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을 보면서 들었던 첫 느낌은, '문재인 정부의 합의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그간 필자가 주장해 왔던 북한 인권 문제 제기, 쿼드(Quad) 관련 입장 전환, 미국 주도 첨단산업 공급망 참여가 모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과를 의도했는지, 아니면 협상력 부족으로 미국에 끌려간 결과인지는 다시 관찰할 필요가 있지만, 결과로서 문재인 정부의 대북, 대중 정책 기조는 변화한 것이다.
'모든 정상회담은 성공한다'는 말처럼 이번 정상회담도 많은 준비를 통해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낸 것으로 평가한다. 다양한 분야에서 한미동맹의 수준을 업그레이드 했다. 먼저 군사적 차원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한미 미사일지침 종료로 인해, 대한민국 국방력 강화에 새로운 장을 만들 수 있기에 그 의미가 더욱 크다. 이를 통해 한국은 미사일 사거리의 범위가 북한을 넘어설 수 있게 되었다. 향후 중장거리 탄도미사일과 첨단 비핵(non nuclear) 전자기펄스(EMP·Electro-Magnetic Pulse) 탄두를 개발할 경우 주변국의 잠재적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한국형 전략무기를 구비할 수 있다.
인명에 가해지는 위험요소를 최소화하면서 일시적으로 상대방의 전자장비를 무력화할 수 있는 EMP 탄도미사일은 '정보화시대를 석기시대로 되돌릴 수 있다'는 표현처럼 핵무기에 버금가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이나 주변국의 회유와 압박을 뚫고 차세대 전략무기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남북관계 차원에서 문재인 정부는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전향적인 입장을 선택했다. 북한 인권 문제에 침묵으로 일관하며 국제사회의 우려를 낳았던 지난 수년간의 행보를 바꿔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포함했다. 인권은 인류보편적 가치가 된 지 오래기에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침묵을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다만 유엔이나 국제무대에서의 다자적 문제 제기를 넘어 한미간에 직접 북한 인권을 언급함으로 인해 북한의 거센 반발이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외교적 차원에서는 미중 전략경쟁과 관련하여 한미동맹에 기반한 한중관계 발전을 확고히 했다. 쿼드, 대만 문제, 첨단산업 미국 주도 공급망 참여는 그간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했던 문재인 정부가 궁극적으로는 미국을 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그리고 인권을 중시하는 한국의 헌법적 가치를 고려할 때 불가피한 선택이다.
경제적 차원에서도 한국 첨단기업들의 대미 투자와 원자력 협력, 5G와 6G 등 차세대 통신협력, 반도체와 배터리와 같은 첨단산업의 핵심 기술 협력 등을 강화했다. 한미간 '공급망 회복력(supply chain resiliency)'을 강화한 것으로서 첨단산업 분야에서 중국과의 격차를 벌리려는 미국의 행보를 지원하면서, 미국의 첨단기술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한미간 경제협력이 한 차원 더 강화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은 빛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사문화되어 가고 있는 판문점 합의에 집착할 경우 북한에 끌려가는 협상이 불가피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대화를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 뒤로 미뤘다. 조속한 대화 재개에 집착할 경우 남북관계는 물론 한미관계도 뒤틀릴 수 있다. 중국을 자극할 수 있는 대만 문제 언급은 한중관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다. 미국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겠으나, 이미 쿼드에 대해 전향적 입장을 보인 상황에서 대만 문제까지 언급할 필요가 있었는지 아쉽다. 미국에 250억 달러에 해당하는 투자를 하고도 정부가 직접 확보한 백신의 양이 부족한 것은 한국의 대미 협상력이 얼마나 빈약한지 말해준다. 정상회담의 어두운 그림자를 보완해 나가야 한다.
모든 외교는 어느 한 시점에서 평가하기보다는 연속성을 보아야 한다. 한미 정상회담 역시 그 성과를 이어가며 예상되는 도전을 극복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정책의 일관성이다. 또 다른 방향전환 없이 합의 사항의 일관된 이행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