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비를 맞고 정신이 번쩍 들 만한 심판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닌달 10일 취임 4주년 특별연설 직후 기자회견에서 '가장 아쉬움이 남는 국정운영 부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부동산 문제라고 생각한다.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고, 지난 보궐선거에서 그에 대한 아주 엄중한 심판을 받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은 임기 1년을 남긴 상황에서 "경제지표가 견고하게 회복하고 있고 소득주도성장 정책, 고용과 사회 안전망 강화, 분배 지표 개선 등은 긍정적"이라며 현실과는 동떨어진 자화자찬을 내놨지만, 유독 부동산 정책 실패는 인정했다. 그러면서 부동산 정책을 보완하겠다고 했다.
이제 내년 3월 대선까지 9개월 여가 남았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부동산 가격에 한국주택토지공사(LH) 사태로 지난 보궐선거에서 '퍽' 소리 나게 죽비를 맞고도 이번 정부는 아직 정신이 들지 않은 것 같다.
모두 스물 다섯 번의 부동산 대책을 내놨지만, 지난 2.4 공급대책으로 잠시 하향 안정될 것 같았던 부동산 시장은 재보궐 선거 이후 다시 오름세로 전환하고 있다. 시장을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는 정책이 아니라 다주택자, 임대 사업자에 대한 강한 규제 일변도의 정책이 결코 시장에서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인가. 경기위축과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양적 완화 정책으로 시중에 돈이 넘쳐난다. 화폐가 시장에 많이 풀리면 돈 가치는 떨어지고, 당연히 자산 가치는 더 오를 수밖에 없다. 이를 억누르는 규제책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이 정부도 잘 알 터, 규제로 안되면 시장에 공급을 늘릴 수 있는 정책으로 빠르게 선회해야 하는데, 지난 2·4 대책에서 3기 신도시 등 80만호 이상 공급 계획만 나왔을 뿐, 실제 시장에 공급되는 수도권 주택은 여전히 부족하다.
여기에 양도소득세, 종합부동산세 등 각종 부동산 관련 세금마저 6월 1일부터 대폭 오르니 다주택자들이 주택을 내놓을 리 만무하다. 3억원에 산 아파트가 13억원이 됐는데, 이제 이 걸 팔면 10억원 차익에 대한 최고 82.5% 세금이 붙으니 부동산 관련 세금만 8억2500만원을 내야 한다. 주택 정책 입안자라도 주택을 내놓을 수 있겠는가. 3주택 이상 보유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규정 때문이다. 양도세 8억2500만원을 내느니 차라리 증여세 5억원을 내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한 다주택자들은 증여만 더 늘리고 있다.
양도세만 늘어나는가. 종부세 또한 세율과 함께 대상자가 대폭 늘어난다. 종부세 부과기준 일반세율은 1일부터 종전 0.5∼2.7%에서 0.6∼3.0%로 오른다. 3주택 이상이나 조정대상지역 2주택자에 적용되는 세율은 0.6∼3.2%에서 1.2∼6.0%로 인상된다. 부동산 소유 법인에는 6% 단일세율이 적용된다. 종부세 대상자는 정부의 공시지가 현실화 조치로 공시지가가 대폭 오르면서 과세 대상자도 큰 폭으로 늘었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7년 주택분 종부세를 낸 사람은 약 33만명이었지만, 작년엔 66만7000명으로 배로 늘었다. 올해는 80만명을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평생 월급쟁이로 살면서 집 한 채 가진 60대 이상 노년층은 공시가격 현실화로 집값이 크게 뛰는 바람에 종부세로 수천만원을 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종부세 내려고 빚을 져야 할 판이다. 투기를 한 적도 없고, 열심히 자기 인생 살아온 이들에게 집 한 채 가지고 있다고 세금 폭탄을 떠안기는 정부와 여당에 누가 화를 내지 않겠는가. 이들이 다음 대선 지금의 여당 후보를 찍겠는가.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주택분 종부세 납부액은 약 3900억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는 1조5000억원, 올해는 5조5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소득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부동산 불로 소득엔 1주택자라도, 부동산 투기자가 아니더라도 세금 폭탄을 던져야만 이 나라의 소득 불평등이 해소되는 것인가. 그것이 과연 공정한가.
당장 이달 부동산세 관련 과세 대상자가 정해지는데, 당정은 재산세 감면만 일부 확정했을 뿐, 양도세나 종부세 정책은 확정하지 못했다. 양도세 중과를 다시 6개월 유예해주거나, 종부세 기준 공시가격을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높이면 기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기조(다주택자 등 부동산 불로소득에 과세 폭탄을 안기고, 부동산 투기를 뿌리뽑겠다는 정책)과 어긋나 시장 투기자들에 "버티면 이긴다"는 잘못된 사인을 줄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일견 옳은 측면이 있지만, 벼룩 잡으려 초가삼간 다 태울 셈인가. 애먼 장기보유 1주택자들과 중산층까지 세금 폭탄에 허덕여야 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성공한단 말인가. 지난 보궐선거에선 50cm 죽비를 맞았지만, 다음 대선에서 2m 짜리 '장군죽비'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당정은 진정 무엇이 국민을 위한 부동산 정책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 적확한 대책을 시급히 내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