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지난달 코로나19 지식재산권 유예를 선언함에 따라 주요국들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백신을 개발한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들은 백신 지재권 유예가 국익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자체적으로 백신을 개발하고 있거나, 외국 백신을 살 경제적 여력이 충분한 나라일수록 유·불리를 따지느라 미국의 지지 선언에 원론적 입장만 내놓고 있을 뿐, 속내는 드러내지 않고 있다. 백신 지재권 유예가 자국에 득(得)이 될지, 아니면 실(失)이 될지 고심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는 "지재권 보호 제도는 혁신의 근간으로 존중돼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입장을 표명하고, WTO(세계무역기구)의 백신 지재권 유예 관련 논의에 건설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의사만 밝힌 상황이다.
우리나라가 백신 지재권 유예에 '전략적 모호성'으로 대응하고 있는 이유는 자국 기업에 미칠 파장을 섣불리 예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미국처럼 지지 의사를 표명할 경우, 우리나라는 글로벌 백신 생산 허브로 한 순간에 발돋움할 수 있는 절호의 전기를 맞게 된다. 하지만, 여기엔 변수가 있다. 일부 개도국이 지재권 유예를 백신에 그치지 않고, 치료제와 진단기기 등 코로나19 관련 의료품목으로 확대할 것을 주장하는 것은 우리나라 입장에선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 기업이 애써 개발한 세계 최고 수준의 진단기술과 치료제 기술에 대한 특허, 데이터, 정보 등을 아무런 대가 없이 공짜로 공개해야 하기에 경제적 피해가 불가피할 수 밖에 없다.'글로벌 백신 생산 허브'라는 선물을 받는 조건으로 우리 기업에 화살을 겨누는 격이 되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1998년 IMF 외환위기 때 '콜라 자주독립'을 표방하며 출시된 '815 콜라'가 오버랩됐다. 미국 코카콜라의 원액을 받아 라이선스 방식으로 국내에서 콜라를 생산하던 범양식품이 '콜라독립 815'이란 이름으로 국산 콜라를 시장에 내놨다. 출시 이후 815 콜라는 국내 시장 점유율이 13.7%까지 치솟을 정도로 국민적 인기를 모았다. IMF 시기에 애국심을 호소하는 마케팅이 주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815콜라의 인기는 오래 가지 못했다. 맛이 일정치 않고, 먹을수록 콜라 고유의 맛을 잃어갔기 때문이다.
콜라 제조와 생산기술은 지식재산권으로 익숙한 특허가 아닌 영업비밀로 관리되고 있다. 독점 배타적 사용권을 갖는 대신 출원 후 일정 기간(20년)이 지나면 공개되는 특허와 달리 영업비밀은 공개 의무가 없다. 코카콜라의 제조법이 130년 넘게 알려지지 않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화이자, 모더나가 개발한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백신은 전통적인 백신 제조방식과 전혀 다른 혁신적 기술의 집합체다. mRNA 백신 관련 특허 중 약 60% 가량은 영업비밀이고, 나머지 40%은 특허로 보호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신 지재권 유예가 현실화되더라도 특허로 출원된 40% 가량만 공개될 뿐,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지재권은 기업 입장에서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
더욱이 mRNA 백신 제조와 생산 공정에는 수많은 특허권자의 특허가 얽히고 설켜 있어 화이자, 모더나의 백신을 완벽하게 복제 생산하는 데 한계가 있다. 오히려 백신 지재권 유예가 백신 품질과 안전성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해 독(毒)이 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의 백신 지재권 유예 지지가 '선언적 수사'에 그쳐 전 세계가 겪고 있는 백신 수급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백신 개발 현실을 보자.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모더나와 mRNA 백신 위탁 생산 계약을 체결하는 성과를 거뒀지만, 기술협력 수준은 원액을 받아 백신을 생산하는데 그쳐 아쉬움이 크다. 글로벌 빅 파머(대형 제약사) 중 하나인 화이자와의 협력 물꼬를 트지 못한 것도 더더욱 아쉬운 대목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5개 기업이 국산 백신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런데, 정부의 예산 지원이 적다 보니 1000∼3000억원 가량이 소요되는 임상3상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부 기업은 해외에서 임상3상 자금을 받는 조건으로 진행한 후, 백신을 선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미국은 신속한 백신 개발을 위해 화이자와 모더나에 각각 2조원, 4조원을 쏟아 부었다. 우리 정부는 올해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투입하는 예산은 고작 1300억원에 그치고 있다. 이 정도의 지원으론 백신 주권을 확보하기까지 더 긴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코로나19는 이번으로 끝나지 않고, 주기적으로 발병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콜라 독립을 외친 '815 콜라'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더 늦기 전에 우리 손으로 만든 백신을 우리 국민에게 접종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기대해 본다.bongch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