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일이다. 이탈리아 건축가 레오나르도 파브레티(Leonardo Fabbretti)는 골수암으로 사망한 아들의 추억이 깃든 사진을 간직하기 위해 아들의 아이폰 잠금해제를 요청했지만 애플은 냉정하게 거부했다. 피도 눈물도 없었다.
사례를 찾아보면 또 있다. 미국 FBI는 2015년 12월 총기난사사건을 일으킨 테러범의 아이폰 메시지 암호화를 풀려고 애플에 백도어를 요청했다. 역시 애플은 요지부동이었다. 팀 쿡 애플 CEO는 이런 말을 했다. "모든 정보는 보호받아야 하며, 그것이 바로 애플의 정신"이라고. 그러면서 뼈때리는 말을 덧붙였다. "아이폰 보안 기능을 무력화할 경우 일명 백도어 문제의 선례를 남길 수 있다."
미국 굴지의 통신업체인 애플. 개인정보보호에 관해선 깡마른 원칙주의로 일관해 인간미는 없지만 두터운 신뢰를 쌓아왔다. 하지만 애플 역시 계산에 능한 '이윤 지상주의' 기업에 불과했다. 그걸 나무랄 수는 없다. 그동안 내비쳤던 정보보호원칙이란 것도 일종의 계획된 마케팅의 하나였던 것 같아 여간 뒷맛이 개운치 않다.
애플이 중국 정부에 아이폰 고객 정보를 통째로 넘겨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충격이다. 자국 내에서조차 개인정보 보호 원칙에 관해선 융통성이라곤 조금도 없는 기업이라고 비아냥까지 들어오지 않았던가. 애플의 이중잣대는 일부 어려움과 불편 속에서도 애플의 정책과 철학을 지지하던 많은 이들의 뒷통수를 때렸다.
애플은 지난 2017년 중국 아이폰 고객의 데이터를 중국 국영기업이 소유한 서버로 옮기는데 협조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중국 내에서 수집된 개인정보는 반드시 중국에 보관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담긴 사이버보안법이 개정된 직후였다. 애플은 중국 현지법을 준수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중국에 강력하게 항의했다거나 이용자에게 사과했다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이로 인해 해당 서버는 중국 정부 직원이 관리하고, 중국 정부는 고객의 성명, e메일, 사진, 연락처, 일정, 위치 정보 등 사적 데이터를 하나하나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중국 자국민 사전 검열이 가능해진 것이다.
애플은 중국에서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 중국 당국의 반발을 부를 것으로 예상되는 앱을 사전에 제거해왔다. 2018년 6월부터 2020년 6월까지 2년 동안 중국 정부 요청의 91%를 승인해 1217개의 앱을 삭제했다. 대부분 톈안먼(天安門)광장, 티베트 독립, 홍콩 민주화 시위 등 중국 정부가 민감하게 여기는 주제에 대한 모바일 앱이 그 대상이었다. 기가 막힌다.
애플이 중국에 쩔쩔매는 이유는 중국이 아이폰 생산과 소비의 거대 심장부이기 때문이다. 아이폰, 아이팟, 아이패드 등 애플 기기의 조립 공장의 90%가 중국에 있다. 또한 서킷 보드, 유리 패널, 배터리, 케이블, 충전기 등을 공급하는 납품업체 업체의 48%가 중국에 있다. 여기에 애플의 협력업체는 줄 잡아 수천 개에 달한다. 그 중 폭스콘, 페가트론, 위스트론 등 대만 제조업체들이 애플의 핵심 파트너사다. 이들 회사들은 중국 공장에서 수십 만명의 노동자를 고용해 애플의 아이폰, 에어팟을 조립 생산해낸다.
중국은 애플의 거대한 소비시장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중국인들은 연간 400억~500억달러(약 56조원) 어치의 애플 제품을 소비한다. 애플 앱스토어를 통한 소프트웨어 구매 규모까지 합하면, 애플은 중국을 통해 엄청난 이익을 올리고 있다. 애플은 올 1분기 중국에서 177억달러를 벌어들였다. 애플 전체 매출의 20% 규모다. 이런 황금알을 낳는 거대한 시장을 서구의 개인정보보호와 같은 잣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게 애플의 속마음일지 모른다.
애플은 유독 중국 앞에만 서면 작아진다. 중국의 환심을 사기 위해 지극정성이다. 애플의 아이폰 뒷면엔 '캘리포니아의 애플이 설계했다(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라는 문구가 있다. 그런데 중국 측 엔지니어와 디자이너가 반발하자 이후 중국에서 출시한 아이폰에는 이 문구마저 슬며시 지웠다.
하지만 구글은 달랐다. 구글은 중국의 검색 결과 검열을 거부하다가 2010년 사업을 접고 철수했다. 아마존 웹서비스도 그랬다. 외국 기업이 클라우드 시설을 운영할 수 없다는 중국 법에 따라 일부 자산을 매각해버렸다. 세계 최대 IT기업 애플의 행보가 왠지 의심스럽고 불안해 보이는 이유다.