다고 할 정도로 어려운 지역구"였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노원병은 보다 젊은 청년인 김용식 자유한국당 당협위원장이 1년여간 자리를 지켰다가 경선 없이 밀려났다는 점과 부합하는지 의문이다. 이외에도 언행을 둘러싼 문제제기가 잇따르는 데에 "저한테 딱히 할 말이 없어서 그냥 싸가지 없다고 하는 것"이라고 일축하는 것이나, 김무성 전 의원와의 회동이 포착되고도 부인한 것과 같은 '잡아떼기' 식 대응도 리스크로 평가된다. 어쨌든 이 후보는 어휘 없이 '정치 문법'만 익힌 중진 주자들과 '할 말' 하며 경쟁하는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오고 큰 기대를 모은 만큼, 큰 정치로 이어갈 수 있길 기대한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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